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손가락
- 도복희
프레스에 잘려 나간 건 가족입니다
잘린 마디를 주워 들고
병원으로 달렸지만 복원은 불가능했어요
출혈이 멈추지 않아서
피범벅으로 비릿했죠
붙지 않은 손가락처럼 가족이 잘려 나갑니다
팔짱 낀 얼굴들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발걸음도 일정하게
열 개의 손가락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열린 철문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식구들은 철문 안쪽에서만
지탱할 수 있는 무게입니다
바깥은 폭염입니다
피딱지 검게 말라 가는
나는 지문 없는 손으로 재탄생했으나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입니다
모든 확인은 지문의 날인으로 가능하다고
동구청 여직원은 말합니다
건기의 12시 방향으로
나와 가족은 실종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국가도 회사도 이웃도 찾지 않는
조용한 사라짐,
당신의 손가락을 조심하세요
출처_시집 <몽골에 갈 거란 계획>, 시인의 일요일, 2023
시인_도복희 : 2011년 <문학사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그녀의 사막> <바퀴는 달의 외곽으로 굴렀다> <외로움과 동거하는 법> 등이 있다.

▲잘려나간 손가락처럼 사라진 가족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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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손가락이 잘려나갔다는 것은 한 가족이 곧 해체될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산재 사고에 대한 관심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른 노동자들은 철문 안 노동 현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들의 식구를 지켜야 하기에.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받아주는 곳이 없다. 사라진 존재가 되었다. 가족은 해체되고 "국가도 회사도 이웃도 찾지 않는"다. 아직도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다. 2026년 새해에는 가족해체의 뉴스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이지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