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한 그해였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비로소 21세기의 진짜 서막이 열리던 순간이었다. 시각예술을 하는 나에게 전시도, 예술 워크숍도 하지 말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나는 예술이 사회문제 해결의 가장 세련된 힌트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련됨이란 겉모습이 아니라 태도다. 그래서 나는 완성된 작품을 거는 전시실보다는 거리에서, 우발적 사건 속에서 예술을 실천해왔다. 내가 대표로 있는 예술가 콜렉티브 피스오브피스(Piece of Peace)는 '자투리 순환'과 '사물 돌봄'을 키워드로 삼아 버려진 것들을 다시 재료로 삼는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누구도 자투리로 남지 않게 하자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팀이다.
그해 우리는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을 바꾸는 예술' 사업에 선정됐다. 주제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가구 수리 워크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모으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전시도, 워크숍도, 대면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피스오브피스의 장점은 머릿수였다. 일곱 명이 모이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시민이 참여할 수 없다면, 우리끼리라도 해보자. 거리로 나갔고, 폐기물 딱지가 붙은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져오려 했지만 성인 남자보다 큰 장롱 앞에서 멈칫했다. "이걸 2층 작업실로 어떻게 옮기지?" 고민 끝에 번쩍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고치자!
유기사물구조대의 탄생
우리는 수레에 필요한 공구를 싣고 길 위로 나섰다. 그러나 막상 거리에서 뭔가 하려니 이상하게 몸이 쭈뼛거렸다. '이런 걸 해도 되는 걸까?' 머릿속이 공회전 하던 그때, 누군가 말했다. "우리 구조대가 되어보자! 사물을 고치는 것도 구조잖아." 모두가 웃었고, 이름이 정해졌다. '유기사물구조대'. 버려진 고양이와 개가 유기동물이라면, 버려진 가구는 '유기사물'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구조대가 되었고, 동대문 시장으로 달려가 119 구조대원과 비슷한 주황색 작업복을 맞췄다. 복장을 갖추자 기운이 났다. 공구를 실은 수레를 끌고 거리로 나서니, 사람들은 일곱 명의 구조대가 버려진 가구를 뚝딱 고치는 장면을 구경했다. 행동이 무대가 되고, 수리가 퍼포먼스가 되었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이 다가와 "이거 제가 써도 될까요?" 하셨다. 원래 규칙은 '발견 장소에서 고치고 도주하기'였지만, 그날만은 예외였다. 오래 방치돼 있던 서랍장을 어르신의 집까지 함께 옮겨드렸다. 웃음이 번졌다. 그 순간, 수리가 돌봄이 되고 돌봄이 예술이 된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유기사물구조대그날 우리는 유기사물구조대가 되었다 ⓒ 천근성
그날 이후 우리는 작업실이 있는 영등포를 기점으로 구로, 금천을 돌며 '발견–수리–도주'를 반복했다. 수리한 가구에는 폐기물 스티커 옆에 재사용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당근마켓 나눔 게시글에 오늘의 일기와 비포·애프터 사진, 발견 장소를 함께 올렸다. "응원합니다", "제가 가져갔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이 이따금 달렸다.
그때 우리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케아IKEA 가기 전에 가구보호소부터 들르면 좋겠다." 그 농담이 이름이 되었다. 아직 물리적 공간은 없지만 언젠가는 생겼으면 하는 센터. 서울아까워센터.
이 이름의 '아까워'는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다. 우리의 활동을 응원하고 늘 가르침을 주셨던 생태철학자 신승철 선생님의 정동(affect) 개념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정동은 이성과 감정 사이, 아직 언어가 되지 않은 움직임이다. 우리가 버려진 물건 앞에서 느끼는 그 막연한 '아까움'. 그 느낌이야말로 돌봄의 첫 징후이자 생태적 감수성의 문이다. '아까워'라는 말에는 이미 회복의 의지가 들어 있다. 사물에게 "넌 아직 쓸모 있어"라고 말해주는 언어, 그 언어가 서울아까워센터의 철학적 출발점이었다.
서울아까워캠프, 시민이 구조대원이 되다
코로나가 잦아든 2021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요청이 들어왔다.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세요." 우리는 시민 참여 프로그램 '서울아까워캠프'를 기획했다.
1박 2일은 무리라 판단해 무박 2일로 진행했다. 오전 10시 문래동 피스오브피스 작업실에 집결한 참여자들은 입소식을 하고 이론 특강('유기사물의 이해')을 들었다. 점심에는 옥상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로 요리해 밥을 지어 나눴고, 오후에는 싱어송라이터에게 의뢰해 만든 '아까워송'에 맞춰 율동을 함께 연습했다. 목재의 종류와 특성, 공구 사용법을 배우고, 저녁에는 자투리 목재로 캠프파이어를 했다. 불 위에 고구마를 굽고, 예술가와 업사이클 디자이너, 직장인, 학생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리 재활용을 잘해도 기업에서 버리는 쓰레기를 보면 허탈한 기분이다." "우리 삶에서 돌봄이란 뭘까?" "작은 행동이 진짜 분자혁명을 일으킬까?" 누가 강의하지 않아도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정예 수색조가 따릉이를 타고 골목 수색에 나섰다. "너무 멀쩡하지도, 너무 망가지지도 않은 것." 응급 처치로 환골탈태할 사물을 찾는 게 원칙이었다. 사진을 찍고 GPS 좌표를 남긴 뒤,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로45길 집합"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몸풀기였다. 어제 배운 아까워송을 부르며 율동을 했다. 혼자 했다면 쑥스러웠겠지만, 여럿이 하니 거리 전체가 무대로 변했다. 지나가던 주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세 명씩 팀을 나눠 유기사물을 수리했다. 시트지가 벗겨진 장은 새 시트를 덧입히고, 녹슨 나사는 갈아 끼웠다. 추운 날씨에 커피를 타다 준 주민도 있었고, 한 아저씨는 "이런 건 식은 죽 먹기라니까" 하며 드릴을 건네받더니 곧장 싱크대 경첩을 맞춰줬다. 즉흥적인 협업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주민은 "비스포크는 아니지만 비슷포크네" 하며 수리한 서랍장을 가져갔다. 진짜 구조가 일어난 셈이었다. 나머지 가구는 사진과 일기를 첨부해 당근마켓 무료나눔에 올렸다.
마지막은 수료식이었다. 참가자들은 "앞으로 인연 맺은 사물을 오래 돌보겠다"고 선서했다. '사물을 구조하러 왔다가 마음을 수리해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까워캠프서울아까워센타에서 진행한 서울아까워캠프 수료식 ⓒ 천근성
구조 활동, 생태 예술이 되다
서울아까워센타의 활동은 이후 '서울아까워클리닉'으로 확장되었다. 우리는 흰 가운 대신 파란 작업복을 입은 '사물 닥터'가 되어, 정형외과에서는 부러진 의자를, 피부과에서는 긁힌 책상을 치료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질문이 커졌다. "이 가구들은 모두 어디서 왔을까?" 답은 숲이었다. 나무가 베어질 때 새, 하늘소, 딱정벌레, 버섯, 다람쥐의 집도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생각했다. "버려진 가구로 새집을 지어보자."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가 한때 나무였던 버려진 가구를 찾아 나섰다. MDF나 파티클보드는 습기에 약해 새집 재료로 부적합했기에 신중히 선별했다. SNS를 적극 활용해 원목 자투리를 모은다는 소식을 알렸고, 몇몇 목공방에서 양질의 자투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제작한 전시가 용인문화도시 플랫폼 공생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모두의 나무: 자투리 마을 건설 작전!'이다. 도시 개발로 집을 잃은 동물들을 위한 새로운 보금자리. 일부 새집은 어린이 워크숍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전시는 올해 연말까지 이어진 뒤 실제 공원에 설치될 예정이다.

▲모두의 나무모두의 나무 전시 ⓒ 천근성

▲모두의나무2모두의 나무 전시 ⓒ 천근성
거리의 즉흥 퍼포먼스가 시민과 아이들이 만드는 생태 예술로 진화했다. '아까움'의 감정이 돌봄의 마음으로, 돌봄의 마음이 예술 행동으로 확장된 것이다. 수리(Repair)가 돌봄(Care)이 되고, 그 돌봄이 예술(Art)의 언어로 발화된다. 버려진 것이 되살아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서로를 돌보는 법을 배운다.
서울아까워센타의 모든 프로젝트는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수리가 돌봄이 되고, 돌봄이 예술이 된다." 수리란 기능의 복원이 아니라 관계의 복원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을 때 사물은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그 손길이 사람 사이로 번질 때 사회도 회복된다. 고쳐야 하는 건 가구만이 아니라 버려짐과 버림을 너무도 쉽게 허락하는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까워"라는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꾼다. 그 느낌의 진동이 곧 정동이고, 그 정동이 예술의 첫 움직임이다.
천근성(시각예술가, 피스오브피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