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인권 365- 아동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다>는 일상과 사회 속에서 발견한 아동인권의 문제를 기록하는 연재입니다.

▲아이들 ⓒ gpiron on Unsplash
정부는 지난 2025년 12월 26일 아동정책기본계획(2025~2029)에 아동기본법 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동기본법은 이미 2024년 7월 4일 임시국회에 제출된 상태지만 그 이후 현재까지 계류 중이며, 아직 본회의 의결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이 법안은 과거에도 국회에 상정됐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된 전력이 있다). 정부는 다시 한 번 아동기본법 제정을 정책 과제로 호출하며 의지를 보인 것이다.
나는 이 법을 둘러싼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세 가지 용어에 주목하고자 한다. "아동은 권리의 주체", "아동권리 존중", 그리고 아동권리를 생존·보호·발달·참여로 구분하는 이른바 4대 권리 범주다.
권리의 주체란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먼저 "아동은 권리의 주체"라는 표현이다. 이는 분명 이전보다 한 걸음 나아간 인식을 보여준다.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 문구가 아동기본법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조항으로 구성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동이 권리 주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아동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으며, 다툴 수 있고, 구제받을 수 있는 지위를 말한다. 다시 말해 권리는 절차와 구제 수단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가 빠진 채 "권리의 주체"를 말한다면, 이는 법적 개념이 아니라 말장난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동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연구와 논의, 그에 기초한 법 내용을 마련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동은 권리 주체라는 말은 그저 좋은 말 선언에 머물 것이다.
이 공백은 현장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대학에서 아동권리와 복지를 가르치고 있다. 부모 교육과 교사 연수 현장, 자문과 인터뷰 자리에서 오랫동안 아동권리를 설명해 왔다. 한 학기 한 과목에서 다뤄야 할 아동 관련 법만도 십여 개에 이른다.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법, 영유아보육법, 청소년기본법, 교육 관련 법률까지 모두 아동을 다루지만, 권리를 기준으로 정리된 체계는 아니다.
그 결과 누군가 "이 사안이 아동권리 침해인가"라고 물을 때마다 설명은 쉽지 않다. 또 누군가 "이것이 아동권리의 사안이다"라거나 "그것은 아동권리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도 판단은 늘 애매하다. 기준이 없기에 각자 주장하면 그걸로 끝인 경우도 많다(물론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권리 담론이 지닌 특성이라 볼 수도 있다).
현실에서 어떤 아동 사안이 발생하면 아동권리가 침해됐는지를 묻기보다, 어느 법에 해당하는지, 어느 부처 소관인지를 먼저 따진다. 아동상담과 치료, 아동교육이나 생활지도처럼 선의로 이루어지는 개입조차 어디까지가 권리 보호이고 어디서부터가 침해인지 명확히 설명할 기준이 없다. 이는 현장의 이해 부족이나 개인의 역량 문제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아동권리가 작동할 구조가 법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이다.
아동권리 존중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둘째는 "아동권리 존중"이라는 표현이다. 이 말은 정책 문서와 교육·연수 현장에서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나 역시 교육과 연수 현장에서 이 표현을 사용해 온 사람 중 하나다. 30여 년 전, '아동인권'은 고사하고 '아동권리'라는 말 자체에도 강한 거부감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동권리 존중이라는 표현은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경계하는 사람들 앞에 섰을 때다.
아동권리를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운 조건에서 말해야 할 때 '존중'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선택한 언어였다. 그러나 이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해 온 지금, 분명한 한계도 드러난다. "아동권리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상황에서는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침해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아동권리를 개인 윤리와 태도에 집중케 한 결과이다. 아동을 존중하지 못하게 만든 제도적 조건이나 구조적 원인을 묻기보다, 부모나 교사 개인의 인식과 태도를 문제 삼는 데 그치게 하였다. 결국 무엇이 아동을 권리 주체로 대우하는 행위인지, 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범주가 아니라 기준이 필요한 이유
셋째는 아동권리를 생존·보호·발달·참여로 구분하는 4대 권리 범주다. 이 분류는 수십 개의 조항으로 구성된 아동권리협약을 설명하는 데에는 유용하다. 그러나 아동기본법을 설계하고 책임을 묻는 기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범주는 권리를 나열할 뿐,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참여'는 별도 영역이거나 선택사항처럼 취급되기 쉽다.
아동권리는 범주를 나누고 설명하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책임과 절차 속에서 비로소 작동한다. 누가 무엇을 존중해야 하는지, 누가 어떤 침해를 막아야 하는지, 침해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가 드러나지 않는 권리는 법이 되기 어렵다. 아동기본법은 아동권리를 '설명하는 법'이 아니라, 분쟁과 충돌의 순간에 실제로 작동될 수 있어야 한다.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법이어야 한다.
아동권이 문제 되는 순간은 대부분 권리 충돌의 장면에서다. 예로 부모의 양육권과 아동의 의사표현권, 교사의 교육권과 아동의 자유선택권, 보호를 명분으로 한 국가의 개입과 아동의 자기결정권 등이 그렇다. 세부 사안으로 들어가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이미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충돌하며 맞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이를 판단할 기준은 여전히 법적으로 모호하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뜨거운 토론장을 지나며 견뎌야 할 것이다. 아동기본법은 선언으로 끝나는 법인가, 권리를 담은 법인가. 아동과 관련된 각 주체 간 권리 충돌을 회피하지 않고 다룰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동의 권리가 부모의 권리, 교사의 권한, 국가의 보호 책임과 충돌할 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며, 그 판단을 어떻게 다툴 수 있는가. 이 법은 교육과 연수 현장의 자료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행정소송과 헌법적 판단에서 실제로 원용될 수 있는 사법적 기준으로 기능할 것인가.
논쟁을 피해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아동기본법이 제정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 법은 아동권리를 둘러싼 혼란을 오히려 더 키울 것이다. 아동권리를 설명할 때마다 수십 개의 법을 나열해야 하는 현실에 또 하나의 추상적 법이 추가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동기본법은 변화와 실효성을 담아야
아동기본법은 '있으면 좋은 법'이 아니다. 이 법이 없어서 아동 권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야 할 법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현행 법체계만으로는 아동의 권리를 충분히 다루기 어렵다는 인식에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아동은 권리의 주체"라는 당위적 선언, 그 다음이다. 아동권리가 무엇인지 몰랐던 시대, 설명의 시대를 거쳤다면, 다음 단계는 책임과 의무를 제자리에 고정하는 일이다.
아동기본법을 만들면 무엇이 바뀌는지, 그 법이 실제로 어떤 순간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제 답해야 할 때가 왔다. "아동은 권리의 주체"라는 문장이 그저 좋은 말로 남을지 아닐지 그 입증 책임은 이제 분명히, 법 제정을 말하는 정부에게 있다.
덧붙이는 글 |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홈페이지와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