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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손을 꼭 잡은 손주의 손아기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다. ⓒ 김경희
해가 지나 벌써 작년의 일이 되었다. 지난 11월 20일, 며느리가 예쁜 손주를 낳았다. 필자도 드디어 법적으로(그런 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되었다. 다 자란(?)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알아서 모든 것을 척척 준비한 탓에, 출산이 임박하기까지 시어머니가 할 일은 크게 없었다. 서운하면서도 대견했다.
출산 당일, 아들은 며느리가 진통을 시작했고 자신은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언제 출산할지 모르니 괜히 병원에서 기다리느라 고생하시지 말고 집에 계시다가 출산하거든 오시라고 덧붙였다.
이른 아침에 문자를 받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저녁이 되었다. 출산을 했으면 문자를 보냈을 텐데,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니 더 기다려야 하는 모양이다. 오랜 산고를 겪고 있을 며느리가 걱정되었다. 성격 급한 필자는 아들에게 문자도 넣지 않고 병원을 찾았다.
사뭇 다른 분만실 풍경
아기가 태어나는 풍경은 필자가 경험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분만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남편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잠시 나왔다가 들어갔고 간호사가 나왔다 들어갔다. 오늘 출산하는 산모가 더 있는 것 같았지만 과거처럼 분만실 앞에서 종종거리며 초조하게 기다리는 부모들의 모습은 없었다.
시대가 변하니 분만실 앞 풍경도 변한 듯 싶었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깨끗하고 청결한 복도 건너편에 신생아 면회실이 보였다. 여러 산모와 보호자들이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아기들을 면회하고 돌아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들이 벌게진 눈으로 분만실을 나왔다. 필자를 발견하고는 힘든데 왜 왔느냐는 걱정도 잠시, 태어난 아기와 출산에 대한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감동이야'를 연신 말하였다. 표현력이 없지는 않은 아이인데, 그 순간 다른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필자 역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다. 내가 낳은 자식이 부모가 되고 나에게는 손자가 생겼다. 자식을 낳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손주의 손갓 태어난 손주의 손. 아들을 낳았을 때 손가락이 다섯 개라는 사실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 김경희
차에 실어놓은 출산용품을 가지러 주차장으로 함께 내려가면서도 아들은 출산 순간의 벅찬 감동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도 그렇게 낳았어?' 속으로 어이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그러면 저는 다르게 낳았을까? 부모가 되면서 부모의 마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아들이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대답하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떨렸다. '그럼, 당연하지.'
며느리는 병실에서 삼 일간 지낸 후 산후조리원으로 입소했다. 이 주간 조리원의 조력을 받으며 아기 돌보는 법 등을 배우고 몸조리도 하는 것이다. 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면 삼 주 동안 시에서 지원해 주는 산후도우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첫 아이 때는 아기 돌보기는 당연히 어렵다. 특히 매일 목욕을 시키다 보면 손목이 시큰거리는 등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데, 국가가 이 정도라도 지원을 해준다고 하니 다행이다.
만드는 동안 행복했다

▲손수건아기들은 무형광 원단으로 만든 손수건을 써야 한다고 해서 무형광 삼중거즈 원단으로 손수건을 만들었다. ⓒ 김경희
집으로 돌아왔다. 손주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친구들이 옷 선물을 많이 해줘서 옷은 필요 없다고 하고 당분간은 배냇저고리만 입을 터이니 딱히 아기를 위해 해줄 만한 것이 없었다. 문득 손수건이 생각났다. 아기 때는 손수건을 많이 쓴다. 젖 먹은 후 입가도 닦고 턱받이 대용으로도 쓴다. 많아서 나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손수건 아닌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무형광 삼중거즈 원단을 주문하고, 구석에 처박아뒀던 오버록 미싱이랑 재봉틀을 꺼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오버로크(옷감의 가장자리가 풀리지 아니하도록 꿰매는 일)를 쳤다. 손수건 가장자리에 조그맣게 수도 놨다. 새끼손톱만 하게 장미며 이름 모를 풀꽃을 수놓았다.
아기 용품을 준비하면서 손수건 준비를 안 했을 리가 없으나 며느리가 손수건을 잘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손수건을 만드는 어미의 마음을 아들 내외가 알아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알아주지 않은들 어떠랴. 수를 놓는 동안 갓 태어난 손주를 떠올리며 행복했으니, 이런 행복을 세상 어느 누가 줄 수 있을까?

▲손수건무형광 삼중거즈 원단을 사서 오바록으로 가장자리를 감싸고 가장자리에 자수를 놓았다. ⓒ 김경희

▲손수건손수건 끝 가장자리에 손톱 만한 자수를 놓았다. ⓒ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