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식투자 인구 1400만 명, 가상자산 투자자 1000만 명 시대다. 우리 국민 3명 중 1명이 주식과 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도 투자를 권장한다. 투자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법. 이들 상당수가 빚을 얻어 투자금을 마련한다. 주식과 코인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어나면 경제가 살아나고 서민들 삶이 나아질까. 금융이 사회에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작동되어야 할까. 이 글은 우리 시대 참 금융의 모습을 고찰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연도별 법인 기부 현황 (단위 : 법인 수, 억 원) 사랑의 열매 사회공헌정보플랫폼에서 인용, 기자 재편집
연도별 법인 기부 현황 (단위 : 법인 수, 억 원)사랑의 열매 사회공헌정보플랫폼에서 인용, 기자 재편집 ⓒ 문진수

우리나라 기업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위 그림은 지난 10년간 국세청에 신고된 법인의 기부금 현황을 표시한 것이다. 파란색 막대가 법인 숫자고, 빨간색 선이 금액이다. 2024년 기준으로 기부금을 쾌척했다고 신고한 법인은 1백만 개가 넘고, 이들이 낸 기부금 총액은 5조 1572억 원 수준이다.

법인 수는 늘고 있지만 기부금은 줄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0년 동안 법인 숫자는 59만1694개에서 105만8498개로 꾸준히 1.78배 늘었지만 기부금은 2015년 4조7782억 원에서 2024년 5조 1562억원으로 크게 늘지 않았다. 2021년 5조 2586억 원을 기록했으나 그 이후 오히려 줄어든 상황이다.

상장(上場) 여부에 따라 금액 차이도 크다. 2024년 기준, 상장법인의 기부금 합계액은 1조 7678억 원, 비상장법인의 기부금 합계액은 2조 3894억 원이다. 평균 금액으로 환산하면 상장법인(2,500개)은 약 7억 원을, 비상장법인(1,055,925개)은 약 320만 원을 기부한 셈이다.

AD
법인이 기부금을 납부하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예를 들어, 당기순이익이 6억 원인 회사는 약 1억 원의 법인세를 납부해야 한다. 만일 이 회사가 3천만 원을 기부하면 세금 6백만 원이 줄어든다. 손금(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부금 한도는 지정기부금이 10%, 법정기부금이 50%다. 따라서 지정기부금 단체에 기부하면 6천만 원까지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기부하지 않았을 때의 법인세
: {2억 원*0.1(법인세 10%)}+{4억 원*0.2(법인세 20%)} = 1억 원
3천만 원을 기부했을 때의 법인세
: {2억 원*0.1(법인세 10%)}+{(4억 원-3천만 원)*0.2(법인세 20%)} = 9천4백만 원
<자료 제공 :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기부금은 어디로 향할까. 아래 그림은 2001∼2023년간 기부금(개인+법인)이 전달된 분야를 나타낸 것이다. 자선단체로 전달되는 비중(67.5%)이 가장 높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2년간 줄곧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어서 해외구호(26.2%), 시민단체(17.5%), 지역사회(9.0%), 의료(7.9%), 교육(7.9%), 문화예술(2.9%) 순이다.

2001∼2023년간 기부 분야 (개인+법인, 중복응답) 기빙코리아에서 인용, 기자 재편집
2001∼2023년간 기부 분야 (개인+법인, 중복응답)기빙코리아에서 인용, 기자 재편집 ⓒ 문진수

전체적으로 볼 때, 자선단체(1순위), 해외구호(2순위), 시민단체(3순위) 비중이 높고 지역사회, 의료/교육, 문화예술 영역이 낮음이 확인된다. 기관과 단체가 기부의 주요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림에 표시되어 있진 않지만, 2022년 조사에서 동물보호 분야(17.7%)가, 2024년에는 환경/기후변화 분야(13.1%)가 등장하는 등 지형이 새롭게 재편되는 추세라고 한다.

법인은 크게 상업적 목적을 추구하는 영리법인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비영리법인으로 나뉜다. 비영리법인은 기부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국내 회사들의 자산총액 합계가 5조 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이하 공시집단), 10조 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하 상출집단)이 설립한 비영리법인이 대표적이다.

2023년 말 기준, 공시집단(78개)이 보유한 비영리법인 수는 총 491개다. 이중 상출집단이 보유한 비영리법인은 395개로, 전체의 8할이 넘는다. 법인 수도 증가하고 있다. 5년 전(2018년)과 비교하면, 공시집단이 보유한 공익법인은 165개에서 215개로 늘었다. 표에 나타난 것처럼, 증가한 공익법인 대다수가 자산총액 10조 원이 넘는 상출집단이 설립한 법인이다.

공시집단 비영리법인 보유 현황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비영리법인 운영현황 실태 분석 결과
공시집단 비영리법인 보유 현황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비영리법인 운영현황 실태 분석 결과 ⓒ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현황을 살펴보자. 공시집단 소속 비영리법인(491개)이 소유한 자산 총액은 28조 4634억 원으로, 법인당 평균 자산은 580억 원이다. 이 중 9할 이상이 상출집단 소속 비영리법인(395개)이 소유한 것으로, 평균 자산은 676억 원에 달한다. 자산규모가 1천억 원을 넘는 비영리법인도 48개나 된다.

공시집단 비영리법인 자산현황 (단위: 억 원, 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비영리법인 운영현황 실태 분석 결과, 기자 재편집
공시집단 비영리법인 자산현황 (단위: 억 원, 개)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비영리법인 운영현황 실태 분석 결과, 기자 재편집 ⓒ 문진수

대기업집단이 앞다투어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겉으로는 사회공헌활동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 계열사 지분을 공익법인에 넘겨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것이다. 지금은 상출집단 공익법인이 소유한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제도가 도입(22.12.30)되어 제동이 걸린 상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공익법인의 자산 운용은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불건전한 목적으로 비영리법인을 설립한 대기업의 일탈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대기업집단이 세운 공익법인은 제대로 된 공익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불능(不能) 상태에 빠져 있다. 자동차에서 가속장치를 떼어내고 제동장치만 남겨둔 모양새다. 해외의 공익법인들이 왕성하게 사회공헌 사업을 펼치는 것과 상반된다.

수년 전부터 관련 법률을 정비해 공익법인 곳간에 쌓인 돈을 제대로 쓰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법안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핵심은 '공익 목적 투자 제도'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공익법인은 공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 기부, 융자, 투자 등 가용한 금융수단을 활용해 공익사업에 돈이 흐르도록 제도를 설계하자는 것이 요체다.

고향사랑기부제 역시 법인은 기부할 수 없도록 막혀 있다. 법인 기부자와 지자체 간 유착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개인 기부만으로는 망가지는 지역을 살리는 데 역부족이니 영리법인이 어렵다면 비영리법인은 기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통계수치에 나타나 있듯, 지역사회로 유입되는 기부금 비중(9.0%)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공시집단과 상출집단은 공개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상장기업이다. 국민이 투자한 돈을 재원으로 수익을 창출했다면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이 곧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가 조사(2021년)한 바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이 정신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블리주의 대척점에 '말라드'가 있다.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는 병들고 부패한 귀족이라는 뜻으로, 특권만 누리고 책임은 회피하는 사회 지도층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말라드가 스스로 오블리주로 바뀔 가능성은 영(zero)에 가깝다. 정부가 할 일은 이들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면 해법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문진수 시민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노블레스오블리주#노블레스말라드#법인기부#고향사랑기부제#공시대상기업집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