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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화되는 '탈팡(쿠팡 탈퇴)' 행렬과는 무색하게, 쿠팡 물류 아르바이트를 나온 사람의 숫자는 여전히 많았다. 날이 추워질수록 문풍지를 찾는 이들이 늘어 부업에 매달려 지내다, 그 일을 잠시 뒤로한 채 다시 현장에 나온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지난 20일 오후 5시반, 지급받은 안전화와 방한복을 착용한 후 '냉동층만은 피하자'는 마음으로 배치를 기다리는 줄의 뒤에 섰다. 그곳에 줄지어 선 사람들의 소지품만 봐도 숙련자인지, 오늘이 첫 출근인 초보자인지 쉽게 구분이 갔다.
각자의 가방을 내려놓고 설렁설렁 몸을 풀며 주변 사람들과 수다를 나누는 이들은 이곳이 익숙한 경험자들이었고, 주위를 자꾸 둘러보며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들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사람들일 것이다. 그 차이를 알아보는 일이 쉬웠던 건, 나 역시 한때 그 초보자였기 때문이다.
복잡하진 않지만 멈출 수 없는 일

▲멈출 수 없는 일. ⓒ kseegars on Unsplash
잠시 후 인솔자가 나타나 나뉜 행렬을 이끌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배치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신선칸으로 향했다. 정육과 치즈, 유제품이 가득한 그 공간은 예전에 자주 배치되던 곳이라 동선을 헤매지 않아도 됐다. 몸은 다시 긴장했지만, 익숙함이 주는 안도감 덕분에 마음 만큼은 조금 편안해졌다.
배정된 층에 도착하자 PDA(개인단말기)가 한대씩 지급되었다. 화면에 뜬 물품을 하나씩 찾아 바구니에 담고, 목록이 비워지면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두는 것으로 한 건이 끝이 난다. 완료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다음 주문서가 떴다. 그 과정을 새벽 두 시가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복잡하진 않지만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간에는 한 시간의 저녁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식사는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다.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있었고, 식판에 원하는 반찬을 골라 담아 밥을 먹을 수도 있었다. 식당은 넓어졌고, 환기도 잘 됐다. 하지만 발바닥은 이미 딱딱한 안전화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욱신거리기 시작했고, 종아리는 서서히 부어오르고 있었다. 남은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많은 양을 억지로 밀어 넣듯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오자 각자 배정된 층의 복도에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아는 사람이 없어 비교적 한적한 곳을 골라 엉덩이를 붙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역시 이탈자도 있었다. 스무 살 남짓으로 보이는 학생이었는데, 아마 생각보다 고된 노동 앞에서 발길을 돌린 게 아닐까 싶었다. 나 역시 한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귀가를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저 학생의 미래 만큼은 부디 덜 힘들길, 잠시 마음속으로 빌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다시 업무에 투입됐다. 주문은 쉼 없이 밀려 들었고, 디딤 계단을 오르내리며 물건을 꺼내거나 허리를 굽혀 찾아 넣는 동작이 반복될수록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속도가 늦어지면 곧바로 관리자들이 다가와 재촉을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물품을 출고해야 하는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컨디션은 업무를 천천히 해도 된다는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새벽에 끝난 일

▲새벽의 골목길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간간히 켜져있는 가정집의 불빛이 새삼 반갑다. ⓒ 유수영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바구니를 채우고, 커다란 이동식 끌차들이 사방을 오가며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곳이 마치 거대한 개미굴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음이 나왔다. 발을 옮길 때마다 안전화에 달린 전자칩이 달그락거리며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스스로가 기계의 일부가 된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런 잡념이 떠오른 건, 아마도 잠시 내가 한가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곧바로 주문서 완료에 속도를 붙였다.
냉장칸이었지만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니 방한복 안으로 땀이 흘렀다. 흘린 땀이 식으면 감기에 걸릴 것이 분명해 옷을 벗을 수도 없었다. 발바닥 통증이 심해질 때마다 카트를 한쪽에 세워두고 물건 사이에 널려 있던 에어캡을 잘라 신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잠깐이나마 깔창 역할을 해줬다. 하지만 숨이 죽으면 다시 통증이 올라왔다. 그날은 그렇게 세 번이나 에어캡을 갈아 끼우며 바구니를 채웠다.
탈의실에서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고 안전화와 방한복을 반납한 뒤, 6층 옥상으로 향했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모두 태울 수 없는 엘리베이터를 피해 계단을 택했다. 이 건물의 6층은 보통의 6층보다 훨씬 높았다. 지친 몸을 끌고 계단을 오르면서도 시간을 계산했다. 셔틀버스는 제시간이 되면 기다려주지 않고 출발을 하기 때문이다.
숨이 차오른 상태로 옥상에 도착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생수 한 병이라도 챙겨 올 걸 하는 생각이 들 즈음, 버스는 출발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세 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12월의 반을 훌쩍 넘긴 지난 21일의 새벽 공기가 코끝을 찔렀고, 결국 재채기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나는 또 며칠을 버틸 돈을 손에 쥐었다. 이곳은 필요한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당장 생활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당분간은 이 선택지가 내 생활을 지탱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