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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30 14:33최종 업데이트 25.12.30 14:33

지역신문은 왜 사라지면 안 되는가

기억을 기록하는 민주주의의 최소 단위

 은평시민신문 지면
은평시민신문 지면 ⓒ 김주영


지역신문의 힘을 믿는다.

그 믿음은 낭만이나 향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자리를 끝까지 지켜보는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기록으로 남기는 집요함이야말로 지역을 살리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최소 단위라는 확신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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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속보와 거대 담론은 빠르다. 그러나 빠른 뉴스는 오래 남지 않는다. 반면 지역신문이 기록하는 것은 느리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은평시민신문을 지켜보며 나는 그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해 왔다. 금수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동안, 이 신문은 한 지역의 시간을 묵묵히 쌓아왔다.

'기억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말은 선언일 때보다 실천일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지역신문 기자들은 거리로 나가 질문했고, 생활의 가장 낮은 지점에서 기록했다. 그렇게 쌓인 기사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실상 지역의 자화상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부분의 지역신문은 만성적인 재정난과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지역을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열정은 구조적 한계 앞에서 쉽게 소진된다. 그런 상황에서 은평시민신문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시작한 '2025 은평시민기록공모전'은 시의적절한 시도였다. 기자의 손이 닿지 못한 기억을 시민의 손으로 복원하겠다는 발상은, 지역언론의 역할을 확장하는 모범적인 사례다.

 은평구 <1987년 불광동 진성아파트> 전경 그림 (출처: 은평시민신문 홈페이지 공개 기사)
은평구 <1987년 불광동 진성아파트> 전경 그림 (출처: 은평시민신문 홈페이지 공개 기사) ⓒ 박비나

대상작 「진성아파트를 아시나요」는 재건축으로 사라진 소형 아파트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글이다. 거창한 이론이나 수사가 아닌, 개인의 기억을 통해 공동체의 정서를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기록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냈다. 지역 기록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는, 각자의 자리에서 길어 올린 진정성이다.

기록은 민주주의의 체력이다. 기록이 없다면 변화는 기억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그러나 기록이 남는 순간, 권력은 질문받고 행정은 견제된다. 시민이 쓰고, 언론이 편집하며, 지역이 보존하는 이 선순환이 작동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숨을 쉰다.

 서울 은평구 의회에 종이신문 전달하는 은평시민신문 정민구 기자
서울 은평구 의회에 종이신문 전달하는 은평시민신문 정민구 기자 ⓒ 김주영

지방분권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권력은 여전히 제왕적 단체장과 비대해진 행정에 집중돼 있다. 시민단체는 용역화되고, 견제의 고리는 느슨해졌다. 이때 남는 마지막 장치가 무엇인가. 결국 지역언론이다. 제대로 된 지역신문 하나가 영향력을 갖는 순간, 사이비 언론은 설 자리를 잃는다.

지역신문은 인기가 없다. 중앙 일간지조차 생존을 걱정하는 시대에, 지역신문의 위기는 더욱 구조적이다. 그러나 지역신문 기자들은 이윤이 아니라 공익을 목표로 움직인다. 법적 형태가 주식회사라는 이유로 이를 일반 기업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지역언론의 공공성을 지워버리는 판단이다.

이제 지역신문은 '계도지 - 지원 대상'이 아니라 '공공재'로 인식돼야 한다. 각 지자체는 언제든 자신들을 비판할 수 있는 건강한 지역신문을 조례로 보호하고, 기준과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특정 언론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전국 254개 지자체 중 꾸준히 발행되는 지역신문이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지역신문이 없는 곳에서 과연 정의로운 자치가 가능하겠는가. 누가 묻고, 누가 감시하며, 누가 기록할 것인가. 기억은 모여 역사가 된다. 그리고 그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지역신문이다.

지역신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네이버블로그(지구별시골쥐)에도 실립니다.김주영 저널리스트(프리랜서 기자) jootime@naver.com


#지역신문#은평시민신문#계도지#지방자치#시민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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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jootime) 내방

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농식품부 2030자문단 /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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