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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29 13:19최종 업데이트 25.12.29 13:19

국책사업 갈등을 멈추는 새로운 길

[굿모닝 퓨처] 보상에서 가치 창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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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대형 국책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반복되는 갈등은 이제 통과의례가 되었습니다. 충남 당진 (북당진-신탕정), 경남 밀양, 신고리 등 전국 주요 송전선로 경과지와 경기 하남 변전소 건설 등에서 겪은 갈등은 전국적으로 반복되는 국책사업 갈등의 일단에 불과합니다. 철도망 확충과 환경기초시설 건설부터 에너지 인프라 구축과 국방 안보 시설 운영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 갈등이 동일한 패턴으로 날마다 되풀이됩니다. 왜 그럴까요?

믿기 어렵겠지만 그 핵심에 '보상'이 있습니다. 정부는 갈등의 강도가 세지고 장기화할수록 법률상 의무를 넘어 다양한 지원 패키지를 앞세우는데, 결과적으로 갈등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깊어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원자력발전소 계속 운전과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을 둘러싼 갈등 사례 역시 보상과 지원이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이젠 보상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증폭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보상의 개념은 지역을 사실상 '피해자'로 규정합니다.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님비 (NIMBY, Not In My Back Yard) 사업이니 돈으로 위무하려는 것이고, 삶의 질 저하와 안전에 대한 우려를 돈으로 덮으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논의의 초점은 공공사업의 애초 목적에서 벗어나 협상과 거래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여기에 지역 정치와 파벌 간 경쟁이 결합하면 반대의 동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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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정부는 지원을 늘리는데 그 규모가 커질수록 일부 주민은 '더, 더'를 외칩니다, 보상이 아니라 환경과 안전과 지역공동체의 안녕한 미래를 주장하는 반대운동이 더 큰 도덕적 명분을 얻는 것은 이때부터입니다. 이들의 출현과 함께 반대 전선이 다변화되면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갈등이 교착상태에 빠지는 걸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보상은 이처럼 갈등을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구조화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해외 사례는 전혀 다른 방향을 보여줍니다. 먼저 스웨덴입니다. 스웨덴의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관 SKB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 과정에서 '보상'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역과 국가가 함께 창출하는 공공가치를 강조했고, 이를 '가치 창출' 프레임으로 고도화했습니다. 지역의 교육·기술·안전 인프라를 어떻게 강화할지, 청년의 직업 기회를 어떻게 늘릴지, 연구기관과 산업 생태계가 어떻게 동반성장 할 수 있을지 주민들과 함께 논의했습니다. 지역 주민은 자신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 전략 프로젝트의 공동 설계자이자 미래의 파트너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갈등은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핀란드 역시 비슷합니다. 핀란드는 지역에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국가의 장기 책임성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국가가 오랜 기간 지역의 안전과 경제·기술 여건을 관리한다는 약속을 제도화해 지역이 안정적인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공공가치 창출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갈등이 구조적으로 억제된 경우입니다.

프랑스 사례는 정반대 교훈을 줍니다. 프랑스의 방사성 폐기물 관리기관 ANDRA는 사업 추진 초기에 명확한 보상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체계적으로 설계된 제도였지만 보상금이 공개되는 순간 지역사회가 수혜 집단과 소외 집단으로 갈라지며 갈등이 복잡해졌습니다. 프랑스 의회에서도 "돈으로 위험을 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고, 사업의 정당성이 지속해서 공격받았습니다. 제도가 정교했음에도 보상 프레임 자체가 갈등을 생산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사업의 지체와 표류가 반복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 사례가 가리키는 결론은 명확합니다. 보상 프레임은 갈등을 줄이지 못하며, 공공가치 창출 프레임이 지속 가능한 합의를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거래적 보상에서 공공가치 창출로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진들이 태백시청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진들이 태백시청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단순한 현금 보상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와 지자체 간 협력의 가치로 큰 갈등 없이 국책사업을 추진한 사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구 소멸 지역의 르네상스를 지원한다는 더 큰 전망 속에서 장기적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마련한 방사성 폐기물 지하연구시설(URL) 입지 선정 사례입니다. 이 사업을 진행한 원자력환경공단 (KORAD)과 강원도 태백시는 시설 유치를 대가로 하는 현금성 보상 대신 이를 매개로 한 R&D 거점 조성, 전문 인력 양성, 연구기관·기업 유치, 시설 개방·견학과 관광 연계 등을 포괄하는 '지역 상생발전 패키지'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형 국책사업이 갈등에 빠져드는 이유를 그것이 "위험시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설의 '위험'이 갈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돈으로 거래하려는 '보상'의 언어와 거래적 프레임이 갈등을 구조화해 온 것입니다. 지원금을 늘릴수록 주민은 시설의 위험성에 더 큰 의구심을 갖게 되고, 지역 파벌과 정치세력이 '파이 나누기'의 경쟁을 시작할 때 아주 원론적인 이념적 지향까지 더해지면 갈등이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법률에 명시된 보상은 정당하게 이행하되, 대형 국책사업의 기본 언어를 위험에 대한 거래적 '보상'에서 '공공가치 창출'로 전환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사업 초기부터 주민들과 함께 사업을 설계하고, 지역의 교육·기술·안전·혁신 인프라를 함께 구축하며, 국가의 장기적 책임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시설이라면 현금 지원 대신 지역 내 첨단 안전 운영기술 전문인력 양성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설 운영 기간 내내 독립적인 지역 환경·안전 감시기구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또한, 환경 피해에 대해서는 돈이 아닌 생태계 복원과 증진을 통해 순손실 제로(No Net Loss)를 달성하는 자원 기반 환경 보상을 공공가치 창출의 핵심 요소로 도입해야 합니다. 공항이면 '지역 연결 가치', 에너지라면 '안전·환경·미래 가치', 첨단산업단지라면 '혁신 가치', 주민 생활 인프라라면 '공동체 가치'를 중심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국가의 행정 패러다임은 이미 공공가치 창출로 이동했고, 이를 가장 앞서 구현한 스웨덴과 핀란드, 강원도 태백이 그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보상이라는 이름의 낡은 '거래'를 끝내고 국가와 지역이 함께 미래를 창조하는 새로운 길, 임비 (YIMBY, Yes In My Back Yard)로 들어서야 합니다. 대형 국책사업을 보상이 아니라 공공가치 창출의 관점에서 설계하는 것, 이것이 지속 가능한 합의의 시대를 여는 첫걸음입니다.

글쓴이 은재호는 프랑스 고등사범학교(ENS-Paris Saclay)에서 프랑스 정책변동 연구로 정치학(정책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국무총리 소속 한국행정연구원에 재직하며 한국갈등학회장,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지원국장과 정부 주요 부처 갈등관리심의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교 EU융합전공 겸임교수로 일하며, 연구 현장과 정책 현장을 이어주는 정책 중개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Sida et action publique>(2009), <공론화의 이론과 실제>(2022), <경세제민의 공공리더십>(2024)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굿모닝 충청에도 실립니다.


#국책사업#보상#가치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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