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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노동이 우리 몸의 생체리듬은 물론, 사회적 관계까지 교란시킨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야간노동의 부작용을 고려할 때 칠흑 같은 밤에도 굳이 노동을 해야 할까 싶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불거지면서 '탈팡'을 전격 선언한 이들 중에는 이참에 새벽배송 없이도 살 결심을 한 사람도 있는 반면, 쿠팡 대체재를 물색하겠다는 사람도 여전히 많은 까닭이다. 후자의 목소리는 소비자와 택배 노동자의 선택권 보장을 핵심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새벽배송 제한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화두를 던진 당사자인 택배노조의 현재 고민과 진단, 향후 대안이 궁금했다. 지난해 12월 17일,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 사무실에서 쿠팡택배본부(준) 강민욱 준비위원장을 만나 이야기 나눴다.

'수면'과 '휴식' : 24시간 생산-유통-소비 체제의 적

예술비평가이자 인문학자인 조너선 크레리(Jonathan Crary)는 자신의 저서 <24/7 잠의 종말>(문학동네 펴냄, 2014년)에서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 돌아가는 산업과 소비의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소비와 유희가 보편화하면서 일주일과 개별 요일들, 주말과 휴일 같은 시간적 분절의 전통은 이미 낡은 것이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수면과 휴식은 24시간 중단 없이 가동되는 생산시간, 유통, 소비를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경고한 24/7체제의 극단화된 예시가 어쩌면 2026년 지금, 한국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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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되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비대면거래가 일상화되면서 택배 물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들은 당일배송, 새벽배송을 속속 도입하며 속도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밤을 틈타 더 많은 택배 물량을 빠르게 배송하기 위한 시스템이 전국에 깔리면서,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노동자들도 일감이 몰리는 심야시간대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배송 물량과 속도에 따라 택배노동자들의 임금이 좌우되는 구조는 이렇게 고착화됐다. 강 위원장은 야간고정노동의 가장 큰 문제로 쉼 없이 긴 시간, 고강도로 일해야 하는 상황을 짚었다.

"야간에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의 실노동시간이 11시간 조금 넘는 수준이에요. 주간조가 이보다 약간 길긴 하지만 거의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주간조는 2회전 배송이 일반적인 반면에, 야간조는 대부분 3회전 배송을 합니다. 그러니까 물류센터(캠프)에 들러서 상품을 인수하고 배송지로 가는 걸 하루에 세 번씩 반복하는 구조거든요."

밤에도 끊임없이 이뤄지는 실시간 주문-다회전 배송 시스템이 빠르고 편리한 새벽배송을 가능케 한 셈이다. 야간노동의 고됨을 더하는 쿠팡의 혁신적인 노동착취는 다회전 배송에 그치지 않는다.

"연속해서 3회전 배송을 하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지만, 배송과 집하라는 본연의 업무 외에 프레시백(다회용 배송가방)을 반납하고 회수하는 일도 저희가 해야 하고, 물품 분류 작업까지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무엇보다 아침 7시 배송 마감시간도 야간고정노동을 하는 택배노동자들의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고요."

 2025.11.23. '속도보다 생명의 사회로!'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대행진에서 강민욱 준비위원장의 발언 모습
2025.11.23. '속도보다 생명의 사회로!'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대행진에서 강민욱 준비위원장의 발언 모습 ⓒ 전국택배노조

야간노동은 개인 건강도, 사회적 관계도 훼손한다

한국에서 새벽배송 서비스가 시작된 때는 불과 10년 전인 2015년의 일이다. 신선식품이나 생필품 등을 출근 전 받아볼 수 있다는 편리함이 직장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빠르게 퍼져나갔고, 새벽배송 규제 반대를 부르짖는 이들의 말처럼 이제는 당연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야간노동을 전담해 온 택배노동자들도 밤낮이 뒤바뀐 생활패턴에 과연 익숙해졌을까.

"야간고정으로 이 일을 꽤 긴 시간 하셨던 어느 여성노동자의 이야기인데요. 이 분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는 자녀를 두었는데, 낮에는 자녀들 아침식사에, 통학까지 직접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빨래나 청소처럼 주간에 해야 하는 집안일이 기본적으로 있고, 종종 생기는 관공서나 은행 업무도 마찬가지죠. 밤에는 일해야 하니까 결국 낮 시간에 이런 일들을 처리하고 난 후에야 잠들곤 하신대요. 밤낮이 뒤바뀐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매우 버거운 일이지만, 사실 낮에 온전히 쉴 수 없는 현실이 건강한 수면이나 사회관계를 가로막는 또 다른 문제로 보입니다."

당사자의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야간노동의 해로움보다 야간노동의 편리함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욱 자극적으로 발산되고 있다. 급기야 소비자뿐 아니라 택배노동자들 역시 야간노동으로 인한 편익의 수혜자라는 논리마저 등장한 상황이다. 이를테면 주간에 비해 교통이 원활하고, 엘리베이터 사용이나 주차 문제 등으로 인한 주민과의 마찰 우려가 적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쿠팡은 이 같은 이점을 활용해 야간조 택배노동자들의 노동강도 완화는커녕 다회전배송, 프레시백 업무, 분류 업무 전가 등 정해진 시간 내 더 많은 일을 수행하도록 내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 위원장은 야간노동이 신체 회복력을 떨어트려 수면 부족, 호르몬 불균형 등 보건상 문제를 야기함은 물론, 야간노동이라는 작업 방식 자체가 재해를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야간에는 이제 어둡다 보니까 교통사고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죠. 얼마 전에도 새벽배송 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분의 소식이 언론보도로 나간 적도 있고요. 그나마 도심지는 야간에도 거리 조명이 환해서 덜 위험한 편입니다. 이제 경기도 외곽지역이라든가 조금 한산한 지역으로 들어가면 사방이 캄캄해서 주행 중 충돌이나 추락사고 위험이 더 크거든요. 여기에 수면장애가 있다거나 피로누적이 겹치면 위험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또 다른 문제로 혹시 모를 긴급상황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과로 등으로 갑자기 쓰러졌다거나 다쳤을 때에도 인적이 드문 야간에는 초동대처가 어려울 수 있거든요. 주간도 마찬가지지만, 야간에 혼자 일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이길

2025년 7월 택배노조 중앙위원회는 "2020년~2021년 스물여섯 분의 택배노동자 사망이라는 비극을 계기로 어렵사리 만들어진 생활물류법 제정과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가 쿠팡의 무분별한 경쟁전략으로 무너지고 있다"며 쿠팡발 배송 속도경쟁이 "산업의 규범을 파괴하는 사회적 퇴행"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어 고삐 풀린 속도경쟁을 막아내고 택배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했다. 업계 1위인 쿠팡이 택배노동자 건강권과 지속가능한 산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1·2차 사회적 합의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택배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과로에 기대 속도경쟁을 격화한 데 따른 요구였다.

"여전히 택배노동자 과로사라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고, 그래서 누군가는 이 상황에 제동을 걸어야 하잖아요. 그런 문제의식에서 3차 사회적 대화의 자리가 마련된 건데, 이 논의가 제기된 종합적인 맥락은 소거된 채 '새벽배송 안 된다'는 식으로 지금 보수언론이나 경제지에서 얘기되고 있거든요. 저희(택배노조) 주장은 실은 새벽배송 전면금지가 아닌데도요."

택배노조가 3차 사회적 대화기구에 제출한 내용의 핵심은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초심야시간 배송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야간노동의 폐해가 안전보건 전문가들의 견해와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만큼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해법을 함께 논의해보자는 제안이다.

"건설적인 논쟁이 되기 위해서는 새벽배송, 야간노동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심대한 악영향을 준다는 걸 일단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쿠팡은 애써 그걸 무시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개선 방안을 도출할지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택배노조가 악의적으로 쿠팡 죽이기에 나선다면서 사회적 대화 자체를 어떻게든 훼방 놓으려는 세력이 있는 거죠. 택배노조의 제안을 자꾸 왜곡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예컨대 초심야시간 배송을 제한하는 대신 배송마감 시간을 아침 7시에서 30분만이라도 연장하자던지, 책임지는 자세로 대안을 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새벽배송 논쟁이 첨예한 대립만 확인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으려면, 앞으로 어떤 고민이 수반돼야 할까. 야간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고 강 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이 논의를 마중물 삼아 택배업, 생활물류서비스산업을 넘어 모든 일터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지켜지는 정책과 문화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해법을 찾는다는 게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앞으로 더욱 발전적인 논의가 이어지리라 기대합니다. 결국 이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거냐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는 과제일 것 같아요. 가령 '택배를 그렇게까지 빨리 받아야 해?'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총알배송으로 물건을 받는 게 당연한 사회가 아니었잖아요. 거슬러 올라가면 야간노동도, 24시간 생산체제도 당연하지 않던 시절이 물론 있었죠.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건강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지속 가능한 노동구조로의 재편을 다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1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임용현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전국택배노조#쿠팡택배본부#다회전배송#배송마감시간#초심야시간배송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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