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무도 없는 공간에 전등은 켜져 있었다. 작은 포스트잇 하나는 물과 에너지의 낭비를 막는 일이 거창한 정책 이전에 사람의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이서준 학생은 그 장면에서 에너지 절약 그 자체보다 사람의 행동이 바뀌는 순간을 보고 싶었다.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그는 빈 학부생실에 불이 켜진 채 남아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마주쳤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불을 좀 끄고 나가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곰곰이 돌아보니 저 역시 일상 속 에너지 낭비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내왔더라고요. 저도 같은 일을 반복해 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이 문제를 '누가 잘못했는가'로 바라보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왜 안 끄고 나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불이 꺼질 수 있을까'였다.

행동을 바꾸는 작은 개입, 포스트잇

그가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전등 스위치 옆에 포스트잇 하나를 붙이는 것이었다.

전등 스위치 옆 포스트잇 위에 누군가가 그려 넣은 웃는 얼굴. 잔소리가 아니라 공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신호이자, 자발적인 동참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등 스위치 옆 포스트잇 위에 누군가가 그려 넣은 웃는 얼굴.잔소리가 아니라 공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신호이자, 자발적인 동참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이서준

'마지막으로 나가는 사람, 전등 OFF 확인!'

AD
처음부터 이런 문구를 정한 것은 아니었다. "나갈 때 불을 끄세요" 같은 안내문도 잠시 떠올렸지만, 곧 망설임이 생겼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이렇게 하세요'라는 말은 통제받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느꼈어요."

그는 경영학 수업에서 배운 자기결정성이론을 떠올렸다. 사람은 강요받을 때보다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낄 때 행동을 더 오래 유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지시 대신 질문을 택했다. '내가 마지막인가'를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문구였고, 포스트잇을 붙인 위치 역시 실제 행동이 일어나는 지점인 전등 스위치 옆이었다. 그러나 포스트잇을 붙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괜히 오지랖처럼 보이지 않을까, 누군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지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공용 공간이라는 점도 부담이 됐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말을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붙이고 난 뒤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누군가 떼어버리지 않을지, 괜히 문제를 만드는 건 아닐지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했다.

그럼에도 그는 "예전처럼 아쉽다는 감정만 갖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작더라도 행동을 남기고 싶었어요"라고 덧붙였다.

관찰된 변화, 작은 성취

변화는 비교적 빠르게 나타났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포스트잇을 붙이기 전에는 평일 5일 중 4번꼴로 밤에 불이 켜진 빈 학부생실을 보았지만, 붙인 뒤에는 그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숫자보다 더 기억에 남은 장면도 있었다. 어느 날 포스트잇 위에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잔소리처럼 보이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였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한 학생이 방을 나왔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들어가 불을 끄고 나오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이다. 그는 "단 한 번의 장면이었지만 '아, 이게 실제 행동을 바꾸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작은 실험 이후, 그의 생활 습관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공간을 나설 때 전등과 멀티탭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내 물건을 챙기는 확인이었는데, 지금은 공간 전체를 한 번 더 보게 됐어요."

그는 이를 큰 변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 중심의 확인에서 '우리가 함께 쓰는 공간'을 바라보게 됐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라고 생각해요"라고 설명했다.

다정한 오지랖이 만든 변화

그는 이 경험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다정한 오지랖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오지랖은 감시나 통제가 아니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아 맞다" 하고 스스로 행동을 바꾸게 만드는 개입이다. 그는 "에너지 낭비는 일부러 만드는 경우보다 관심이 잠깐 비는 순간에 생기는 일이 더 많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에게 에너지 절약의 출발점은 기술이나 캠페인이 아니라, 주변을 한 번 더 바라보는 관심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켜진 전등 하나와 그 옆에 붙은 작은 포스트잇. 그 사이에서 누군가의 행동이, 그리고 한 학생의 시선이 조용히 바뀌었다. 그는 이런 작은 개입이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을 붙잡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회봉사 과목의 일환으로 진행된 활동에서 출발해 학생 개인의 자발적인 실험과 성찰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기록이다. 기사에 인용된 내용과 사진은 학생의 동의를 받아 사용했으며, 원고는 발행 전 본인에게 공유되었다.


#에너지팬텀헌터스#전등끄기#생활속실천#시민행동#작은실험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오마이 물모이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독자의견2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