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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구매이용권 보상안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고객들에게 로켓배송·로켓직구·판매자 로켓·마켓플레이스 쿠팡 전 상품(5천원), 쿠팡이츠(5천원), 쿠팡트래블 상품(2만원), 알럭스 상품(2만원) 등 고객당 총 5만원 상당의 1회 사용이 가능한 4가지 구매 이용권을 지급한다
쿠팡 구매이용권 보상안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고객들에게 로켓배송·로켓직구·판매자 로켓·마켓플레이스 쿠팡 전 상품(5천원), 쿠팡이츠(5천원), 쿠팡트래블 상품(2만원), 알럭스 상품(2만원) 등 고객당 총 5만원 상당의 1회 사용이 가능한 4가지 구매 이용권을 지급한다 ⓒ 쿠팡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들이 한꺼번에 새어나갔다. 사고 발생 30일 만에 쿠팡이 내놓은 대책은 1조 6850억 원 규모의 보상안이었다. 1인당 5만 원 상당. 숫자만 보면 거창하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보상이라 부르기 민망한 것

쿠팡이 지급하겠다는 5만 원은 현금이 아니다. 쿠팡 전 상품 구매권 5천 원, 쿠팡이츠 5천 원, 쿠팡 트래블 2만 원, 알럭스 2만 원. 모두 쿠팡 생태계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이용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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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가 막힌 건, 이 5만 원을 한 번에 쓸 수도 없다는 점이다. 쿠팡은 이 금액을 네 조각으로 쪼개서, 각각 다른 서비스에서만 쓸 수 있게 만들어놨다. 쿠팡이츠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5천 원을 받기 위해 쿠팡이츠에 가입해야 한다. 쿠팡 트래블이나 알럭스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서비스를 알아보고, 가입하고, 써야만 2만 원씩 받을 수 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람 중에는 쿠팡을 자주 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탈퇴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보상은 무슨 의미인가.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사과하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쿠팡이 이 보상안을 발표한 날은 12월 29일이다. 국회 청문회 하루 전이다. 정치권의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사과문에 이어 서둘러 꺼낸 카드다. 타이밍이 말해준다. 이 보상안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는 걸. 청문회를 앞두고 "우리는 뭔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그래서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는 이날 "고객을 위한 책임감 있는 조치를 취하는 차원에서 보상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최고 책임자인 김범석 의장은 30일부터 이틀간 열릴 국회 쿠팡 청문회에는 불출석 방침을 통보했다.

책임자는 보이지 않고, 쿠폰만 남았다. 책임이 무거울수록, 얼굴은 먼저 보여야 한다. 이 사건에서 그 순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3천만 명이 넘는 국민의 정보가 유출된 상황에서도, 김범석 의장은 직접 나와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걸까.

불안은 쿠폰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지난 2022년 7월 6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컴퍼니 선밸리 콘퍼런스(Allen & Company Sun Valley Conference) 기간 중 이동하고 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지난 2022년 7월 6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컴퍼니 선밸리 콘퍼런스(Allen & Company Sun Valley Conference) 기간 중 이동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무엇이 두려운가. 스미싱 문자가 올까봐, 보이스피싱 전화가 올까봐, 내 명의로 대출이 나갈까봐 불안한 것이다. 누군가 내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하고 무섭다.

그런데 쿠팡이 준 건 쿠폰이다. 그것도 쿠팡 서비스에서만 쓸 수 있는 쿠폰이다. 이 쿠폰으로 그 불안이 사라지는가. 유출된 정보가 회수되는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쿠팡은 지금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이걸로 쿠팡에서 뭣 좀 사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보상이 아니라 판촉이다

1조 6850억 원이라는 숫자는 크다. 하지만 그 돈이 실제로 쿠팡 밖으로 나가는 건 아니다. 모두 쿠팡 안에서 순환한다. 고객이 쿠폰을 쓰면 쿠팡은 매출을 올리고, 그 과정에서 수수료를 받고, 신규 고객을 유입시킬 수도 있다. 특히 쿠팡 트래블과 알럭스에 각각 2만 원씩 배정한 건 노골적이다. 많은 이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서비스들일 것이다. 쿠팡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위기 상황을, 서비스 홍보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사과문에 '판촉 쿠폰'을 붙이는 발상. 이것을 보상이라 부를 수 있는가.

신뢰는 쿠폰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쿠팡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플랫폼 중 하나다. 그만큼 많은 사람의 신뢰를 받아왔다. 빠른 배송, 편리한 서비스. 그 신뢰 위에서 쿠팡은 성장했다. 하지만 그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기업이 내놓은 건 자사 서비스 이용권이었다. 네 조각으로 쪼갠, 한 번에 쓸 수도 없는 이용권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을 '호구'로 보는 건가.

지금 필요한 건 쿠팡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이용권이 아니다. 이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솔직한 설명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이다. 그리고 책임자가 직접 나와서 하는, 진심이 담긴 사과다. 쿠팡은 지금,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해롤드 로저스 임시대표는 "쿠팡의 모든 임직원은 최근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고객에게 얼마나 큰 우려와 심려를 끼쳤는지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성하고 있다면서 내놓은 대책이 쿠폰 묶음이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면서 최고 책임자는 청문회에 나오지 않았다. 고객의 우려와 심려를 안다면서, 그 고객들에게 쿠팡 서비스를 더 쓰라고 권유한다.

이 모든 게 계산처럼 보인다. 국민의 개인정보는 유출돼도 쿠팡의 트래픽과 결제 흐름은 끊기면 안 된다는 계산. 청문회는 피하고, 보상안으로 여론을 무마하고, 그 과정에서 서비스 가입자까지 확보하겠다는 계산. 그 계산이 너무 노골적이라 오히려 분노를 키운다.

국민은 되묻는다. 이게 정말 보상인가. 네 조각으로 쪼개진, 쿠팡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이용권이 보상인가. 청문회에 나오지 않는 게 책임지는 방식인가.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에 가깝다. 그런데 이 재난의 최고 책임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왜 직접 나와 설명하지 않는가.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이커머스 플랫폼이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라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쿠팡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쿠팡#쿠팡보상안#김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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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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