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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떨리는데…."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둔 밤에 남편은 괜히 집안을 서성거리며 혼자 중얼중얼했다.

"밥 먹고 시험공부만 했는데 설마 떨어지겠어?"

놀리느라 웃음기가 잔뜩 든 내 말에도 웃기는커녕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다. 지난 7월에 퇴사하고 남편이 선택한 건 자격증 취득이었다. '산업안전기사' 그리고 '산업안전 산업기사' 이 두 가지 자격증을 같이 준비하겠다고 했다.

뿌듯함 가득, '합격' 통보 받은 남편

 결국 합격한 남편.
결국 합격한 남편. ⓒ hudsoncrafted on Unsplash

나는 입에도 붙지 않는, 그 말이 그 말 같은 그 두 자격증이 정확히 어떤 곳에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자격증 이름과 요즘 기사에 많이 나오는 '안전'에 관한 자격증이겠거니 한다. 남편은 그 두 가지 자격증을 함께 준비하며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시험의 결과 발표가 바로 지난 24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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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오전 9시가 돼야 알 수 있다며 안절부절못하더니 갑자기 환한 얼굴로 들어와선 "합격!"이라며 뿌듯해했다. 두 가지 자격증 모두 다 붙었다며 표정이 밝았다.

"애썼어."

칭찬하다가 슬쩍 놀리고 싶은 마음에 "아니, 밥 먹고 공부만 했는데 떨어지면 그게 이상한 거 아냐?"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합격증 두 개를 가족 단체대화방에 턱 하니 올리고 자랑하는 남편의 얼굴엔 성취감과 뿌듯함이 하나 가득이었다.

퇴직 후엔 많은 선택지가 있다. 누구는 미뤄두었던 긴 여행을 떠나고, 또 누구는 배우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배우며 취미 활동을 한다. 또 누구는 그래도 역시 경제 활동이 최고라며 소소한 일거리라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뿐인가. 내가 아는 지인 하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자유를 누려보겠다며 말 그대로 무위도식의 삶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 어떤 형태이든 퇴직 이후의 삶은 자기 자신이 선택한다. 젊은 시절 의무와 책임으로 할 수 없었던 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퇴직 이후에도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남편이 퇴직 후 어학 등 취미생활을 선택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줄 알지만, 제대로 회화를 좀 더 배워봐도 좋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남편이 선택한 건 자격증 취득이었다.

물론 그 자격증 취득의 목표가 재취업인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누구는 외국어를 배우고, 또 다른 누구는 그림이나 악기를 배우는 것처럼 남편이 선택한 취미가 바로 자격증 취득이었던 거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멈춘 이후엔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해보았다.

그런데 그 결과, 나는 어떤 결과물이 있는 취미 생활이 적성에 맞다는 걸 알게 됐다. 이를테면 막연히 악기를 연습하는 것보다는 그림을 그리며 한 작품씩 완성하는 것이 더 좋았다. 매일 반복되는 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책 한 권을 정해 끝까지 완독하는 것이 더 뿌듯했다. 아마 남편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직 무언가 하고 싶은 인생은 멋지다

 남편의 멋진 다음 도전.
남편의 멋진 다음 도전. ⓒ christinhumephoto on Unsplash

"이제 다음 목표는 뭐야?"

한껏 합격을 축하해준 이후에 궁금해진 내가 물었을 때 남편은 "산업안전 지도사!"라고 말했다. 이름도 헷갈리는 '산업안전 산업기사' '산업안전기사'의 위 단계가 '산업안전지도사'라고 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 명칭이 헷갈리지만 이미 새로운 목표가 있다는 남편에겐 짐짓 이해한 척 대답했다.

"말하자면 '안전' 자격 3종 세트군."

굉장히 고무된 얼굴로 남편은 이미 다음 단계인 산업안전지도사의 수험 준비에 돌입했다. 고시 공부하듯 쏟아붓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본다. 그리고 뜬금없이 한마디를 날려서 나를 포복절도하게 했다.

"공부하는 게 진짜 재밌어!"

소싯적의 대입에 여러 번 낙방하며 시부모님 속을 썩인 걸 아는데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들으시면 뭐라고 하시려나. 나는 '공부엔 때가 없다'라는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공부 역시 해야 할 때를 놓치면 쉽지 않은 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며 그 목표를 공부로 잡는 남편을 보면 반은 맞는 이유는 이것이로구나 싶다. 생각해 보면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내듯, 남편 역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젊은 날과 달리 어떤 의무와 책임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성취와 만족을 위해 공부를 한다는 건 역시 꽤 괜찮은 일이다. 아직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인생은 멋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산업안전산업기사#산업안전기사#산업안전지도사#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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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원 (wantwon) 내방

책을 읽고, 여행을 하며, 글을 씁니다. 나름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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