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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30 14:04최종 업데이트 25.12.30 14:04

국민이 감시하겠다

충성 경쟁이 커질수록, 정책과 청문회는 작아진다

2025년 12월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전 의원을 신설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최고위를 열어 제명 결정을 내렸다. '부역자', '배신자' 같은 단어가 따라붙었다. 놀라운 건 속도였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장관의 자질은 청문회에서 따지면 된다. 그런데 그들은 청문회보다 낙인부터 찍었다. '정책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은 시작도 못 했는데, '누가 우리 편이냐'가 결론을 대신해 버렸다. 이쯤 되면 정치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당의, 정당에 의한, 정당을 위한 정치'가 되고 만다. 한마디로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셈이다.

나는 굳이 분류하면 중도보수에 가깝다. 하지만 정치를 색깔로 구분하지 않는다. 정당도 고정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다. 그것이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국민 주권을 교묘히 포장해 '자기들 이익'으로 끌고 가는지 의심의 눈으로 본다. 경제가 흔들리면 누구의 월급이 먼저 줄어드는지, 자영업자의 한숨이 왜 길어지는지, 청년의 '포기'가 왜 늘어나는지, 결국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이 국민 삶의 바닥에 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편'이 아니라 '내용'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태도는 흔들림이 아니라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나라에서, 대통령이나 정당 대표를 향한 '충성 경쟁'이 아니라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성과 경쟁'을 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혹여 '줏대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나는 이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내 편을 먼저 정하고 논리를 끼워 맞추는 순간, 정치는 신념이 아니라 습관이 된다. 그리고 그 습관은 늘 같은 얼굴을 한다. 우리 편이면 관대하고, 남의 편이면 단호하다. 어제는 "능력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고 외치다가 오늘은 "저쪽에 갔으니 끝"이라고 자른다. 두 얼굴의 아수라 백작이 따로 없다. 그 사이에서 국민은 말만 듣고 성과는 보지 못한 채 끌려다닌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유권자인 내가 저들에게 '호명'되어 이용당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을 위한다면서, 정작 우선순위는 당의 체면과 진영의 분노가 먼저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정치를 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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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중요해진 것이 있다. 정부가 국가 정책에 관한 토론 과정과 논의 내용을 공개해 국민이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나는 이 점은 정말 잘하고 있다고 본다. 더하여 정권이 바뀌어도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1호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이 보이면, 국민은 결과만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됐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누가 책임을 회피했는지, 누가 숫자와 근거로 설득했는지, 누가 감정으로만 몰아갔는지 여과 없이 드러난다.

투명성은 정치를 '난도질'하기 어렵게 만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록이 사라지고, 토론이 닫히고, 설명이 끊기면 그때부터 정치는 자기들만의 눈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이상한 구조로 흘러간다. 나는 그 길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국민 감시가 강해질수록 정치인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자기 언행에 대한 자기 여과 장치도 작동한다. 그것이 결국 국민을 덜 피로하게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

이번 사안이 불편한 이유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국민에게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새 조직의 초대 장관이 어떤 재정 철학을 갖고 있는지, 기획과 예산을 어떻게 엮어 낭비를 줄일지, 민생과 성장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지, 그 검증이 먼저여야 한다. '재정 건전성'이라는 말을 붙잡고 긴축만 외칠지, 아니면 구조조정으로 새는 돈을 막고 꼭 필요한 곳에 투자할지, 복지와 성장의 균형을 어떤 방식으로 잡을지…. 이건 진영이 아니라 극히 상식적인 실력의 문제다. 청문회는 그 실력을 드러내라고 있는 자리다. 그런데 정치의 첫 반응은 '정책 검증'이 아니라 '소속 처벌'이었다. 이 순간 국민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분노의 카타르시스인가, 아니면 예산 시스템을 더 단단하게 만들 기회인가.

정치는 변화의 영역이다. 정치인도 사람인 만큼 생각이나 추구하는 이념이 바뀔 수 있다. 국민 눈높이에 어긋난 판단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깨닫는 순간, 즉시 시인하고 반성하며 바로잡는 행동이 뒤따르느냐이다. 정치의 품격은 무오류가 아니라 수정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다만 선은 분명히 그어야 한다. 내란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최악의 죄다. 국민 주권을 총칼로 겁박하는 물리적 행동,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시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다. 그건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안을 같은 무게의 낙인으로 처리해 버리면 정치는 스스로 판단력을 잃는다. 경중은 가려야 한다. 그 경중을 가리는 장치가 청문회이고, 법적 문제가 있다면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절차는 그래서 존재한다. 절차를 무시한 정의감은, 결국 익히 경험한 또 다른 폭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일을 '실용'의 관점에서 다시 묻고 싶다. 당적을 떠나 국민에게 유용하다면 쓰는 판단, 이 기준이 앞으로 한국 정치에서 '정치적으로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유능한 사람이 공직을 피하지 않고, 국정은 축적되며, 국민은 "정치가 그래도 돌아간다"는 최소한의 신뢰를 붙잡을 수 있다. 반대로 '우리 편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광속 제명과 낙인이 반복되면, 남는 것은 결속이 아니라 혐오다. 정권이 바뀌면 반대편이 같은 방식으로 되갚을 것이다. 그렇게 '복수의 정치'가 굴러가면, 국민은 매번 새 출발을 강요받고 국정은 매번 리셋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꼴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올바른 민주주의라고 믿는다면, 지금 이 싸움에서 국민에게 무엇이 남는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정당정치#정치혐오#정책검증#정치투명성#국민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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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이후 40년을 ‘어떻게 버틸까’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살아볼까’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듣고, 설명하고, 함께 고민해 온 이야기를 강의와 글로 천천히 풀어냅니다. 거창한 비법보다, 같이 버틸 수 있는 ‘노후해법’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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