
▲서울 공항정 활터에서 과녁을 배경으로 촬영한 '살짜쿵 활쏘기' ⓒ 김경준
벌써 10년도 더 전의 기억이다. 당시 대학 학부생이었던 나는 하교길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문득 '책 한 권 써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물론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막연한 꿈에 불과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도 다른 기자들이 자신이 연재하던 글들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무척 부러웠다. 나 역시 꾸준히 글은 썼지만, 한 권의 책으로 묶을 만한 분량의 콘텐츠는 없었다.
그러다 2022년 활쏘기(국궁)를 배우기 시작했다. 국궁 수련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국궁으로 한 번 칼럼을 연재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배워보니 이렇게 재밌고 유익한 취미가 없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국궁의 매력을 소개하고 싶었다. 유단자도 아닌 초보 궁사가 감히 국궁으로 칼럼을 쓴다는 게 민망하고 두려워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심자의 솔직한 체험기가 오히려 우리 전통활쏘기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용기를 냈다.
그렇게 2024년부터 오마이뉴스에 <
활 배웁니다>라는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1년 반 넘는 기간 칼럼을 통해 우리 전통 국궁을 배우는 과정에서 느낀 즐거움, 국궁이 내게 가져다 준 유익한 결과들을 소개했다. 사실 처음부터 단행본 출간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연재였다. 어느 정도 분량이 충족되면 출판사들의 문을 두드려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칼럼의 소재가 고갈되어 '이제 슬슬 연재를 종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오마이뉴스 <활 배웁니다> 연재글 출간을 제안드립니다."
부산의 한 출판사에서 보내온 출간 제안 메일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드디어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마다할 까닭이 없어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본격적인 출간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 연재분을 다듬고,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기존 칼럼에는 없던 내용들도 추가적으로 보완했다. 그렇게 2026년 1월 마침내 인생 첫 책 <살짜쿵 활쏘기>가 탄생했다.
국궁 청년의 성찰 에세이

▲활을 쏘는 필자의 모습 (서울 공항정) ⓒ 김경준
'살짜쿵 활쏘기'는 우리의 전통활쏘기, 국궁을 소재로 한 에세이다. 그래서 국궁을 접해본 적 없는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활을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이들이 첫 번째 타깃 독자이다. 국궁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국궁이 어떤 운동인지 소개하는 한편 국궁이 우리 삶에 어떠한 유익함을 가져다주는지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국궁에 대한 심오한 이론이나 비전을 담은 교본이 아니라, 그저 서른 넘어 활쏘기를 배운 청년이 활쏘기를 통해 이룬 것들을 성찰하고 공유하는 인문학 에세이에 가깝다. 중학생 시절 국궁에 대한 로망을 품게 된 계기, 대학생 때 활을 잡았다가 포기한 사연, 활쏘기를 통해 깨달은 교훈들까지. 국궁이 어떻게 한 청년의 삶에 깊숙하게 스며들었는지 진솔한 고백을 풀어냈다.
"활을 쏴보니 알겠더라. 단순히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나의 성격이나 삶이 확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활쏘기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가치를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 실천할 때, 비로소 나는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활쏘기는 나의 삶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 책 228쪽
나에게 활쏘기는 '온 몸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영웅들을 추모하는 행위'이다. 사실 내가 국궁에 대한 로망을 품게 된 건 어렸을 적 사극을 보며 주몽, 이성계, 이순신 등 명궁으로 이름 난 한국사의 영웅들의 모습에 '심쿵'했기 때문이었다.
"활을 쏠 때만큼은 나도 한반도와 만주벌판을 누비던 불패의 명장, 태조 이성계로 빙의되어 호연지기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혹시 모를 일이다. 그렇게 이성계처럼 되기를 꿈꾸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역사에 남을 신궁이 될지."
- 책 38~39쪽.
특히 이 책의 부제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 보내는 연서'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책 곳곳에 충무공에 대한 극진한 존경과 애정을 담았다. 매년 통영 한산도로 활을 들고 떠나는 습사 투어 이야기는 '이순신의 섬' 한산도를 국궁의 성지로 발돋움시키고자 애쓰는 한산도 주민들의 노력이 빛을 발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것이기도 하다.
한편, 활쏘기는 내게 '불의하고 무도한 정권에 항거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2023년 8월 윤석열 정권의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흉상 철거 시도 당시 나는 활쏘기로 그 부당함에 저항했다. 각궁의 이름을 '범도'로 명명한 뒤, 홍범도 장군을 기리는 전통활쏘기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대회에 참가한 궁사들로부 홍범도 흉상 철거 반대 서명을 받아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내게 활쏘기는 역사를 온 몸으로 기억하고, 영웅들을 추모하는 행위다.
"2024년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고 '빛의 혁명'으로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서면서 육사의 홍범도 흉상 철거 시도는 완전히 백지화됐다. 그러나 여전히 내 1호 각궁의 이름은 범도다. 불의하고 무도한 정권에 맞서 싸워 이겼다는 승리의 상징으로 간직하며 홍범도 장군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오늘도 나는 한 발 한 발 기세를 실어 과녁으로 힘차게 화살을 날려 보내고 있다."
- 책 69~70쪽
새해에 '국궁' 입문 어떠신가요
국궁을 수련하는 궁사들이 <살짜쿵 활쏘기>를 통해 우리 전통 활쏘기를 수련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의 첫 번째 타깃 독자는 활쏘기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이들이다.
이 책이 우리 전통 활쏘기, 국궁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그래서 '2026년 새해에는 국궁 한번 배워볼까'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을 통해 단 한 명의 독자라도 국궁에 입문하게 된다면, 저자로서 그보다 더한 보람이 있을까.
"이 책은 그저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활쏘기를 배우며, 활과 사랑에 빠진 활친자(활에 미친 자)가 활쏘기에 보내는 한 편의 연서에 가깝다.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들은 활을 배우며 느꼈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들이다. 그러한 감정과 경험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초보 궁사들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활쏘기에 관심은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배움을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쏜 한산도 제승당 활터에서 활을 쏘는 모습. ⓒ 김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