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제주시 이호해수욕장 인근의 이호일동 서마을 주민들은 긴급운영위회의를 개최했다. 이호해수욕장과 마을을 경계 짓는 해안사구가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공사로 인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해안사구는 모래 해안에서 모래가 바람에 날아가 쌓여 이루어진 언덕으로 바람에 날려온 모래를 저장하였다가 다시 해수욕장 백사장에 모래를 공급하는 저장고 역할과 함께 바다의 거센 파도와 모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해안사구에는 탄소 흡수량이 많은 염생 식물이 자라고 있어 기후위기 시대에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최근 해안사구는 도로 개설 및 각종 개발 등으로 점차 그 면적이 축소되고 있다. 이호해수욕장의 사구 역시 해안 도로 개설과 바닷가 매립 등으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마을 사람들은 남아있는 사구를 더 이상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해안사구를 인지하지 못한 행정의 허가, 탁상행정의 결과
작업 현장을 가보니 마을주민들이 심어놓은 해안사구의 소나무들은 무참히 뽑혀있었고 해안사구 일부는 원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파헤쳐진 모래둔덕과 식생들2025년 12월31일 훼손된 이호해수욕장 해안사구 일부 ⓒ 김순애

▲이호서마을주민들이 내건 현수막. ⓒ 김순애
김상철 이호 서마을회장은 공사 과정에서 지역주민들과 사전 협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에 공사하면서 훼손시킨 해안사구는 우리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사구이다. 마을사람들이 그 언덕에 나무를 심고 사구를 보존해왔다. 사구는 북서풍 모래바람을 막는 역할도 하고, 마을을 보호해주는 문화재와 같다. 그것을 한 마디 말도 없이 이렇게 순식간에 훼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해안사구는 제주시 소유의 도로인 이호일동 375-41번지에 위치해 있어 해안사구를 변형시키는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도로관리청인 제주시의 허가가 필요하다. 건축주인 A씨는 지난해 7월 해안사구 안쪽에 위치한 국유지 이호일동 375-21번지 등의 임야를 공매를 통해 매입했다. 그 후 A씨는 해당 부지에 연면적 598㎡의 일반음식점을 건축하기 위해 제주시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설계도면을 보면 건축물의 진출입로가 해안사구를 관통하여 도로로 연결되게 되어 있다. 건축주는 해안사구 사용을 위해 제주시에 '도로의 유지·관리 허가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제주시는 검토 후 이를 승인해주었다.
해안사구를 훼손시키는 계획임에도 이를 허가한 이유에 대해 제주시 건설과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담당자가 해안사구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현장을 확인했다면 충분히 예방 가능한 일이었다.

▲해안사구 훼손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하게 열린 이호서마을회 임시운영위 회의결과. ⓒ 김순애
80% 이상 사라진 제주 해안사구 보존 위해 2025년 9월 조례 제정
2017년 국립생태원이 발표한 '국내 해안사구 관리현황조사 및 개선 방안 마련 연구' 논문에 따르면 전국의 해안사구는 각종 개발로 훼손되어 그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고 있다. 제주의 경우 10개의 지자체 중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최대 13.5㎢에 달했던 해안사구 면적이 조사 당시에는 2.38㎢만 남아있어 80% 이상의 해안사구가 사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사구 훼손이 심각하자 환경부는 사구를 보호·관리하기 위해 2016년 189개의 해안사구를 목록화하여 5년 단위로 정기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에는 이호, 곽지 등을 포함하여 14개의 해안사구가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다.
제주도 의회 역시 해안사구 보전에 대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커지자 2025년 9월 "제주특별자치도 해안사구 보전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조례가 시행되면서 제주도지사는 5년마다 '해안사구 보전·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조례 시행을 담당하는 부서인 제주도 환경정책과에서는 5일 통화에서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준비 중이며 해안사구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 역시 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호 해안사구 훼손에 대해 주민들과 협의하여 대책을 마련하라"
그동안 제주 해안사구 보존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환경단체 '제주자연의벗'은 이번 사태에 대해 7일 "이호 해안사구 훼손에 대해 주민들과 협의하여 대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제주자연의벗은 "이호해안사구는 제주시 도심 안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해안사구"라며 이번 훼손된 사구 구역에 대해서도 "도로개발로 인해서 해안사구 연속성이 단절된 상태이긴 하지만 여전히 높은 모래언덕은 거센 바람을 막아주고 있고 해안사구의 기능은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자연의벗은 이호해안사구 보전을 위해 "이호해안사구 전부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지정"과 "조례에 있는 해안사구보전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위원회를 통해서 제주도 해안사구의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각각의 해안사구에 맞는 세부 보전대책"을 수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을 주민들은 훼손된 해안사구의 원상복원을 위해 추후 기자회견과 제주시장 면담 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필자는 제주녹색당 운영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