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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 중순 스물두 살, 세상 물정 모르던 그 시절. 한 면사무소로 첫 출근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건물 안에 네모난 것들만 있을 법한 흰색의 외관, 펄럭이는 태극기가 누가 봐도 면사무소였다. 아버지 뻘 되는 주사라고 호칭 되는 사람들이 여럿.
그 당시는 지방직 공무원을 성비를 나눠 뽑았다. 남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게 뽑았던 시절, 유일한 여성으로 합격하고 꿈에 부푼 평생 직장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마주한 현실은 사무실에 그윽하게 배인 담뱃내, 책상 위 재떨이, 타닥타닥 타자기, 낯설고 낯선 풍경에 어안이 벙벙... 그렇게 35년의 여정이 시작됐다.
용기 내어 나를 탈출 시키다
내 책상이란다. 앉으란다. 아무것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다. 무조건 그냥 시작했다. 등·초본 복사하는 것부터 시작한 공무원 직장 생활의 첫 기억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임에 분명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출근한 첫날부터 복사하고, 동네 이장이라는 나이 많은 아저씨들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수입 증지를 풀에 잔뜩 발라 붙이고 소인을 하면서 '뉘 집딸이 면서기로 왔나' 관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행정직 공무원은 순환 보직이다. 직원들이 바뀌어 업무가 변경되면 두근두근 새가슴 되어 새로운 업무 익히기를 숱하게 하면서 맷집이 생기고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그렇게 지나온 35년의 세월이었다.
시골 면사무소에서 5년을 근무하고 서울로 근무지를 옮겨 생전 처음한 도시 생활 30년. 숱한 애환을 뒤로, 정년을 4년이나 남기고 나는 지난해 12월 중순 퇴직을 결정했다.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할 기회도, 사랑하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도, 일선에서 정책을 녹여내며 국민들의 복리 향상을 위한 보람찬 일도 가치 있게 와 닿기 전에 스스로 고갈된 에너지가 너무 싫었다. 만약 내년에도 여기 있다면 열정 없이 꾸역꾸역 일할 내 모습이 상상 되어 싫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기 내어 나를 탈출시켰다. 애써 외면했지만 한치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는 건 거짓이다. 좀 더 버티면 얻을 수 있는 승진 기회, 늘어나는 월급, 현실적인 조건들이 하얗게 탄 내 영혼과 뒤섞여 뒤죽박죽이었지만 나는 자유가 필요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뛰쳐나와 또 다른 세상에 눈뜨고 싶었고 일중독인 나를 구해주고 싶었다. 일단은 성공했다. 알람 소리 끄고 마음껏 잘 수 있는 아침이 보장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사 알다니...
잘 알려주고 기회를 주라고, 말하고 싶다

▲긴 여정을 끝내다. ⓒ esdesignisms on Unsplash
이 시대 출근하고 퇴근하는 다수의 직장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주변에 있는 상사, 동료, 부하 직원 만나는 관계 속 우리들 모두 각자 각자 너무 소중하다. 가정 환경도 다르고 학력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그렇게 다른 타인들이 모여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향으로 성과를 내면서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이 머무르는 곳에서 만나는 관계다.
내가 어려운 만큼 상대방도 어렵다고,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도 늘 편안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타인만으로 묶인 직장 생활은 어느 누구 하나 편할 수 없다. 서로 애쓰는 관계, 좀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그런 직장 생활이었으면 좋겠다.
긴 35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면서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라고, 그러니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특히 사회초년생들을 잘 가르치고 알려주라고,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고, 실수가 반복되더라도 젊은이들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직장에서 아프게 하지 않아도 마주한 현실 전부가 힘들고 아픈 세대이다.
이제 나는 긴 여정을 끝내고 후회 없이 애쓴 나를 구속에서 풀어 주기 위한 선택을 했다. 하고 싶은 거 실컷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