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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절집 주혼지 정원 손질을 끝으로 올해 예정된 작업이 모두 끝났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어서 귀국을 서둘렀다. "건강해라" 쿠사노역에서 할배는 서운한 표정이었지만, 반복되는 연례 행사인지라 작별의 순간은 금방 지나갔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빨간 디젤 전차가 도착했다. 멀리 보이는 미노연산이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협회에서 결과통지가 왔다. 다행히도 마스터 자격에 부끄럽지 않은 점수였다. ⓒ 유신준
축하 문자를 먼저 받다
시험 결과 발표 일주일 전이었다. 협회에서 메일이 왔다.
"결과 통지를 한국 주소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심장이 뛰었다. 합격자에게만 보내는 메일일까? 아니면 전원에게 보내주는 것일까? 답신을 하고 나니 초조함이 밀려왔다. 이틀 후 고가 선생에게서 축하 문자가 먼저 왔다.
"수고했어요. 잘했어요."
국제우편이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그녀가 결과를 미리 알게 된 듯 했다. '언제 건너오냐며 함께 밥이라도 먹자'는 문자까지 따뜻했다.
결과 통지가 왔다. 가로공주가 오사카에서 은상을 받던 그 순간의 떨림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다행히 마스터 자격에 부끄럽지 않은 점수였다. 합격자는 108명. 그중 남자는 8명으로 예년보다 높은 수치라고 했다.
외국인 합격자는 단 한 명이었다. 전체 회원을 통틀어도 유일하다고 했다. 협회 담당자는 '교과서와 학과 시험이 일본어로 되어 있어, 원어민이 아니면 상당히 어려운 수준이라서 그럴 것'이라고 설명했다. 74세의 최고령 합격자도 있었다. 나이는 도전의 장벽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귀국하여 행잉바스켓을 계속하리라 결심했지만, 나를 도와줬던 선배들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노력의 결과로 얻은 내 합격 통지가 보답이었다. 자격증 여부는 현실적으로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두루두루 모양이 빠지지 않게 마무리 할 수 있어 기뻤다.
건너올 때 행잉바스켓 전용 슬릿화분 10개를 구입해 왔다. 한국에 없는 물건이라서 견본품으로 준비한 것이다. 국내 환경이 많이 다르니 우선 요세우에부터 시작하는게 순서라 생각한다. 요세우에는 장점이 많다. 집에 있는 화분들을 그대로 써도 된다. 초화류 구성이라든가 배색요령은 행잉바스켓과 똑같다. 행잉바스켓을 시작하기 전에 징검다리 구실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세우에의 가장 큰 매력은 행잉바스켓처럼 배색 조화에 있다. 식물을 어울려 심어서 조화시키는 것에 의해, 하나를 심었을 때보다 그 아름다움을 몇 배나 매력적으로 달라진다. 초화류를 한 종류만 심는 단품 심기는, 밭에서 기른 농산물을 그대로 화분에 담아 파는 1차 산업이다. 요세우에는 디자인을 고려한 작품으로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2차 산업이 된다. 요세우에는 새로운 트랜드의 소비형식으로 초화류 판매를 촉진하면서, 농업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태어났으므로 나는 이미 선택받은 존재다. 지금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며 기적이다. ⓒ 유신준
할 일이 많이 생겼다
관심있는 분들과 행잉바스켓 관련 정보를 나누는 일부터 시작하려 한다. 네이버에 '
한국 행잉바스켓 연구소'라는 카페를 만들었다. 그동안 배운 행잉바스켓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하고 싶어서다.
연구소에서는 우리 것을 접목시키는 작업도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행잉바스켓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건너온 일본의 기술은 이 땅의 기후와 문화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일본 스타일의 장점에 기반을 두되 새로운 옷을 갈아 입힐 것이다.
최근 친구에게 부탁해서 영미권의 행잉바스켓 교재 몇 권도 구해서 공부하는 중이다. 그들의 주류는 정통 행잉바스켓과 윈도우 박스(창틀장식 화분)였다. 일본의 행잉바스켓은 정통 주류의 행잉바스켓을 벗어난 월 컨테이너(벽걸이 화분)종류라는 것도 알게 됐다. 참고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코리우스의 모험'이라는 우화 소설도 준비하고 있다. 가로공주의 코리우스를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 코리우스는 개성이 너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전체적인 바스켓 구성에는 없어서는 안될 양념 같은 존재다. 코리우스 일생에 행잉바스켓 기법을 접목시켜서, 처음 접하는 분들이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입문서로 엮어 볼 생각이다. 이 길을 걷다보니 할 일이 많이 생겼다. 일이 많아서 좋다.
일본의 유명한 실버센류(노년 세대의 짧은 시)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일어났지만 잘 때까지 특별히 할 일이 없네'
'잠이 안 와서 일어나 기다렸네 다섯시 알람'
노년의 하루를 풍자적인 5, 7, 5 자구에 담은 것이다. 작가는 독자의 웃음을 의도했을 테지만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막상 닥치면 하루하루 다가오는 막막한 일상은 노년의 공포다. 어떻게 할 것인가. 뭔가 서로 '나누며 살 것'이 있어야 한다. 내 깨달음이었다. 행잉바스켓 마스터는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며 살고 싶은 내 노년의 소망이 담겨 있다.

▲행잉바스켓 마스터는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며 살고 싶은 내 노년의 소망이 담겨 있다. ⓒ 유신준
| [독자님들께] |
그 동안 함께 해 주신 독자님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할배의 호스 물벼락 걱정부터 색채 이론까지, 지루할 법도 한데 끝까지 읽어 주셨다. 장장 15회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읽어 주시고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독자님들의 덕분이라 생각한다. 진심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걸 도대체 누가 읽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주제가 행잉바스켓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분야이고, 더우기 한국과 동떨어진 일본에서 진행되는 일이라 반응을 기대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관심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부족한 경험이나마 나누고 싶었던 것이 연재를 시작할 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관심있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더 자세히 기록하려 애는 썼다.
또 한 가지 욕심이 있었다면 나이 든 동년배들에게, 혹은 앞으로 나이가 들어서 뒤따라 올 후배들에게 어떤 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 뭔가 자기 관심 분야를 찾아서 시도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설령 그런 게 없다 한들 어떤가. 그동안 내가 관심 분야에 몰입했던 즐거움은 오롯이 내 삶에 아로새겨질 흔적이 될 것이니, 그걸로도 충분하다.
매회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고백하건데 이역만리에서 외로움을 견딜 수 있던 것도, 시험을 앞두고 분발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하여 얻은 합격의 영광조차도 매회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이었다. 와이파이를 찾아 페이지뷰 숫자를 확인하며 응원에 감격하고 힘을 냈다. '누군가 읽고 있구나'라는 감격만으로도 외로움이 사라졌다. 다시 한 번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앞으로 한국에서 활동을 이어갈 행잉바스켓 시즌2에서 다시 뵐 것을 약속드린다.
평소 좋아하는 문구로 글을 마친다.
'태어났으므로 나는 이미 선택받은 존재다. 지금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며 기적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잠언이다. 거대한 삶의 수레바퀴 밑에서 오늘도 고군분투중인 이 땅의 수많은 한스들에게도 위로와 응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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