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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릴 때 동네에서 함께 자랐던 친구 K가 오랜만에 전화했다. 전화에 입력된 친구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뭔가 불길한 소식일 것 같은 예감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대뜸 용건을 캐묻듯 말했다.
"오랜만이다. 웬일이야? 별일 없지."
친구는 "새해를 맞아 안부를 전할 겸 전화했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제야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친구는 다소 퉁명스러운 내 말투에 당황했을지 모른다. 나이 들면서 걱정하는 것이 많아졌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지만 친구의 갑작스러운 전화도 왠지 불안하다.
중학교 다닐 때 만나 거의 매일 붙어 다녔던 우리는 서로 집안의 족보를 꿰듯 친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친구가 이야기하면 내가 이어가는 식이다.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대화는 자연스레 가족과 아이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처럼 아들 둘을 둔 그는 "자식들은 결혼해 분가하고 부부는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그의 근황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요 몇 년간 신장이 안 좋아 체중이 10여 kg 빠지고 한동안 입원도 했다는 것이다. 퇴원 이후 병을 잘 관리하면서 지금은 신장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병으로 건강을 잃어봤기에 나는 그의 성공적인 투병생활을 응원하기 바빴다.
건강했던 친구가 그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소식은 뜻밖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안부전화를 할 걸 하는 미련이 순간 스쳤다.

▲옛친구의 소중한 인연은 노후에 더 그리워진다. ⓒ 픽사베이
새해 처음 만나는 친구에게 할 말은?
노후에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가까운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감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득 친구가 자신의 근황을 말하려고 전화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플 때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해서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안부를 주고받은 게 언제인지 가늠이 안 된다. 둘은 근 10년을 만나지 않았다. 그 흔한 SNS도 하지 않았다. '헤어질 결심'이 있게 한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경조사가 있을 때 잠시 연락한 게 전부다. 서로 잊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내 경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친구는 내가 그리워 연락한 것 같다. 나 또한 어린 시절의 추억과 푸근한 정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소원했던 아쉬움을 달랬다. 진짜 인연은 이심전심 통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 길게 통화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데 그와 30분 이상 이야기했다. 친구도 처음 전화할 때와 달리 위로와 공감 덕분인지 기분이 들떠 있었다.
친구와 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서로 만나지 않아도 연락하지 않고 지내도 늘 가슴에 남아 뜬금없이 떠오르는 사람은 어릴 적 옛친구"라는 것이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사는 나이가 됐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려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는 친구가 고마운 이유이다.
전화를 끊고 나 자신을 돌아봤다. 친구에게 진정 필요한 존재로 살았는지 반성하면서 올해는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다짐했다. 어릴 때 사귄 친구야말로 소중한 인연이다. 그러기에 친구도 내게 서슴없이 전화했을 것이다. 살면서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새해 들어 가장 먼저 만날 친구는 K로 정했다. 친구 말처럼 우리가 본다면 앞으로 얼마나 자주 만날 것인가. 만나면 그에게 무심했던 나를 용서하라는 말부터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