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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루떡 해 먹을래? 쌀은 집에서 조금 빻으면 돼. 절구 큰 거 있다. A네가 사준 게 있거든."
" 좋아, 그럼 쌀은 내가 빻을게 내가 집에 갈 때까지 쌀 빻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엄마와 나는 그렇게 내 생일에 시루떡을 해 먹기로 했다. 지난 19일, 일주일 전부터 금요일 아침에 가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게으름을 피우다 결국 점심 때가 돼서야 출발했다. 늘 그렇듯, 엄마는 항상 그곳에 있기에 별다른 예고 없이 시골집으로 향했다. 엄마도 '오면 오는가 보다' 하시는 분이라 따로 연락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늦지 않게 도착하려고, 아니 빨리 가고 싶어 택시를 탔다. 날씨는 맑고 포근했다.
엄마는 내 생일마다 시루떡을 해주셨다. 방앗간에서 쌀을 조금 갈아와 집에서 직접 쪄내곤 하셨다. 마흔 살까지 엄마와 함께 살며 해마다 그 시루떡을 맛보았다. 집을 떠난 뒤로는 생일에 굳이 내려가지 않았고 시루떡도 그렇게 멀어졌다. 그런데 이번 생일은 토요일. 마침 주말이다. 오랜만에 집에 갈 수 있었다.
엄마의 시루떡

▲시루떡엄마가 집에서 쌀을 직접 빻아 시루에 쪄낸 떡. 위에는 밤과 콩. 아래에는 콩을 아주 많이 깔았다. ⓒ 전미경
엄마가 시루떡을 해 먹자고 했을 때 예전 같으면 뭘 그런 걸 자꾸 하냐며 흘려보냈을 텐데, 이제는 그 말씀에 박자를 맞춰 주었다. 엄마 말투에서 풍겨 나오는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엄마가 떡이 먹고 싶어서 떡을 만드는 건 아닐 테다. 냉동고에는 이웃들이 갖다 준 떡들로 가득 차 있고 매일 통화 때마다 "오늘은 호박죽을 먹었다" 또 어떤 날은 "뜨끈뜨끈한 백설기를 먹었다"라며 이웃들이 주는 별미 음식들로 넘쳐 나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왜 시루떡을 만드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몇 년 전, 오월 단오즈음 집에서 찹쌀을 조금 빻아 엄마랑 취인절미를 만들어 먹은 적이 있다. 그때의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 정확히는 인절미의 맛보다 엄마랑 같이 희희낙락하며 인절미를 만들었던 그 과정들이 더 생생하다. 그날, 내가 취인절미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가 " 우리 한번 만들어 먹어볼래?"라고 한 것이다.
마을에 하나 있는 방앗간은 자주 문을 닫았고 명절 아니면 소량의 쌀을 갈아달라 하기 쉽지 않아 직접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떡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신이 나서 찹쌀을 작은 절구에 조금씩 넣으며 빻았고 엄마는 미리 데워둔 찜솥에 취와 빻은 쌀을 섞어 쪄냈다. 그리곤 도마 위에 취떡을 올려놓았다. 나는 방망이로 떡메질을 시작했다. 엄마는 "옛날엔 다 저렇게 집에서 해 먹었는데" 라며 떡메 치던 시절 이야기를 하며 기분이 들떠있었고, 나는 예전 회사에서 인절미 체험 갔을 때 힘든 떡메를 아무도 치려고 하지 않아 혼자 떡메 쳤던 경험담으로 응수했다.
인절미는 떡메를 많이 칠수록 더욱 쫄깃해진다. 나는 그때를 상기하며 취떡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떡메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더 이상 빠질 힘이 없을 때까지. 그리고 마무리로 콩고물을 묻혀 버무렸다. 고소한 콩고물 향을 맡으며 서둘러 맛을 보았다. 맛이 기가 막혔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향해 웃어 보이며 엄지 척을 했다. 공들인 시간에 비해 양은 많지 않았지만 함께한 시간들이 좋았다. 엄마와 나의 소꿉놀이였다. 그 소꿉놀이를 또 하러 간다.
시골집이 가까워지자 겨울나무숲들이 눈에 들어왔다. 연세가 있어 보이는 택시 운전기사가 " 어? 자작나무가 있네요... 저거 다 자작나무예요. 저 나무가 주변 공기를 맑게 해 준데요"라고 하셨다. 저게 자작나무라고? 수십 년을 다녀도 알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눈여겨본 적도 없다. 그저 많고 많은 나무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자작나무였다니.
희고 고운 겉모습에는 생존의 이유가 있다는 자작나무. 아마도 여름이 되어 다시 옷을 입으면 나는 저 나무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빛을 지키는 자작나무의 아름다운 색과 곧게 뻗은 지금의 저 모습을 기억해 두자. 이제 5분만 더 가면 집이다. 엄마는 뭐라고 하실까? 아니 뭐 하고 계실까. 이번엔 또 어떤 먹거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두근두근 설렘이다.
오후 1시가 넘어서 도착한 나를 보고 엄마는 "늘보가 그럴 줄 알았지. 그래도 일찍 일어났나 보네"라며 저녁때가 아닌 걸 기특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그리곤 직접 만든 시루떡을 보여 주셨다. 잘 빻지 못해 곱지 않게 되었다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 하시는데 우습게도 그 모습들이 귀여우셨다. 부끄럼 많은 새색시처럼.
즐겁게 상상했던 소꿉놀이는 못했지만 엄마 마음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힘들까 봐 미리 해두신 것이다. 나는 엄마가 만든 시루떡을 보며 한마디 했다. "엄마, 고슬고슬한 게 더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데. 인절미도 곱게 갈린 것보다 밥알 씹히는 게 더 맛있잖아. 이것도 맛있을 거 같아"라고 하자 엄마는 "그래?" 하며 떡을 썰어 식탁 위에 올려 주셨다.
내 입에 딱 맞춤, 영원한 나의 맛집

▲시루떡 아래부분밑에 서리태를 많이 깐다음 위에 쌀가루를 올려 놓는다. ⓒ 전미경
엄마는 시루떡 뿐 아니라 생일에 빠지지 않는 잡채도 벌써 다 만들어 놓았다. 뒤안에는 토종닭 백숙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소고기 부채살이라며 구워 먹자고 하셨다. 도대체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몰랐다. 양은 정해져 있고 한 번에 다 먹을 수도 없는 음식들이다. 엄마는 늘 이런 식이다. 메인음식이 많다.
생일날 아침에는 미역국에 박수를 치며 예쁘게 불러주시는 늙은 엄마의 생일 축하송까지.
"사랑하는 둘째 딸 생일축하합니다. 박수!"
그리고 늘 빠지지 않는 멘트 "내년에는 좋은 사람 만나세요"도 놓치지 않는다. 반백살 딸중에 이런 생일 선물 받는 사람 있을까. 오빠는, 카카오톡에 뜬 생일을 봤다며 이십만 원을 보내왔다. 그리곤 "맛있는 거 꼭! 사 먹어"라고 해서 나는 "응 맛있는 거 사 먹을게"라고 답했다. 나는 오빠가 준 돈으로 뭘 사 먹을까 고민하다 결국 엄마집에서 먹은 밥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라는 생각까지 닿았다.
먹을 때 제일 행복하고 뭘 먹어도 맛있고,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진짜 맛집. 내 심신이 지칠 때 항상 힘이 되는 힐링 맛집.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먹어도 아깝지 않은 최애 맛집. 엄마 맛집이 내게는 미슐랭 별 다섯 개 맛집이며 엄마야 말로 내입맞춤 최고의 요리사다. 아니, 진짜 맛집은 별점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마음으로 남는 곳이지 않을까.
금토일. 엄마 맛집에서 엄마와 함께 한 시간. 아침, 점심, 저녁 먹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 비용을 값으로 따질 수 없지만 오빠가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보내준 마음과 내 마음을 보태 엄마 맛집 통장으로 보냈다. 엄마가 잘 사용하지 않는 통장으로.
3일 동안 있으면서 결국 입에 대지도 못한 백숙은 엄마가 통째로 싸주셔서 그냥 들고 왔다. 냉장고에는 엄마가 주신 반찬들로 가득 찼다. 한동안은 마트를 가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나는 엄마가 챙겨 주신 '마'와 토종꿀을 갈아 넣은 두유를 마신다. 자작나무처럼 말없이 서서 나를 맑게 해주는 그 자리, 떠나와서야 더 또렷해지는, 언제든 가게 돼도 그대로일 것 같은 진짜 맛집 엄마 집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