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한지 6개월이 넘었다. 이재명 정부는 여러면에서 역대 정부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정책의 개방성이다. 수석보좌관회의와 국무회의를 생중계 하고 있다. 주요 국정 현안을 전 국민 앞에 공개하는 방식은 기존 정부와 확연히 다르다. 각 부처의 업무보고 역시 생중계로 진행되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업무보고가 흥미로웠다. 단순한 업무보고를 넘어 현안을 놓고 각 부처의 책임자들이 토론도 하고 논쟁도 벌였다. 그리고 부처별 산하 공공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사상 처음 생중계로 진행된 업무보고를 보며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부처별 공공기관의 숫자였다. 2025년 기준,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부처별 공공기관은 총 331개다. ALIO 공공기관 현황에 따르면 공기업 31개, 준정부기관 57개, 기타공공기관 243개로 구성되어 있다. 공공기관의 수도 놀라웠지만, 더 눈에 띈 것은 업무와 기능이 겹쳐 보이는 기관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특히 같은 부처 산하 기관들 사이에서 중복되는 역할과 기능이 많았다.

▲재외동포청이재명 대통령이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 MBC
예를 들면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금융 감독과 소비자 보호라는 영역에서 기능이 겹쳐 보인다. 외교부 산하의 '재외동포청'과 '재외동포협력센터' 역시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 가 중복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공공기관의 역할과 기능이 중복되는 사례를 접하며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행정 기관이나 제도들은 지금의 행정 환경과 사회 현실에 맞게 기능하고 있는가였다.
행안부, 이북5도 위원회
그중 하나가 행정 안전부 소속인 '이북5도위원회'다. 나는 최근까지 남한에 이북5도 위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제도를 알고 있는 국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설립목적과 역할과 기능을 살펴보았다.
이북5도 위원회는 1949년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절에 설치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1945년 8월 15일 당시의 행정구역 중 아직 수복되지 않은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를 지칭한다. 단순한 지리적 정의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 여전히 북쪽 영토를 대한민국 영토로 본다는 의미다. 실향민 지원과 향토문화 계승, 이산가족 문제 및 북한 이탈 주민 지원을 하고 있다.

▲이북5도청이북5도 위원회 홈페이지다. 1945년 8월 15일 당시의 행정구역 중 아직 수복되지 않은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를 지칭한다. 실향민 지원과 향토문화 계승, 이산가족 문제 및 북한 이탈 주민 지원을 하고 있다. ⓒ 김인철
이렇듯 이북5도 위원회는 대한민국의 분단 현실이 만들어낸 특수한 제도다.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이후, 이북5도 위원회는 분명한 역할을 수행했다. 헌법 제3조가 규정한 영토 개념을 행정적으로 유지했고, 실향민과 그 가족들에게는 비록 몸은 남쪽에 있지만 고향은 여전히 대한민국 행정체계 안에 존재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분단 고착과 통일 인식
그러나 남북 분단은 이제 70년을 훌쩍 넘겼고, 그 사이 남한과 북한의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은 크게 달라졌다. 분단된 시기가 오래된 만큼 한국 국민의 통일에 대한 인식 변화는 크게 달라졌으며 전반적으로 통일에 대한 인식이 낮아졌다. 이는 분단시기에 실향민들을 위해 일정한 기능과 역할을 했던 이북5도청과 위원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날 대북·통일 정책 분야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KINU)이 발표한 'KINU 통일의식조사 2025' 결과를 살펴보면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49.0%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보다 3.8%P 감소했고, 2014년 첫 조사 이후 처음으로 50%를 밑도는 수치다. 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51%에 이르렀다.
2025-10-20, <매일경제>
북한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도 독자적인 국가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향민 1세대는 대부분 고령이 되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다. 동시에 통일부, 행정안전부, 접경지역 정책, 탈북민 정착 지원, 안보 관련 기구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이북5도위원회의 역할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북5도 위원회의 고유한 역할과 기능은 모호한 채 관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 이북5도 위원회에는 매년 100억 원 안팎의 예산이 배정된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인건비와 운영비로 사용된다. 이북5도위원회 소속 도지사 5명은 모두 차관급 대우로 보수·급여가 책정되고 연봉 약 1억 4천~1억 5천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 및 관용차를 제공하고 약 1500만 원 수준의 업무추진비가 별도 지원되며 이런 급여·혜택은 다른 부처의 차관급 관료와 유사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이북5도 위원회 예산이북5도 위원회 예산 80%가 인건비와 운영비로 지출되고 있다. ⓒ 전종덕 의원실
이북5도 위원회의 2026년 예산은 108억 원이다. 전체 예산 중 81퍼센트가 인건비와 운영비 등으로 사용되고 이북 도민 지원과 행사지원은 19퍼센트에 불과하다. 국가 전체 예산 규모로 보면 크지 않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예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이 제도가 오늘날 변화된 남북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폐지 아닌 기능 전환
그래서 대안을 제시하자면 이북5도 위원회의 기능을 전환하는 것이다. 분단 상태에서 이북5도 도지사의 상징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설립 목적이 소멸되었다고 단정하기에는 그 역사적 맥락이 결코 가볍지 않다. 헌법을 개정 해야 하고 실향민의 역사적 경험, 통일 담론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북5도 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현재의 남북 관계와 행정 환경에 맞게 재정립하는 일이다.
인건비와 운영비가 드는 행정은 최소화하고, 통일 이후를 대비한 연구·기록·시뮬레이션 중심 기구로 재편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통일 이후 핵심 사안이 될 행정 매뉴얼, 인구·토지·재산권 시뮬레이션 등이다. 이는 그동안 분단을 '관리하는 제도'였던 이북5도위원회를 통일을 '대비하는 기관'으로 전환하는 시도다.
이번 이재명 정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각 부처와 산하 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점검하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재외동포청과 재외동포협력센터처럼 기능이 중첩되는 기관을 통합하자는 의견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있다. 이북5도 위원회도 이재명 정부의 행정 철학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북5도위원회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 자체가 이북5도 위원회에 새로운 역할과 의미를 부여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와 다음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