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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된 지 한 달이 조금 더 지났다. 엄마의 속에서 지내다 시끌벅적한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온몸으로 각종 새로움과 부딪혀 살아가고 있다. 그의 신경다발과 관절, 머리와 마음속에 울려 퍼지는 성장의 천둥은 얼마나 요란할까. 이 녀석이 내뱉는 울음소리는 그것의 십분의 일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아기가 밤에 두 시간 정도씩 곤히 잔다. 잠과 잠 사이에 한 시간 정도를 먹이고, 토닥이고, 누인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밥을 먹고 쉬이 잠들지 못하고 끙끙대는 통에 부모의 두 눈은 퀭해졌다.

이제는 세 시간 단위로 규칙성이 생긴 듯하여 아이를 만나온 순간들을 되뇔 여유가 생겼다. 먹인 후 아이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는 비법이 생긴 덕이기도 하다. 적어도 10년을 생각하고 시작한 육아일기의 두 번째 이야기는 결혼, 출산, 신생아 육아의 과정에서 강렬했던 순간들만 짤막하게 서술해보려 한다.

작디 작은 아기의 발
작디 작은아기의 발 ⓒ 안사을

결혼 – 질문과 토론 위에 다져진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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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모든 일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관습을 거부하진 않지만, 그것을 따르는 본능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는 편이랄까.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아이를 가진다면, 당신은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대답하려다 말문이 막혔다. '그냥'과 '당연'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고, 그것은 결국 검증되지 않은 타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시간을 조금 달라고 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나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겠노라고 했다. 이유를 찾는 시간이었다기보단 이미 내 안에 있었던 것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답을 건넬 수 있었다.

"당연히, 인류의 본능 중 하나일 테고 그것을 거스를 만한 강력한 요인이 없었으니 어쩌면 가장 큰 이유는 무의식적인 욕구일 수 있겠어. 부모님 등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오랫동안 지속된 사회적인 기대감에 대한 반응일 수 있겠고. 그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아."

말을 이어 나갔다.

"정리하자면, 나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 내 아이는 당연히 행복하게 클 것이라는. 내가 그렇게 자라왔고 삶은 고통이라는 의식보단 인생은 너무도 재미있고 따뜻하고 보람찬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나 또한 겪은 대로, 배운 대로 아이에게 그런 인생을 물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이 거친 세상에 그렇게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는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면 내 아이에게도, 이 사회에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

그녀가 되물었다.

"우리 아이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막연한 생각 아닐까? 지구는 병들고 있고, 세상은 각박해져 가고,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쟁취해야 할 것들이 쌓여있을 텐데 과연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을까?"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일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하지만 선험적으로 쌓여있기도 한, 어쩔 수 없는 내리사랑을 해야 할 존재로서 필연적으로 품는 근본적인 의문일 것이다. 불현듯 아이를 갖게 되어 이 과정을 차분히 겪지 못했다면 신생아를 안고서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내 안에 던졌을 것 같다.

위 대화보다 먼저 토론이 또 있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의견이 합치되고서야 결혼을 위한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아내에게 담담하지만 단단한 말을 건넸다. 어쩌면 선문답 같은.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잖아? 내가 생각하는 순서는, 만남 뒤에 결혼이 있고 결혼 뒤에 출산이 있다는 거야. 만남을 결심하고, 결혼을 결심하고, 같이 살다가 출산을 결심하면 되지 않을까? 낳든 말든 우리의 의견이 같아지면 행할 거야. 어느 한쪽만 원한다고 그런 중차대한 일을 밀어붙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게 우린 결혼했다. 단돈 45만원으로 신부의 취향과 몸에 꼭 맞는 드레스를 사 입었고, 평소 출근 때 입던 양복 차림에 나비넥타이만 하나 더했다. 예식 공간이 마련된 레스토랑을 예약하여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 속에서, 석양이 질 때까지 하객들과 함께 여유로운 식사와 담소를 즐겼다.

출산 - 아내의 고통을 기억하라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말했다. 아기를 갖지 않겠냐고. 여러 차례 부모님의 질문이 있었지만 절대 아내에게 전달하지 않았던 터였다. 가끔, 우리에게 만약 아이가 있다면 여행의 방식이 어떻게 바뀔 것이며, 숲속에서 아이와 어떻게 자연을 만나고 싶은지 등에 대한 상상을 말하곤 했을 뿐이었다.

사실은 진심과 전략이 반반쯤 섞인 행동이었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좋은 사람이라는 신뢰가 쌓이고 우리 집이 아이를 키울 만한 곳이라는 확신이 서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생기리라 생각했다. 준비되지 않은 청은 오히려 그 시기를 늦출 뿐이라고도.

아내의 입에서 아이를 갖자는 말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술, 담배 등 안 좋은 것들을 멀리하고 이미 심신의 준비가 된 터였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감사하게도 금세 아이가 찾아왔다. 입덧, 임신성 당뇨 등 갖은 우여곡절이 지나고 만삭이 되었다.

12월 초, 예정일에 딱 맞춰 진통을 시작했다. 자연분만하기로 준비해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잘 내려오지 않았고 12시간이 넘도록 진통한 뒤 결국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가장 안 좋은 경우를 겪었다고나 할까.

진통실에서 초산의 경우 8시간 이상 진통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진통실에서초산의 경우 8시간 이상 진통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 안사을

오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점점 심해지는 진통을 겪는 아내 곁에 최선을 다해 있었다.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손을 잡아주고 짧게나마 연습해왔던 호흡법을 함께 하며 리듬을 맞춰 주었다. 그런데 이날 마음 깊이 대단히 역설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고통은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아내가 그렇게 아파하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부터 다섯까지, 또 하나부터 일곱까지 숫자를 세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대신 아파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일 뿐, 아무런 효력이 없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그때 결심한 것이 있다. 대신 아파줄 수 없기에, 그래서 아내의 고통을 상상 속에서라도 알 수 없기에,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다름 아닌, '육아와 가사에 최선을 다하기'라는 것. 실질적으로 아내를 쉬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실효성 있는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쉬고 싶어질 때마다 진통실 침대 위에서 차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스런 소리를 내던 아내를 생각한다. 자고 일어난 직후, 말끔히 치워진 부엌과 뽀송한 상태로 아빠 품에 있는 아이를 보며 산후 우울증 따위는 찾아오지 않은 행복한 표정으로 서 있을 아내를 상상한다.

신생아 졸업 때쯤 생각난 큰어머니의 말씀

첫머리에 아이 생활의 규칙성이 조금 생긴 것 같다고 썼다. 육아 경험이 있는 이는 분명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비교급이지 결코 24시간 동안 그랬다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패턴 가운데 반의 반나절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 온 첫날을 기억한다. 생후 4일째 되는 날 딱 두 주먹 정도가 되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첫 번째 관문은 기저귀였다. 아이가 처음으로 코앞에서 울기 시작했을 때, 아내와 나는 서로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당황, 놀람, 결연 등의 감정이 눈빛으로 오고 갔다.

"밥 먹을 때 됐나?"
"아닌 것 같은데?"
"기저귀 갈 때 된 건가?"
"그런가 봐!"
"천 기저귀 가져와?"
"...."
"일단 일회용 마저 쓰자!"
"좋아!"

천 기저귀를 쓰기로 했고, 접는 법과 채우는 법 등을 영상을 통해 익혔지만, 첫 번째 마주한 실전의 순간 우리는 병원에서 쓰던 마지막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상상 속 완벽한 손놀림과는 매우 달랐다. 숨이 넘어갈 듯 울면서 버둥거리는 생명체의 아랫도리를 갈아입히는 것은 생각보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기저귀를 잡는 손가락에 아이의 살이 꼬집힐까 두려웠다. 드디어 갈아입히고 조심스레 안아 올렸을 때 아이의 울음이 그쳤고 우리는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안도의 눈빛이었다.

보통 산후조리원에서 보내는 2주를 별도의 인력도 없이 집에서 온전히 보내는 동안 아이의 표정과 울음을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순탄하게 육아의 길을 걷게 되는 건가' 생각했다. 3주차가 되던 순간 우리의 핑크빛 판단이 여지없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우리가 체득한 해결책을 모두 제공해도 이유를 알 수 없이 울었다. 이전에 듣던 예쁜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진화의 역사가 일부러 그렇게 설계라도 한 듯, 아이의 울음은 커다란 스피커에서 최고 볼륨으로 나오는 소리보다 더 고막을 아프게 울렸다.

아내는 문득 탄생을 축하하는 통화에서 큰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감동적인 문장이었지만 막상 겪으니 더 와닿는다고 했다.

"낳는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야. 자식이 부모를 만드는 거란다."

종종 '하늘이 나의 인내심을 실험하기 위해 이 아이를 보내신 것인가' 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 외에도 울고 보채는 아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쩌면 원초적이고 어쩌면 철학적이다.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해 골몰하기도 하고, 그냥 대충 키우고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힘을 내본다.

육아를 얼마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만나 온 보통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또한 지금 가르치고 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존중심이 생긴다. 누구나 이렇게 인내의 시간을 거쳤을 것이며, 누구든 한때는 이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와 더불어, 당연히 받아야 할 보호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린 영혼에 대한 끝도 없는 측은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가 되어 봐야 진짜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하던 선배 교사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한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복귀하면 새롭게 만날 아이들이 전보다 더 소중한 영혼으로 보일 것 같다.

엎드려 놀기(터미타임) 연습 이제 1개월이 지나서 '엎드려 놀기' 자세를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엎드려 놀기(터미타임) 연습이제 1개월이 지나서 '엎드려 놀기' 자세를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 안사을


#신생아#육아#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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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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