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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이름으로 시니어 글쓰기 수업을 합니다. 수업에서 있던 일을 연재하고 있어요.
 수강생 S님은 6개월째 '돼요'와 '되요'를 구분하지 못하신다. '웬지'와 '왠지'도 헷갈려하신다.
수강생 S님은 6개월째 '돼요'와 '되요'를 구분하지 못하신다. '웬지'와 '왠지'도 헷갈려하신다. ⓒ kellysikkema on Unsplash

수업 전날이면 어김없이 카톡으로 글이 도착한다. 받은 글을 읽다보면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보인다. 빨간 줄을 그어 표시해두고, 다음날 수업에서 함께 고친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고친 부분을 공책에 적어가신다. 다음주가 되면 신기하게도 그 부분은 맞게 쓰신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시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시는 분이 눈에 더 띈다.

수강생 S님은 6개월째 '돼요'와 '되요'를 구분하지 못하신다. '웬지'와 '왠지'도 헷갈려하신다. 수업 때마다 알려드린다. 'ㅚ'와 'ㅙ'는 소리가 비슷해서 어르신들이 특히 어려워하시는 부분이라 천천히, 여러 번 설명한다. S님은 그때마다 "아, 그렇구나"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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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음주가 되면 똑같이 틀리신다. 처음엔 내가 설명을 잘못했나 싶었다. 다른 방식으로 알려드렸다. "'돼요'는 '되어요'가 줄어든 거예요"라고 했다가, "'해요'로 바꿔봐서 말이 되면 '돼요'예요"라고도 했다. S님은 매번 이해하셨다는 듯 웃으시고, 다음주엔 또 틀리셨다.

3개월쯤 지났을 때 나는 작은 카드를 만들어드렸다. 자주 틀리시는 표현들을 정리해서 책상 앞에 붙여두시라고. S님은 고맙다며 카드를 받아가셨다. 그리고 다음주, 여전히 같은 부분을 틀리셨다. 나는 조금 지쳤다. 어르신이 나이가 많으셔서 그런가, 기억력이 떨어지시는 건가, 내 설명이 부족한 건가.

그러던 어느 날, S님이 쓴 글 끝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선생님한테 맨날 틀린다고 지적받는데 맞게 쓰면 어색하다. 나는 평생 이렇게 썼다. 틀려도 이게 내 글 같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멈췄다. S님은 못 고치신 게 아니었다. 안 고치신 거였다. 6개월 동안 나는 S님이 배우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S님은 그저 당신의 방식을 지키고 계셨던 거다.

이상한 '틀림'의 다른 이름

 나는 그 틀림 앞에서 빨간 줄을 긋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틀림 앞에서 빨간 줄을 긋지 않을 것이다. ⓒ szolkin on Unsplash

세상은 정답을 요구한다. 학교에서는 틀린 답에 X표를 그었고, 직장에서는 오류 없는 보고서를 원했다. 맞춤법 검사기는 빨간 줄로 틀린 부분을 표시한다. 한번이라도 더 정확하게, 한번이라도 더 올바르게 쓰는 것이 능력처럼 평가받는다.

S님의 마지막 문장은 그 흐름을 단숨에 거스른다. 그분의 틀림은 결이 매우 다르다. 달라서 당황스럽고, 달라서 부끄러웠다.

S님이 '틀려도 이게 제 글 같다'고 하신 건 배움을 거부하려는 게 아니었다. 고집을 부리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날것의 정체성이었다. 맞춤법이 틀려도, 띄어쓰기가 이상해도, 그것이 70년 넘게 살아온 당신의 언어였던 거다. 다른 연령대 수업에서는 볼 수 없는, 시니어 글쓰기에서만 만나는 귀한 고집이었다.

나는 타자를 멈추고 S님께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틀린 거 고치려고 그러지 마세요.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세요. 우리 반에서는 틀려도 괜찮으니까요. 제가 너무 강요해서 죄송해요."

전화기 너머로 S님이 잠깐 말이 없으시다가 조용히 웃으셨다.

"그래도 선생님이 매번 고쳐주시는데 안 고치면 실례잖아요."

"아니에요. 제가 실례했어요. 멀쩡한 글을 자꾸 고치려고만 해서요."

언어는 규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는 말하는 사람의 습관이 있고, 억양이 있고, 평생 쌓인 시간이 있다. 맞춤법은 바로잡을 수 있어도 그 시간까지 고칠 수는 없다. 아니, 고쳐서는 안 된다.

시니어 글쓰기 수업 역시 일종의 번역이다. 어르신들의 말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자꾸 '올바른 한국어'로 번역하려 했다. 하지만 S님의 한국어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였다. 70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언어를 6개월 배운 규칙으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오만이었다.

끝나지 않는 교정의 피로로 관계가 어색해질 뻔한 S님에게 이 강의실이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틀림을 허락하는 공기 때문일 것이다. 그 허락은 어르신 뿐 아니라 내게도 선물 같다. '틀린 사람'이 이런 존엄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걸 다른 데서 절대 알 수 없었을 거다.

막연히 글쓰기를 잘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S님 덕에 그 바람이 더 구체적으로 정리됐다. 나는 어르신들이 오래오래 당신만의 방식으로 '틀린' 사람으로 남으면 좋겠다. 다음주에도 '되요'라고 쓰시는 분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그 틀림 앞에서 빨간 줄을 긋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읽을 것이다. 당신의 70년이 만든 문장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내인생풀면책한권#시니어글쓰기#복지관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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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풀면 책 한 권(내풀책)

글과 음악을 짓는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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