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앞서 88서울올림픽은 정권을 탈취한 군사 독재 정권이 연출한, 국가 개조를 위한 거대한 통치 프로젝트였음을 다뤘다. 12.12 군사 반란으로 집권한 신군부는 5·18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며 국민의 지지와 정당성을 잃었다. 이를 덮고, 정치적인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국위선양'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제시, 정권의 태생적인 결함을 '서울올림픽'으로 덮으려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소외가 빚어졌다. 외국인 관광객의 시선에 맞춰 도로를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사이 갈 곳 없는 노점상과 소외됐던 철거민을 무대 저편으로 치웠다. 강제철거로 주거권이 침해됐고, 서울은 모두가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아닌, 보여주는 곳이 됐다. 여기서 비롯된 사회적 갈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박해남 교수와의 인터뷰는 계속됐다.
가상의 서구인 앞에서 공연하는 배우가 된 시민
- 서울올림픽은, 이후 강남 중심의 위계구조를 고착화하는 시발점이 됐다는데.
"치밀한 기획으로, 그동안 평범한 베드타운이었던 영동을, 새로운 중심지 '강남'으로 재편한 것도 서울올림픽이 기점이었다. 연출자들은 서구적 외양도 중시해 개포지구 중 경부고속도로 주변은 주택의 평면 지붕도 금지했다. 게다가 30~50도 각도로 기울어진 지붕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강남 일대는 대단지 아파트와 공원, 백화점, 코엑스 등을 집중 배치했다. 최소 몇 층, 건물 특징, 지붕 모양 등 도시 외관을 매우 세밀히 통제해 관리했다."
- 세밀한 개입과 통제가 이뤄진 듯하다. 주민 감시까지 이뤄진 이유는 뭔가.
"전두환 정부는 기존 새마을운동에 '사회정화운동'을 추가했다. 여기에 '범민족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 같은 조직을 신설했다. 주민들의 일상을 감시하는 아르고스(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의 눈이었다. 거리를 관련 플래카드로 잔뜩 채우고, 올림픽 평화구역을 설정하고, 일상 곳곳을 표어로 도배했다. 그 끝에서 연출자들은 그 구역에 집회와 시위도 금지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시민에게 '문화인'이 될 것과 '문명화된' 행동을 요구했다. 연출자들은 가상의 서구인을 들이댔고, 시민은 이들 앞에서 공연하는 배우처럼 대본에 따라 살아갈 것을 요구받았다. 광장의 주권, 일상의 주권을 차단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1988년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저자 박해남 교수(계명대 사회학과). 그는 "사회 구성원을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그것을 평가하고 따져 묻던 여러 제도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박해남
서울, 살아가는 공간 아닌 사야 하는 대상으로 변질
- 결국, 연출을 위한 희생이었다.
"이들이 내세운 명분은 '빈곤과 무질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산업적 기반 없이 인구 밀집의 기형적 도시화가 진행됐는데, 이를 해결한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이들이 제시한 개념은 '연대'가 아닌 '협동'이었다. 연대는 권리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협동은 다르다. 무조건적인 의지의 일치, 습속의 일치가 전제다. 누군가가 목표로 설정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것이 군인이 말하는 협동이다.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동참해야 한다는 규범만 존재했다. 그렇게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때 유무형의 성취가 이뤄진다는 게 연출자인 군인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도시에 대한 권리는, 성취의 대상이자 구매의 대상으로 변질된 것이다."
- 그럼, 노점상 단속과 강제 철거도 그런 논리에서 이뤄진 건가.
"그렇게 볼 수 있다. 재개발과 철거, 단속 모두 올림픽을 위한 협동과 협조라는 논리 속에서 진행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가 개별 구성원들에게 도시에 대한 권리를 과연 보장할 수 있겠는가? 올림픽은 모두의 이벤트였으나, 올림픽이 개최된 도시에서 일하고 살 권리는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이후 한국 사회와 도시는 더 이상 상호 연대와 호혜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구매를 통한 도시의 권리를 획득해야 했고, 노점상과 임대아파트 등 구매하지 않고 자격을 갖추지 않은 이들을 자신들의 공간으로부터 추방하기 시작했다. 좋은 학력과 훌륭한 직장을 갖춘 이들만이 누리는 공간이라 어느 순간부터 당연시되고 있다."
- 앞서 협동과 협조를 요구하며 도시화를 하는 과정을 '사회적 훈육'이라 지적했는데.
"군인들이 도시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무력이었다. 1961년 부랑인과 윤락여성을 낙인찍어 강제 이송하고,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까지 모든 조치의 본질은 법적인 정당성보다 권력자의 의지였다. 이러한 무력과 폭력의 정점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유혈사태였다. 무력으로 사회질서를 잡겠다는 권력의 잔혹함이 드러난 것이다. 서울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빚어진 많은 단속과 관제 캠페인도 시민 훈육을 위해 거대한 국가적 명분 뒤에 숨은 사회적 압박과 폭력인 것이다."

▲마라톤 경로인 올림픽대로를 중심으로 대규모 빌딩을 세우는 도심 재개발이 강행됐다. 그 과정에서 산등성이 무허가 주택과 달동네들은 시선 분산을 위해 '도시 정화'라는 명목하에 재개발 1순위가 됐다. ⓒ 문화체육관광부
혐오의 일반화, 갈수록 문제가 되는 이유
- 최근 몇 년 사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극심한 갈등과 분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88년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해석하나.
"나는 책에서 88년 체제를 '군인(권력자)이 주도한 기존 공연계약 후 세계(외국인)라는 관객과 사회구성원 간에 맺어진 새로운 공연계약이 특징인 체제'라고 정의했다. 88년 체제는 연대나 호혜성만으로 사회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권보다 자격을 먼저 논한다. 이런 사회에서 연대는 쉽게 이뤄질 수 없다. 무대 아래나 저편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삶은 고립된다. 자격을 따져 묻고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면 고립되고 마는 사회에서 혐오도 일반화 된다. 자격과 퍼포먼스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서둘러 나와 사회구성원의 권리를 폭 넓게 인정하고자 하는 소통이 수시로 이뤄져야 한다."
- 그렇다면, '공연 계약'이 아닌 '사회 계약'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변화는 어디부터 이뤄져야 할까.
"먼저,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사람에게만 주목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자격을 갖췄다고 여겨지는 이들만을 위한 사회안전망 제도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88년 체제가 가져온 병리적 현상 중 하나는 '평균을 비하하는 언어들'의 등장이다. '국평오'라는 말은 '국민 평균은 (수능) 5등급'이라는 말인데, 5등급은 정규분포도 중간이자 다수다. 이 말이 왜 조롱의 대상이 됐을까.
평균이라는 말은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조롱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들이 주로 진학하는 대학은 '지방사립대'다. 현재 사회에서는 지방대학을 나온 이들의 아우성은 잘 들리지 않는다. 평균이 무시당하는 사회, 조롱당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극장도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상'과 '일반'은 오히려 무대 아래에 있는 평균의 사람들이다. 사회적 시선을 넓힐 필요가 있다. 사회의 사각지대를 살피고, 시야를 바꿔야 제도적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
- 마지막 질문이다. 극장도시 서울이 과시와 차별, 퍼포먼스가 아닌, 우리 삶을 지탱하기 위한 공유지가 되기 위해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연대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객석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평가하던 리바이어던을 무대로 불러 우리 삶에 안전을 보장하게 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을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그것을 평가하고 따져 묻던 여러 제도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주거를 포함, 도시의 권리를 폭 넓게 인정하고, 이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한다. 무대 아래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연대와 호혜성을 기반으로 사회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여러 방안이 있다. 동료 시민을 돌보는 모임,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처럼 함께 연대해 기회를 제공하는 조직이 많아야 한다. 그런 조직과 모임이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삶의 안정성을 기반한 도시로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88년 체제를 뛰어넘어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