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오래 묵은 그냥
- 정우영
그냥,이라는 제목을 정해놓은 지 오래.
이제껏 그냥 말지, 그냥은 무슨
이러고 지나쳤는데 오늘따라
그냥이 뜬금없이 치고 올라와서는,
너무 녹슬었다고 투덜거린다.
그냥,이라는 무게에서 달라진 건 없으나
그냥, 하고 입 밖에 꺼내놓자
오래 묵어 그럴까, 고냥처럼 말이 튀어나간다.
그냥과 고냥 사이에 틈도 없는데
어디선가 냥이는 비집고 들어와
그냥과 고냥을 가지고 논다.
둥글리고 잡아채고 할퀴어본다.
그냥 그러고 노는 새, 하루가 저문다.
이것이 한 생인가.
그냥 실실 눈꺼풀이 닫힌다.
고양이라 불리던 한 여성이
생을 마감했다는 문자는 뜨고.
출처_시집 <순한 먼지들의 책방>, 창비, 2024
시인_정우영 :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 <활에 기대다> <순한 먼지들의 책방>이 있다.

▲그냥이라는 말 속으로, 한 생이 건너간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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