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없는 사회'를 국정과제로 발표한 이재명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 전세사기 피해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실효성 있는 특별법 개정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여야 합의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전세사기 피해자 최소지원금 예산 증액안이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피해자 요구를 담은 전세사기특별법 또한 정부의 협조 없이는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이에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릴레이 호소문을 전달합니다.

▲2023. 12. 13. 부산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현장간담회에서 이단비 위원장 등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부를 전달하고 있다. ⓒ 전세사기 시민대책위
이재명 대통령님, 2023년 12월 13일을 기억하시는지요. 부산 수영구의 전세사기 피해 건물을 찾아오셔서 피해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던 그 날입니다.
당시 대통령님께서는 전세사기 피해 문제의 본질은 결국 "그 피해를 누가 떠안을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개인의 책임이라 떠넘긴 것과 달리, 전세사기는 분명 국가 제도의 미비로 발생한 문제이며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이 일부라도 일상을 회복하고 다시 삶을 재기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구제가 반드시 필요하며,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몫은 국가가 떠안아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또한, 2023년 6월 윤석열 정부에서 만들어진 전세사기 특별법은 정부의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한계 속에서 급히 타협된 법안이었고, 6개월 뒤 반드시 개정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하셨습니다. 여야 협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민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해야 할텐데, 그 또한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고충도 함께 말씀하셨던 것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남시장 시절 보여주셨던 행정가의 면모를 떠올리며, 부산을 포함한 전국을 '성남'처럼 생각하고 살펴봐 달라고 요청드렸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셨던 것까지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님, 저는 2년 전 그날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전세사기 피해 문제에 깊이 공감하며 말씀해 주시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그래서 대통령님이 당선되셨을 때, 피해자들이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겠구나, 무엇인가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그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산의 한 다세대 공동담보 건물에서는 총 42세대가 경매 절차를 끝내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공동담보로 묶여있는 건물은 한 세대가 낙찰되었다고 경매가 종료되지 않고 건물 전체, 모든 세대가 낙찰되어야만 비로소 경매가 종료됩니다. 경매가 끝나지 않으면 피해자들은 경매차익을 받을 수 없고, 전세보증금 20년 무이자 상환 신청도 불가합니다.
하지만 정작 전세자금대출 상환 압박은 각 세대가 낙찰되어 임차권등기가 말소되는 즉시 시작됩니다. 결국 피해자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경매 종료만을 기다리다가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에 이르는 대출 금액을 감당하지 못해 회생이나 파산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2024. 8. 13. 피해 최소보장, 사각지대 없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단비 위원장 ⓒ 전세사기 시민대책위
심지어 각 세대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해관계가 달라지면서 같은 피해자들끼리 서로를 원망하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A씨는 보증기관과 은행을 통해 문제 없이 전세자금대출을 받았지만 전세사기 피해를 인지하고 보니 갑자기 해당 세대가 불법건축물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임대인이 관리실과 통신실 등 공용부를 주거 용도로 전용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불법건축물일 경우 현행 특별법상 LH의 피해주택 매입을 신청할 수 없어 A씨는 경매가 종료되면 해당 주택에서 퇴거해야만 합니다. 결국 A씨는 주거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으로 법원에 경매 유예를 신청했습니다. A씨의 선택으로 공동담보 경매가 지연된다고 해서, 그 누구도 A씨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건물의 B씨는 선순위 피해자이나,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경매 과정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즉, 누군가 선순위 보증금을 포함하여 해당 세대를 낙찰 받거나 스스로 낙찰 받아야 합니다. B씨는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매 종료 대신 언제 나타날지 불확실한 낙찰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면, C씨는 같은 선순위 피해자임에도 피해자 인정을 받아 우선매수권을 보유하고 있고, 일정 금액을 회수할 수 있는 만큼 빠르게 경매가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자의 상황에 따라 경매 진행 여부를 두고 다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지만 공동담보로 묶인 건물의 경매 절차는 조금도 진행되지 못한 채 장기간 대기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개별 사정 하나가 전체를 멈추게 만드는 구조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란 말은 사실상 방치
다행히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제도적 근거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사집행법 제98조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원 직권 또는 이해관계인의 신청에 따라 부동산을 일괄매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LH의 피해주택 매입 절차와 기준을 정하는 업무처리지침에서도 관련 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과 지침이 현실에 맞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피해자들은 그간 사법부의 동의를 통한 일괄매각이나, 배드뱅크를 활용한 근저당 채권 매입 후 이해관계자 동의를 거쳐 일괄매각을 진행하는 방안 등을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습니다. 그러나 관련 논의는 사법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반대로 좌절되었으며 그 사이 피해자들의 고통만 가중되었을 뿐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어렵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사실상 방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대안을 기다리고 싶지만 은행과 경매, 흘러간 시간은 피해자들의 사정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연될 수록 피해자들만 깊은 곤경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님, 대통령님의 말씀대로 전세사기는 개인의 판단 착오가 아니라, 제도의 허점과 정책 실패가 만들어낸 사회적 재난입니다. 주거는 인간이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할 삶의 기반이며, 피해자들은 투자나 투기를 위해 집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지원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무너진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요청하고 있을 뿐입니다. 부디 이 절박한 현실이 대통령님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선 구제 후 구상권 청구 방안을 다시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편집자 말).
[릴레이 호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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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님, 전세사기 피해자와의 약속을 잊으셨습니까 https://omn.kr/2gb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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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로 1억 빚 떠안은 97년생입니다, 제발 이 '겨울'을 끝내주세요 https://omn.kr/2gc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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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특별법 개정만 기다렸는데... 희망은 언제 오나요?" https://omn.kr/2g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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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인정에만 10개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계속 절망 속에 사는 이유 https://omn.kr/2gen1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단비 부산 전세사기 대책위 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