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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15 09:01최종 업데이트 26.01.15 09:01

출근할 때는 슬픔을 집에 두고 왔다

[시로 읽는 오늘] 박은지 '주말 상설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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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주말 상설 공연
- 박은지

이번 주말은 특별히 이해와 공감의 축제
땀 흘리는 아이들과 스웨터를 껴입은 모두에게 알맞은 바람
남몰래 연습해 온 외줄 타기를 오늘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누가 본 걸까 나의 외줄 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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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래는 실패했습니다
누군가가 눈을 숨겼을 기둥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주에 줄에서 떨어진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덕분에 제가 줄에 오르게 되었어요
왜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걸까

격려의 박수가 쏟아집니다
수많은 손이 부딪칩니다
볕이 뜨거운 날에는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들이 좋았는데요
동아줄 한가운데로 발을 옮깁니다

줄을 흔들면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줄 위에 착지한 적이 있던가

격려의 박수가 장마처럼 이어지고요
모두들 잘했다고 괜찮다고 평화로운 얼굴로 돌아갑니다
이해와 공감의 축제는 만족스러운 피날레를 맞이하고

어디까지 본 걸까 나의 찢어진 밤을

아무도 몰래 줄 위에 올라
누구도 듣지 못할 말을 내뱉습니다

출처_시집 <여름 상설 공연>, 민음사, 2021
시인_박은지 : 2018년 <서울신문> 신춘문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여름 상설 공연>이 있다.

 박수는 쏟아지는데, 나는 여전히 줄 위에 있다.
박수는 쏟아지는데, 나는 여전히 줄 위에 있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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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매우 슬펐고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출근할 때는 슬픔을 집에 두고 왔다. 슬픔을 나눈다는 말을 믿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침의 거리는 활기차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와중에 사람들의 숨어 있는 슬픔을 본 듯했다. 그것이 나의 것과 닮아있었기 때문에 더욱 잘 보였다. 당신도 나의 슬픔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슬픔은 여전히 나의 집에 놓여 있었다. (맹재범 시인)

#박은지시인#주말상설공연#여름상설공연#한국작가회의#시분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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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시로 읽는 오늘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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