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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6.2 지방선거 중 성남시장 범야권단일후보 이재명 후보(민주당)와 김미희 민주노동당 도의원 후보가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는 봉국사를 찾아 효림 스님과 함께한 모습.
2010년 6.2 지방선거 중 성남시장 범야권단일후보 이재명 후보(민주당)와 김미희 민주노동당 도의원 후보가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는 봉국사를 찾아 효림 스님과 함께한 모습. ⓒ 효림

- <[인터뷰 ①] 불교 종단개혁, 일제와 군사독재 굴종 걷어낸 혁명>(https://omn.kr/2ggrq)에서 이어집니다.

정치와 거리를 두려 했던 수행자는, 결국 정치와 권력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을 지켜보게 됐다. 장기수와 마지막 빨치산, 성남의 시민운동가들 곁에 서 있으면서, 그는 먼저 인간을 보고 그다음에 권력을 보는 법을 익혔다. 노무현과 이재명을 가까이서 만난 것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효림 스님은 이를 '정치적 선택'이라 부르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권력을 대하는 몸짓을 유심히 살폈을 뿐이라고 말한다. 2편에서는 장기수 인권운동과 봉국사 아침 죽 모임, 성남시장 경선 국면을 지나며, 그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통해 확인하고자 했던 '정치의 최소 조건'을 따라가 본다.

장기수 곁에 남다... '석가모니가 배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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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단 개혁 후 불교계 복지 활동과 인권 운동에 앞장서셨는데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입니까?

"개혁 이후 불교가 내부 문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종단이 자기를 개혁해 낸 힘이 있다면, 이제는 그 힘을 사회로 돌려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종단 문제에서는 한발 물러나 시민사회 영역으로 활동의 중심을 옮겼습니다. 불교계 복지 활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했고, 인권 운동으로는 실천승가회를 중심으로 한 장기수 돕기 운동이 기억에 남습니다.

연등행사 때 음악회와 모금 행사로 기금을 마련해 장기수들의 생계와 의료를 도왔고, 파주 보광사 주지 시절에는 돌아가신 장기수들의 유골을 절 안에 모실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여사, 문근영 배우의 외조부 윤학진 선생 유골이 보광사로 오며 논란이 커졌을 때, '배후가 누구냐'는 질문에 '석가모니가 배후다'라고 답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업씨와 관련해 이름이 자주 언급됐습니다. 당시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2002년 대선 당시 김대업씨가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일었을 때, 저는 이해학 목사와 함께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참여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김대업 사건의 폭로 과정이나 자료·언론·정치권과의 연결 등 기획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급속히 정치화 돼 김대업씨가 홀로 책임을 떠안는 상황에서, 그의 이후 범죄 이력과는 별개로 한 인간이 완전히 소모되는 것을 막고자 주변에서 최소한의 도움을 준 것이 전부입니다. 사법적으로는 개인의 무고·명예훼손으로 결론 났고, 정치적으로는 병역 특혜 문제가 잠시 공론화 된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그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정치화 과정에서 한 인간이 소모되는 것을 지켜본 주변인이었습니다."

봉국사 아침 죽 모임... 정치가 시작된 자리

- 성남 봉국사 주지를 맡으면서 현 이재명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셨지요?

"봉국사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성남 시민사회·정치권 인사들이 자꾸 찾았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이재명 변호사였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전화해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는 '나 혼자로 되는 게 아니다. 평소 가까운 사람들 명단을 불러달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불러준 시민운동가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아침마다 봉국사에 모여 죽을 먹는 '죽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절에 모여 아침 죽 한 그릇 나누며 선거와 성남의 미래를 말하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됐습니다."

-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으로 당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이 민주당에 입당하며 성남시장 전략공천을 노렸을 때, 우리는 '경선을 해야 한다'고 보았고 당 지도부에도 그 뜻을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경선관리본부장이 동국대 불교학과 출신 최재성 의원이었고, 실천승가회 시절 인연이 있어 성남 시민사회 인사들과 함께 여러 경로로 경선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당은 경선을 결정했지만, 전략공천을 노리던 쪽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국면이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재명 후보에게 섣불리 사퇴하지 말라고 권했고, 또 다른 경쟁자였던 민주노동당 김미희 후보에게는 '지금 성남시장에 나가면 당선되기 어렵다. 이재명에게 양보하고, 대신 당신 지역구에는 민주당 후보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명분을 가져가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전략이 받아들여져 이후 성남 정치 지형이 형성되는 데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 당시 김미희 후보는 성남시장 후보 사퇴 뒤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다. 단일화를 이뤘던 이재명이 성남시장에 당선하고는 성남시장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맨발로 뛰어나간 노무현... 말을 빙빙 돌리지 않는 이재명

- 스님께서는 정치 상황을 읽는 감각과 국면을 조율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통찰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십니까?

"내가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감수성이 조금 더 예민하다고 느낍니다. 정치인의 말과 논리보다 태도와 몸짓, 분위기에서 많은 것을 읽는 편입니다. 그런 정서적 직감이 정치적 판단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돕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유시민 개혁당 대표 주선으로 함세웅 신부, 이해학 목사와 함께 노무현 후보와 식사한 자리에서, 노 후보가 바깥에 있던 신계륜 의원(당시 후보 비서실장)을 맨발로 뛰어나가 함께 식사하게 한 모습을 봤습니다. 권위의식 없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 사람을 도와야겠다'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슷한 '인간적 매력'을 느끼셨나요?

"그렇습니다. 노무현은 우리보다 몇 살 많은 선배이고, 이재명은 10년 이상 아래입니다. 이재명을 여러 번 만나보면, 소탈하고, 둘러 말하지 않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말이 빙빙 돌지 않고, 꾸밈이 없습니다. 그런 점이 크게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초반 국정 운영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 일각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인수 기간이 충분치 않았던 조건에서도 국정 공백을 최소화했고, 행정 전반에서 속도와 안정성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위기 대응과 현안 처리에서도 실무형 국정 운영자의 면모가 드러났다고 봅니다. 다만 대통령 평가는 임기 초반 운영 능력으로 완결되지 않습니다. 그 정부가 한국 사회에 어떤 장기 국가 과제를 설정하고 남겼는지가 결국 역사적 평가를 가릅니다. 박정희는 '새마을운동', 김대중은 '제2건국', 노무현은 과거사 정리를 통해 국가 폭력 문제를 다시 공론화했습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초반의 실행력을 넘어, 어떤 장기 의제를 사회 속에 뿌리내리냐에 따라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것입니다."

평등은 인식이고, 공정은 제도다

- 이재명 정부가 장기적으로 남겨야 할 국가 의제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십니까?

"정권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어요. 다만 사회가 오랫동안 함께 붙들고 성찰할 중심 화두는 필요합니다. 저는 그 화두를 '공정 사회'라고 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평등은 깨달음의 전제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제도의 언어로 옮겨질 때 그것은 공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공정 사회는 단기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적 수행 과제입니다. 그래서 정권의 이해를 넘어 질문을 이어갈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상설 논의의 장을 통해 시민사회·전문가·행정이 공정의 기준을 묻고 점검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추진하는 기구가 아니라, 사회가 어디서 불공정해지는지를 성찰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조선의 역사가 떠오릅니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해 기반을 마련했고, 정조는 규장각으로 학문과 정치를 연결했습니다. 그 사이의 세조 역시 중요합니다. 세조는 간경도감을 설치해 불교 경전을 한글로 번역·간행함으로써, 한글이 신앙과 일상의 언어로 사회 안에 뿌리내리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제도를 만드는 일만큼, 그것이 사회 속에서 작동하게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례입니다."

- 왜 평등이 아니라 공정입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평등은 요구나 구호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 인식입니다. 모든 존재는 본래 차별이 없다는 데서 출발하지만, 현실 사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조건과 환경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고, '모두 평등하다'는 선언만으로는 삶의 격차를 줄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평등이 사회에서 작동하려면 제도의 언어로 번역돼야 하고, 그 언어가 공정이라고 봅니다. 공정은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조건과 위치를 고려해 제도와 규범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평등이라는 가치가 공정이라는 형식을 통해 비로소 작동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효림 스님이 낸 시집과 저서의 일부. 왼쪽 위부터 맨발로 오신 부처님, 흔들리는 나무,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그들도 꽃그늘, 민족의 길, 금강경 읽기
효림 스님이 낸 시집과 저서의 일부. 왼쪽 위부터 맨발로 오신 부처님, 흔들리는 나무,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그들도 꽃그늘, 민족의 길, 금강경 읽기 ⓒ 임미리

- 시인으로서 10여 권의 시집을 발표하셨고 전태일 문학상 특별상도 수상하셨습니다. 시인과 수행자의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중국 선종이 확산하던 당대에 근체시가 정형화·성숙했고, 선과 시가 맞물려 전개됐습니다. 수행자의 깨달음과 수행의 경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언어가 시라고 봅니다. 한글 시집을 여러 권 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근대 이후에는 만해 한용운이 최고의 선시인이자 민족운동가였고, 현대에는 조오현 스님이 그 뒤를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 8월 26일 열린 '자승 적폐청산 재가불자 결의대회'. 왼쪽에서 세 번째가 효림 스님.
2018년 8월 26일 열린 '자승 적폐청산 재가불자 결의대회'. 왼쪽에서 세 번째가 효림 스님. ⓒ 불교닷컴

기준을 묻는 종교... 자본주의와 정치 앞에서의 불교

-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자본주의는 탐욕을 전제로 작동하며 더 많이, 더 빠르게를 요구합니다. 불교는 탐욕을 단순히 부정하는 종교가 아니라, 그것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서부터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묻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교의 역할은 '돈을 벌지 말라'가 아니라, 돈이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를 침식하지 않도록 기준을 묻는 데 있다고 봅니다. 깨달음은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하지만, 그 결과는 사회로 확장돼야 합니다. 고통을 줄이고 집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이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불교의 사회적 실천입니다. 불교는 체제를 대체하기보다, 체제를 성찰하게 만드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 종교인으로서 정치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십니까?

"종교는 정치 권력과 결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정파나 권력의 편에 서는 순간 수행의 언어를 잃고 이념의 언어를 쓰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회의 고통과 불의 앞에서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거나 약자를 배제할 때 종교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이 맞는지를 묻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종교가 정치와 만나는 가장 바람직한 지점은,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기준을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 선을 넘지 않으려 늘 조심해 왔고, 앞으로도 그 긴장 속에서 종교인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효림 스님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수행은 개인의 내면에 머물지 않으며, 종교 역시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이다. 출가와 사회 참여 모두 계획된 선택이라기보다, 시대의 압력과 인간적 판단이 겹치며 형성됐다.

그는 종교와 정치 권력의 결합에는 선을 긋지만, 사회적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종교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평가에서도 개인보다, 한 정부가 사회에 어떤 장기 의제를 남기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공정사회'는 그가 제시한 하나의 지속적 질문이다.

출가에서 시작된 물음은 감옥과 거리, 제도와 정치의 영역을 거쳐 사회를 향한다. 효림 스님에게 수행은 결국 시대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이며,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5년 12월 8일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전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효림 스님.
2025년 12월 8일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전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효림 스님. ⓒ 임미리


#효림스님#실천불교전국승가회#노무현#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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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리의 집중 인터뷰

사회운동, 사회계층, 사회변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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