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도서관을 여행합니다. 도서관 노동자가 낯선 도시에서 발견한 도서관의 매력, 그 안에 깃든 웃음과 감동, 삶의 온기를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책과 사람을 잇는 여행이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
밥과 국, 대여섯 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놓인 백반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내 위장만큼은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비싼 그릇에 담기지 않아도, 인공 조미료의 감칠맛이 살짝 느껴져도 괜찮았다. 다만 배식판에 담긴 백반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밥과 국, 반찬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경계를 잃어가는 모습과 결국 한 곳에 뒤섞여 버릴 모습을 떠올리면, 혀 끝에 솟던 미각의 기대가 금세 사라지곤 했다.
이렇게 정갈한 백반만을 갈망하던 나에게 '배식판 백반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하는 신세계를 보여준 식당이 있었다. 2년 전, 여동생의 소개로 찾은 구리시 인창도서관 식당이었다. 시계는 아직 오전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점심을 먹기 위한 줄은 이미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세상에나.'
한 번 먹고 나면 세상의 모든 밥줄에는 이유가 있었음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최근에는 세 번이나 인창도서관에 갔다. 지난해 12월 24일, 12월 31일, 그리고 새해 첫 도서관 개관일인 지난 2일이었다.

▲인창도서관도서관 전경 ⓒ 이인자
돌이켜보니 모두 의미 있는 날들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날이면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싶은 욕구가 나도 모르게 생겨났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밥만 먹은 것은 아니다. 마음의 양식도 함께 먹었다. 오래 머물러도 좋을 만큼, 속을 채우는 온기가 도서관 구석구석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인창도서관은 2003년 개관했다. 외관만 보면 도서관 앞 아파트 단지들처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오래전에 다니던 학교나 교회, 혹은 어린 시절 살던 집을 찾아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로비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구축 아파트를 사서 리모델링한 친구의 집 거실에 들어선 것처럼 모든 것이 새것 같다.
한국 문학의 거목을 품다
인창도서관은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 작가를 품고 있는 도서관이다. 2층 가장 안쪽에는 박완서 자료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박완서 작가는 1998년 구리시 아치울마을로 이사해 생의 마지막 시절을 보냈다. 그 인연으로 인창도서관에는 작가의 이름을 딴 자료실이 마련되었다.
'혹시 박완서 선생님이 살아 계신가' 하고 잠시 착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일하는 도서관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신간 도서가 자료실에 들어온다. 그날도 신간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라는 박완서 작가의 개정판 에세이가 들어왔다. 제목이 근래에 나온 책 같아서, 순간 박완서 선생님이 새 책을 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불과 1, 2초였지만 꽤 진지한 착각이었다.
그날 인창도서관에서 내가 만난 운명 같은 책은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였다. 불의의 사고로 스물다섯 살 외아들을 잃고 쓴, '참척의 슬픔'이 담긴 책이다. 종합 자료실 책상에 앉아 읽기 시작했지만, 공공의 장소에서 끝까지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나 역시 엄마가 된 지 어느덧 스물다섯 해가 되었다. 자식을 잃는 상실을 내 삶에 겹쳐 상상하는 일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다. 끝내 눈물이 올라와 책장을 더 넘길 수 없었다.

▲박완서 자료실구리시와 박완서 작가 ⓒ 이인자
어쩔 수 없이 로비로 나와 이달의 필사 코너에 앉았다. 다행이었다. 원고지 한 칸 한 칸에 글자를 옮기다 보니, 슬픔은 지우개로 문지르듯 조금씩 사라졌다. 그렇다고 필사를 필사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에게 필사란 문장을 음미하는 시간이라기보다 문장을 옮기는 노동에 가까웠다. 종이 한 장을 채우고 나면 늘 필사의 한계를 느끼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릴레이로 이어지는 공공의 필사는 내 몫의 숙제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부담 없이 넘길 수 있어 좋았다.
디지털자료실로 자리를 옮겨 노트북을 켰다. 이제는 나의 생각, 나의 문장을 적어 내려갈 시간이었다. 도서관 안이 너무 따뜻했던 탓일까.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졸고 말았다. 잠시 후 '크크릉, 컹'
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다행이었다. 내가 아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중년 남성의 코 고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떻게 깨울까 하다가 일부러 의자를 끄는 소리를 냈다. 잠귀가 밝은 모양이었다. 그는 언제 코를 골았냐는 듯 다시 노트북 자판 위에 손을 얹고 열심히 두드렸다.
도서관의 겨울은 너무 따뜻했네

▲치매 도서 코너노년을 위한 배려 ⓒ 이인자
나의 일터에서도 난방기 온도를 낮춰 달라는 요청이 종종 들어온다. 며칠 전에는 너무 더워서 잠이 온다며 목소리를 높인 민원인이 있었다. 그때는 잠은 이용자의 의지이고, 다소 과한 항의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용자가 되어보니, 도서관에서의 귀한 시간을 잠으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겠구나 싶어졌다.
종합자료실에는 '일생 책장'이라는 서가가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한 생애를 따라 읽는 책장이다. 청소년, 청년, 중장년으로 나뉜 추천 서가 앞을 서성이다 보니, 내 삶도 저 책장 안에서 함께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근사한 이름의 책장이, 언젠가 우리 도서관에도 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가야 할 무렵, 도서관을 한 바퀴 더 돌았다. 혹시 내가 놓쳐버린 포근하고 의미 있는 공간이 아직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 1층 로비에는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오고 갔는데, 사람이 빠져나간 뒤에도 그 공간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 마치 친정 엄마가 젊은 시절 즐겨 입던 앙고라 스웨터처럼, 도서관은 사람의 체온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창도서관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던 순간은, 노인을 위한 세심한 공간을 발견했을 때였다. 큰 글자 도서, 디지털자료실의 실버석, 치매 관련 코너까지. 노년을 향한 배려가 과하지 않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 자신도, 가족도, 이웃도, 도시도 점점 나이 들어가고 있다. 저속 노화를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둔해지는 오감의 퇴화를 멈출 수는 없다. 대신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감각이 있다. 사랑과 이해, 연민과 공감 같은 내면의 감각이다. 그 능력에 대해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프라이드 에이징'이다. 그리고 그 감각들을 확장해 주는 생활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도세권(도서관 근처 생활권)' 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반 세끼의 메뉴를 공개한다. 밥과 국, 누룽지는 기본이고 반찬은 일곱에서 여덟 가지였다. 팥죽과 잡채, 떡국 같은 특식은 말 그대로 식당 사장님의 깜짝 선물처럼 곁들여졌다.

▲도서관 백반한 끼에 8000원 ⓒ 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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