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힌샘 주시경 선생한힌샘 주시경 선생 ⓒ 김삼웅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이란 명칭은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으로 쓰여졌을까. 세종대왕이 창제할 때는 '훈민정음'이라 하였고, 이후 '정음(正音)', '언문(諺文)', '언서(諺書)', '반절(半切)', '암클', '국문(國文)' 등의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위 명칭 가운데 '암클'을 제외하고는 명칭의 뜻이 한자어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문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썩 바람직하지 않은 것임이 분명하다. 결국 암클이라는 부정적 명칭을 대체할 만한 순 한글 명칭이 있다면, 하는 아쉬움을 많은 사람이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한글이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이다. (주석 1)
조선시대 관학자들은 한문을 진문(眞文) 또는 진서(眞書)라 하고, 우리글은 언문 또는 암클이라 불렀다. 암클이란 아낙네(여성)들이나 쓰는 글이란 비하였다.
한글학자 이윤재는 1930년대에 '한글'의 명명자(命名者)가 주시경이란 논거를 제시하였다.
이윤재는 한글 명칭의 창안자와 한글의 의미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윤재는 1930년, 1933년 두 차례에 걸쳐 주시경이 1910년 경에 한글 용어를 창안하였다고 주장하였다. 1930년 '한글 질의란(質疑欄)'(<동아일보>, 1930년 12월 2일)이라는 글에서 이윤재는 "한글의 유래를 말하자면 한 이십여 년 전에 한글 대가(大家) 주시경 씨의 명명(命名)으로 지금까지 써옵니다."라고 밝혔다.
1933년 그는 다시 '제일특집 여자하기대학강좌, 제칠실 한글과 한글은 어떤 것인가'(<신가정>, 1933년 7월, 42쪽) 라는 글에서 "한글이란 말이 새로 생기어서 일부에서 많이들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이삼십(二三十)년 (이십삼 년의 오기 - 필자 주) 전에 우리글 연구의 대가 주시경 씨가 지은 말"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는 1935년 박승빈의 주장에 근거하여 최남선이 한글을 명명하였다는 학설(임흥빈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게 되었다. (주석 2)
세종대왕기념관장 등을 지낸 한글 연구가 박종국도 주시경이 최초로 '한글'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고 그 논거를 제시했다.
'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 님이 지어 쓰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나, 현재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으로는 신문관 발행의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의 끝에 가로글씨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이 이름이 일반화하게 된 것은 '한글학회' 전신인 '조선어연구회'(1921년 12월 3일 창립)에서 1927년 2월 8일 창간한 기관지 <한글>을 발행한 데 이어 또 훈민정음 반포 8주갑(週甲) 병인년(1926) 음력 9월 29일을 반포 기념일로 정하여 '가갸날'로 명명한 뒤, 1928년에는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공식으로 인정받기는 1946년 9월 10일 '한글날'이 공휴일로 제정되면서부터라 하겠다. 그런데 이 '한글'이란 이름을 제일 먼저 지은 분은 신명균(1889~1941) 님이라고도 하고, 최남선(1890~1957) 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믿을 만한 말이 못된다. (주석 3)
주시경이 작명한 한글의 '한'은 고대 삼한 이래의 우리 국호의 고유명사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한글'이란 말의 '한'은 '바르다'·'하나'·'큰'·'으뜸' 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이윤재 님은 말하기를, "역사를 상고하면 조선 고대 민족이 환족(桓族)이며, 나라 이름이 환국(桓國)이었습니다. '환'의 말뜻은 곧 '한울'입니다. 조선 사람의 시조 단군(檀君)이 한울로서 명칭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환'은 '한'과 같은 소리로 '한울'의 줄인말이 되었고, 그만 '한'이란 것이 조선을 대표하는 명칭이 된 것입니다. 고대에 삼한(三韓)이란 명칭도 이에서 난 것이요, 근세에 한국(韓國)이란 명칭도 또한 이에서 난 것입니다. "또 '한'이란 말의 뜻으로 보아도 '크다(大)'·'하나(一)'라 '한울[天]'이란 말로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우리 글을 '한글'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한글의 '한'이란 겨레의 글, '한'이란 나라의 글, 곧 조선의 글이란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볼 때 '한글'이란 우리 글을 '언문(諺文)' 등 여러 이름으로 낮추어 부른 데 대해, 정당한 우리 말 표기 글자란 뜻으로 권위를 세워 준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한글'이란 이름은 세종대왕께서 처음 글자를 지으시고 '훈민정음'이라 명명하신 정신과 통하는 것이다. (주석 4)
한때 학계 일각에서는 '한글' 명명자가 육당 최남선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한글학자·한글 연구가 대부분이 주시경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일본인으로 한글에 남다른 연구와 애정이 깊은 노마 히데키(전 도쿄 외국어대학 교수)도 <한글의 탄생>에서 '주시경설'을 지지한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한글'이라는 명칭은 근대의 선구적인 한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이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은 '위대한', '글'은 '문자' 혹은 '문장'이라는 뜻이므로 '한글'은 '위대한 문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은 '대한제국'의 '한(韓)'이라는 설도 유력하다. (주석 5)
한글 연구가인 고영근은 보다 체계적으로 사료를 추적하여 한글의 명명자가 주시경임을 입증한다.
국권 상실 이전까지는 대부분 '국어, 국문'이란 말을 썼다. 그러나 주시경이, 1910년 6월 10일에 발행된 <보중친목회보(普中親睦會報)> 1호에 기고한 글에는 국어와 국문 대신 '한나라말'과 '한나라글'로 되어 있다. 이 글은 '국어문법(國語文法)'의 '서(序)'와 '국문(國文)의 소리'를 한글로 바꾸어 쓴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한국어(韓國語)'와 '한국문(韓國文)'에 대응되는 의미가 틀림없어 보인다. (중략)
'국어'가 '한나라 말'로, 이것이 다시 '말' 내지 '한말'을 거쳐 보다 포괄적인 '배달말글'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이 '배달말글'이란 말도 1913년 3월 23일에는 '한글'로 바뀌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 '한글모죽보기'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13년 3월 23일(일요일) 오후 1시
임시총회를 사립 보성학교 내에서 열고 임시회장 주시경 선생이 자리에 오르다.(중략) 본회의 명칭을 '한글모'라 고쳐 부르고(중략)
이는 '배달말글음'으로 불리던 조선언문회의 창립총회의 전말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배달말글'을 '한글'로 바꾼 점이다.
이는 앞의 '한말'과 마찬가지로 1910년의 주시경의 글 '한나라말'에 나타나는 '한나라글'의 '나라'를 빼고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중략)
(따라서) 현재로는 1913년 3월 23일을 '한글'이란 말의 최고(最古) 사용 연대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주석 6)
주시경은 1910년 6월 '한나라말'이란 짧은 글을 지었다.
"주시경은 1910년에 발표한 '한나라말'이라는 글에서 '한나라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한글 명칭은 '한나라글'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한글은 '한나라글'의 축약어로 볼 수 있다. 이는 1906년 6월 이전에 그가 일관되게 사용한 국문의 대용어로, 1910년에 들어와 한나라글을 사용하였다고 보여진다. 주시경에게 국문은 훈민정음을 지칭한 것이었다." (주석 7)
주석
1> 김흥식, <한글 전쟁>, 287쪽, 서해문집, 2014.
2> 박용규, <이윤재>, 89쪽, 독립기념관, 2013.
3> 박종국,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166쪽,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4.
4> 앞의 책, 167쪽.
5> 노마 히데끼, 김진아 외 옮김, <한글의 탄생>, 33쪽, 돌베개, 2011.
6> 고영근, <'한글'의 유래에 대하여>, 김흥식, 앞의 책, 288쪽 재인용.
7> 박용규, 앞의 책과 같음.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