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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날은 흐리고 싸락눈이 내렸다
- 김용만

날은 흐리고 싸락눈이 내렸다
눈 내리고 흐린 날은 그리운 것들도 떠돈다
소죽솥에 불 메우고
아버지는 마당을 쓸었다
큰눈이 오려나 강 건너 앞산 밑이 자욱하다
황토 마당에 쓸린 싸락눈이 콩고물처럼 밀린다
쓸지 않아도 될 마당이지만
묵묵히 빗질하는 아버지는 엄숙했다
저녁 지을 쌀 까불다 챙이 끝을 쳐
싸라기 한줌 마당에 던져주고
자욱한 앞산 바라보는
어머니 손이 붉게 젖어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눈이 오면 설레었다는 것을
아버지 나이 되어 알았다

아버지 성긴 머리 위 오래 머물던 싸락눈
닭장 문 걸고 토방에 발을 터는
아버지의 가지런한 하루

출처_시집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창비, 2025
시인_김용만 : 1987년 <실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가 있다.

 싸락눈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부모의 하루
싸락눈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부모의 하루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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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흐린 날 싸락눈이 내리고 있다. 아버지는 "쓸지 않아도 될 마당이지만/ 묵묵히" 빗질을 하고, 어머니는 "저녁 지을 쌀 까불다" 앞산을 바라본다. 눈이 내린다는 것은 설레는 일. "아버지도 어머니도 눈이 오면 설레었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눈 오는 날 각자의 방식으로 소박한 설렘을 느꼈을 부모님의 삶도 나와 같다는 것을 시인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 눈은 곧 녹아서 사라지겠지만, 시인의 기억 속 그리운 부모님의 모습은 오래고 남을 것이다. 말 없는 아버지의 책임감과 "손이 붉게 젖어" 있는 어머니의 헌신이 가지런한 하루 속에 정제되어 있다. (백애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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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오늘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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