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의 친구들, 기러기 ⓒ 임도훈
겨울이다. 농성장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이고, 어느 덧 천막농성 600일을 넘기고 있다. 농성장에서 듣는 기러기 울음소리와 장렬한 행렬은 겨울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추운 바람을 가르고 V자로 길고 넓게 퍼지는 모습을 보면, 생명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과 규칙으로 이 오랜 세월을 살아왔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감각으로 느끼게 된다.
지방선거가 가까워 오면서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정책과 구호가 난무한다. 그 속에 '생명의 자리'는 과연 있는가, 누가 대변하고 있는가 하는 깊숙한 질문을 꽂아 넣어 본다.
물론 세상은 그 질문에 답이 없거나 답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윤석열의 '물내란 시기에 우리가 꽂은 깃발은, 과연 이 시대에 생명을 지키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정권이 바뀌었고 세상이 바뀌었다는 지금도 우리의 깃발은 여전히 펄럭여야만 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막농성 600일 기자회견 ⓒ 보철거시민행동

▲거리미사 모습 ⓒ 박은영
지난 23일,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천막농성장에서 4대강 재자연화 국정과제 즉시 이행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세종과 대전의 시민들과 단체, 정당이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해주었다(관련기사 : 세종보 재가동 막아낸 천막농성 600일
https://omn.kr/2ghi8).
25일, 천주교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성탄축일 거리미사가 농성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추운날씨에도 150여명의 신자분들이 함께해 금강의 생명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미사를 주관한 김대건 신부는 600일의 투쟁을 격려하며 "자연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존중받고 보전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는 데까지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확장시켜내는 것이 우리의 신앙"임을 강조했다.

▲600일 투쟁문화제 모습 ⓒ 박은영
미사 후에는 600일의 시간을 격려하고 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준비해온 먹거리를 나누고, 작은 공연과 덕담으로 지금까지의 투쟁을 격려하고, 앞으로 힘차게 함께 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보철거시민행동 문성호 대표는 지금까지의 투쟁은 모두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 온 것이라며, 4대강 재자연화가 될 때까지 함께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문화제에 참석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오동필 공동집행위원장은 "군산 하구둑이 막혀 금강을 흐르며 만들어진 모래가 바다까지 나가지 못한다"며 이 모래가 우리나라 최대 도요새 서식지인 유부도의 모래를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강의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말과 함께 "흐르는 물을 따라 모래가 파도를 통해 해안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고리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과 생명을 지키는 일"임을 강조했다.

▲검은등할미새와 함께 한 600일 ⓒ 임도훈

▲농성장에서 만난 청년 고라니 ⓒ 임도훈
지난 600일의 투쟁으로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져왔다. 분명히 공존하는 생명의 자리에 대한 질문.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먹고 살기도 바쁜데' 라는 말로 비난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라는 질타를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오랜 시간 자신들만의 방식과 규칙으로 공존해 온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결국 우리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그 욕망으로 인간을 짓밟는 것을, 기후위기도 결국 인간을 비롯한 생명들이 위태로운 것을, 우리는 돈이나 기술, 어쩌면 운으로도 이겨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선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끈질기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질문하는 일이다. 풀밭에 몸을 스치며 나타나 우리를 쳐다보는 고라니의 눈과 강의 자갈과 모래를 작은 발로 걸으며 세대를 이어가는 검은등할미새의 뒷모습이 바로 그 질문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할 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천막농성을 600일 동안 해 온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