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떻게 매일이 행복할 수 있어요?"
방과 후 수업 시간, 뒷좌리에 앉아 있던 한 아이가 불쑥 던진 질문이다. 다른 친구가 쓴 동시를 내가 읽던 중이었다. 시 속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었는데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한 걸까. 아이는 시를 다 듣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체를 앞으로 쑥 내밀며 더 크게 계속 소리쳤다. "어떻게 매일이 행복할 수 있어요?"
순간 멈칫했다. 그 질문은 어른들만 생각하는 문장인 줄 알았으니까. 그래, 어떻게 매일이 행복할 수 있겠니. 어른인 나도 잘 모르겠는 걸. 나 역시 사람을 만나는 날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널뛰고, 별일 아닌 말 한 마디에도 상처받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앞에선 괜히 한숨부터 나오는데. 아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겠지. 아이들도 자신들의 세계에선 언제나 어른이니까.
수업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교실을 들어오면서부터 책상에 엎드려 혼자 훌쩍이던 아이. 늘 명량한 아이였기에 궁금해 물어봤지만 좀처럼 답하지 않던 아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고개를 파묻고 소리 없이 울기만 했던 아이가 던진 질문이었다. 시에서 처럼 '행복'이란 말을 쉽게 믿을 리 없다.
아이의 솔직한 질문에 대답이 선뜻 안 나와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래,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지. 그래도 시 속에서 만큼은 행복하고 그렇게 약속할 수 있잖아. 마법의 주문처럼" 시끌벅적한 아이들 틈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도 있고, 여전히 반신반의한 아이도 있었다.
어쩌면 그 말은 나에게 해주는 말이었는지 모른다.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어도 내가 쓰는 글 속에서 만큼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오늘이 멋지지 않아도, 그래도 한 번쯤 '오늘은 행복하자'라고 말해보는 마음.

▲학기 마지막 수업엔 아이들의 원대로 과자 파티를 열었다. 가져온 과자를 친구들과 나눠먹으며 '자유'를 만끽했다. ⓒ artbyhybrid on Unsplash
얼마전, 내년 강사 공개 모집에 응모할 지원서를 작성했다. 처음 시작했던 2년 전에도 작성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마음이, 마음 가짐이 다르다. 응모배경과 향후 계획에 대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방과 후 독서논술 수업을 하다 보면 '글쓰기'와 '교재풀이' 사이에서 고민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어려워하더라도 교재풀이를 할 것인지.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생각하다 보면 결국 아이들이 먼저 떠오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단연코 글쓰기다.
누구의 가르침이나 평가가 따르지 않는 그저 내 마음을 표현하는 글쓰기. 어떤 계산도 없다. 글을 쓰면서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교재 풀이라는, 틀에 갇힌 수업을 방과 후에서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 그렇기에 수업방식에 교재 선택 여부는 늘 주저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글을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어떨 땐 짝꿍과 같이 쓴 시를 내놓기도 한다. 이른바 공동작업, '공저'인 것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한 작업이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글쓰기가 건네는 가장 기초적인 학습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은 삶의 힘을 기르는 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정답 없는 수업이지만 정답에 다가가려 노력했고,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기에 배우려고 공부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정답을 말하는 교사'가 아닌 ' 생각을 이끌어 주는 안내자'가 되어 끊임없이 생각을 끄집어 내려한다는 어느 한 학부모의 참관수업 후기가 여전히 또렷하다. 그 시간만큼은 진정 아이들이 스스로 즐겁게 열심히 하며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 마음은 지금도 분명하다.
아이들이 쓰는 문장에는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단어들이 나온다. 어쩌면 '매일 행복하자'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문장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위한 가장 단순한 주문일지 모른다. 넘어지고, 속상하고, 울다가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어른들과 다를 바 없는 하루 앞에서 아이들은 내 마음을 시로 쓰고, 우리들은 그 시를 읽는다. 그렇기에 매일 행복하진 않아도 가끔은 행복한 날이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그리고 그 말을 시로 적어 볼 수 있기를 꿈꿨다.
가끔은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조용!" 하고 소리 지를 때도 있지만, 볼 빨갛게 물든 얼굴로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아이들인 걸, 하는 생각에 그저 혼자 웃기도 했다. '깜찍한 반항아'들과 사투를 치르고 난뒤 숨을 돌리려 의자에 앉아있을 때였다. 한 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 선생님 제가 좋아하는 시예요"라며 침착하게 끝까지 낭독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이제 고작 3학년인 아이가 윤동주의 '서시'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는 내게 '서시'를 들려주며 교실 속 나를 위로한다.
지난주 목요일. 학기 마지막 수업엔 아이들의 원대로 과자 파티를 열었다. 가져온 과자를 친구들과 나눠먹으며 '자유'를 만끽했다. 공부도, 놀이도, 그날만큼은 각자 '행복' 한 것을 하기로 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조용했다. 기분탓이었는지 모른다. 그날은 모두에게 '행복' 한 하루였을까.
크리스마스이브날, 선물처럼 강사 지원 합격통지와 내년도 계약 안내를 받았다. 학부모들의 평가를 받고 학기마다 프로그램 운영계획서를 작성하며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는 일이지만 아이들과 다시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매일이 행복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가끔은 행복한 날이 있다는 걸 따뜻한 온기로 느낀다.
행복을 질문하는 아이들이 방과 후 짧은 시간만큼은 공부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꺼내도 괜찮은 시간으로 남기를, 그리고 그 마음을 통해 스스로를 조금 더 믿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 하루는 행복하다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내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정한 선생님'이 되어 마법의 주문처럼 '행복' 한 하루가 되기를. 모두에게 그런날이 많기를 소망한다.
어떻게 매일이 행복할 수 있어요?가 아닌 어떻게 매일이 행복할 수 있어요! 느낌표 찍기를 좋아하는 한 아이의 시처럼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를 마법을 걸어둔다. 2026년 웰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