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발전소지역대책위협의회 관계자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헌법소원 심판청구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2.17 ⓒ 연합뉴스
원자력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고준위핵폐기물, 사용후핵연료) 특별법 등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른바 '졸속 입법'으로 원전 부지 안에 장기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을 허용하면서 이른바 주민들의 행복추구권·환경권·평등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는 게 헌법소원의 핵심이다. 탈핵단체와 함께 부산과 경주 등에서 284명이 청구인으로 나섰고, 피청구인으로는 국회와 대한민국 대통령을 명시했다.
반감기만 수만년 고준위방폐물 논란, 특별법 결국 헌재로
17일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김영희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하루 전 헌법재판소에 고준위 특별법과 동법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고, 이날 이러한 사실을 공개했다"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원전 인근 주민들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고 위험만 떠안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부지적합성 검토 없이 위험 부담을 강제하는 건 위헌적 입법에 해당한다"며 "(헌법소원의)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라고 말했다.
전자 방식으로 접수한 이번 헌법소원 청구 명단에는 사용후핵연료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원전 5㎞ 거주자들과 방사선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80㎞) 주민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과 탈핵단체는 이날 헌법재판소 앞을 찾아 "사용후핵연료를 대량으로 저장하게 될 시설의 안정 확보 검토나 제대로 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의 작성 없이 졸속으로 법을 제정했다"라고 헌법소원의 이유를 강조했다.
원전 갑상선암 소송과 다큐멘터리 <월성>의 주인공이기도 한 황분희(77)씨는 "말만 임시저장시설이지 실제로는 영구적인 핵폐기장을 전국의 원전 부지마다 지으라는 법"이라며 "원전 지역 주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건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빼앗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윤종호 핵없는세상을위한고창군민행동 운영위원도 "어떠한 동의도 없이 기존 부지에 임시저장 이름으로 핵폐기장을 설치하려 한다"라며 "이게 민주주의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탈핵법률가모임에 따르면, 이번 절차는 헌법상 기본권 침해와 관련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 성격을 띤다. 헌재법은 기본권의 침해 사유가 있는 날부터 1년 이내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위헌성도 따져 묻는다. 탈핵법률가모임은 "위헌적 공권력 행사로 기본권 침해 구제가 필요하다는 뜻도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해 9월부터 시행된 고준위특별법은 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영구처분 시설의 부지선정 절차와 관리체계 등을 처음으로 법제화했다. 원전을 가동한 뒤 남은 부산물은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만 수만 년에 달해 그 자체로 골칫거리였다. 방폐장 부지 선정이 쉽지 않자 중간 시설 구축 전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건식저장을 가능하게 하면서 논란이 됐다. 환경단체와 원전 반대 측은 '임시=영구화' 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청구인들은 헌법재판소가 ▲안전 기준의 부재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생략 ▲영구 처분 가능성 ▲차별적인 의견 수렴 대상 지역 설정 등을 꼼꼼히 살펴 헌법소원 인용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상현 부산환경운동연합 협동사무처장은 "부지 내 저장시설은 사용후핵연료 중간·영구시설과 비슷한 위험성을 가지지만, 의견 수렴 절차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아 주민들의 환경권과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시행령이 건식시설에 따른 의견수렴 대상 범위를 5㎞ 이내로 정한 점을 두고서도 방사선환경영향평가 80㎞ 기준과 어긋난다며 평등권 문제를 지적했다.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에 따르면, 원전을 가동하고 난 뒤 나온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 등을 고리원전 부지 내에 임시저장하게 된다. 탈핵단체는 부지 선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상의 영구적 시설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김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