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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예견된 비극이었지만, 추모 1주기를 앞둔 현재까지 방관과 무관심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습니다. 12월 1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에 두 번 연재되는 여덟 편의 추모 시를 통해 책임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반성과 처벌을 요구하고, 유가족들에게는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덟 편의 시는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추모 시집 <보고 싶다는 말>(안온북스)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벌어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 철책에 1일 오전 고인을 추모하는 꽃과 음식이 놓여 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벌어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 철책에 1일 오전 고인을 추모하는 꽃과 음식이 놓여 있다. ⓒ 소중한

족보 있는 슬픔
-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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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무안이다. 족보는 아파트 분리 배출일에 읽다만 잡지와 묶어버렸다. 무안의 하늘은 높다. 서쪽에 바다가 있고 더 서쪽에 섬들이 있다. 적갈색 땅에서 잘 자라나는 것이 많다. 이후로 무안에 가지 않는다. 그 위를 선회하는 새들도 있을 것이었다. 족보는 아무래도 구한말에 사서 들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부가 문맹일 리 없다. 그는 평생 몸으로 일하다 심근경색으로 떠나 선산에 묻혔다. 몇 해 전 산이 팔리자 부는 그의 유골을 수습해 목포 앞바다에 뿌려버렸다고 말했다. 그날 부는 경기 남부 한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거기에도 서쪽은 바다이며 더 서쪽에는 섬이 있는데, 나는 수납 창구 기둥에 달린 텔레비전으로 조부와 부와 나의 본적을 보았다. 세상엔 슬프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천지다. 하늘과 땅 사이가 이렇게나 멀었다니, 안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한 일로 슬퍼할 틈이 없다. 관절 수술 후유증으로 부는 시름시름 앓았다. 아픔과 슬픔은 어떻게 다른가. 나는 호적등본을 볼 때마다 그것을 착각하거나 오해했다. 병실에 부를 남겨두고 돌아와 며칠을 안부 전화 없이 그저 고향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부와 조부를, 그들의 본적과 그 본적의 서쪽에 있을 섬이나 갯벌이나 황토지 같은 것들을, 하늘과 땅 사이를 곰곰 생각했다. 딱 그만큼 거대하고 복잡한 슬픔이 그제야 찾아와 새 족보를 내밀었다. 나는 난생처음 족보라 하는 걸 공손히 펼쳤다. 모르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제 그것들을 배워야 할 참이었다.

시인_서효인: 2006년 <시인세계>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여수>,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거기에는 없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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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 보고 싶다는 말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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