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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첫째 아이 졸업식 날이었다. 유치원 졸업식장에 들어서기 전, 나는 커다란 꽃다발을 한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아이 몸집보다 꽃이 더 큰 건 아닌지 싶어 피식 웃음이 났지만, 막상 이 꽃을 준비하는 과정은 웃을 수만은 없었다. 졸업식 꽃다발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근처 꽃집을 몇 군데나 돌아다녔지만 대부분 '100% 예약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험난했던 꽃다발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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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약하지 않으시면 구매가 어렵습니다."

졸업식 시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꽃은 이미 '품절 상품'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어렵게 찾은 한 곳에서 겨우 꽃을 구했다. 가격은 3만 원. 잠깐 들고 사진 몇 장 찍고 나면 끝일지 모를 꽃다발 치고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첫 졸업식이니,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수령 방식은 더 낯설었다. 무인 픽업. 문자로 전송된 안내를 따라 가게 앞 선반에서 내 이름이 적힌 꽃을 찾아 들고 나왔다. 사장님은 바빠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다. 덩그러니 놓인 꽃을 들고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건 꽃을 선물하는 게 아니라, 행사 물품을 조달하는 기분이네.'

 유치원 졸업식장에서 준비한 꽃다발.
유치원 졸업식장에서 준비한 꽃다발. ⓒ 송민규

졸업식장 풍경은 예상대로였다. 거의 모든 부모들이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크기와 포장만 조금씩 다를 뿐, 손에 꽃이 없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차례로 호명되어 단상 위에 섰고, 그 순간을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유치원 졸업식이지만 풍경 만큼은 대학 졸업식 못지않았다. 식이 끝나고 아이의 학원 친구 어머님을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다.

"꽃 준비하느라 힘들지 않으셨어요? 요즘 예약도 잘 안 되던데…"

나의 푸념 섞인 말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 저는 당근에서 샀어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네? 당근이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졸업식 전날, 사진 촬영용으로 한 번 들고 사용한 꽃다발이 중고 거래 앱에 올라왔고, 상태가 좋아 바로 구매했다는 것이다. 가격은 시중 꽃다발의 절반 수준. 포장도 그대로라 굳이 새로 살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바로 휴대폰을 살펴보았다. 검색창에 '꽃다발 당근'으로 검색해보니 카페 게시판과 블로그 후기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당근 앱도 들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쏟아지는 꽃다발 거래들.

"새로 사면 비싸잖아요. 바로 팔진 않아도 집에 며칠 더 꽂아 두려고요."

꽃다발 하나를 두고 던진 질문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뜨끔했다. 나는 왜 당연하게 '새 꽃다발'을 떠올렸을까. 왜 졸업식 꽃은 비싸고 화려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꽃값은 해마다 오르고 졸업식은 특정 시기에 몰린다. 잠깐의 의례를 위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점점 커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 된다. 그 틈에서 일부 부모들의 선택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꼭 새것이 아니어도, 남이 한 번 들었던 꽃이어도, 축하하는 마음은 충분하다는 방향으로.

집에 돌아와 포장을 풀고 꽃을 화병에 꽂았다. 졸업식의 기억은 사진 속에 남고, 꽃은 며칠 동안 우리 집 거실을 환하게 채웠다. 아이는 그 앞을 지나며 여러 번 말했다.

"아빠, 이거 내 졸업식 꽃이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알겠더라. 아이가 기억하는 건 꽃의 상태가 아니라, 그날의 기분과 장면, 그리고 함께한 마음이었다. 아마 다음 졸업식에도 나는 꽃을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줄을 서가며 '새 꽃'을 고집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유치원 졸업식은 아이를 위한 행사지만, 그 준비 과정은 결국 어른들의 선택으로 채워진다. 꽃다발 하나를 두고 던진 질문. 정말, 꼭 새것이어야 할까? 졸업식장 풍경 속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특정 플랫폼이나 상업적 이용을 홍보하거나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졸업식 시즌 꽃다발 소비 방식의 변화를 한 부모의 시선에서 관찰하고 성찰한 기록입니다.


#졸업식#꽃다발#유아졸업식#당근마켓#소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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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child left behind. 교육의 희망과 미래를 믿습니다. 교육소식을 기록하고 교육정책을 연구하는 과학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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