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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태찌개를 끓여 먹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시장에서 5천 원에 사온 동태 두마리로 찌개를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글을 읽는 동안 ' 동태가 참 싸다'와 엄마가 끓여주던 동태찌개가 생각났다. 기사에서 남자 주인공은 두 토막만 먹어도 배부르다고 했지만, 나는 한 마리를 다 먹고도 모자랄 정도였다. 입 짧은 내가 잘 먹는 걸 보면 엄마는 꼬리 한토막만 남기고 다 양보하셨는데 그걸 주는 대로 다 먹어 치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양심도 없다. 엄마가 끓여준 동태찌개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끓여달라고 할 수 없었다.
나는 자취를 한다. 이제 누군가에게 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먹고 싶으면 내가 끓여야 한다. 그래서 외출한 김에 시장으로 향했다. 생선류 같은 품목을 작정하고 시장에 가는 일은 여전히 조금 낯설다. 뭘 사야 할지보다 어떻게 사야 할지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괜히 비싸게 사는 건 아닌지, 맛은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걸 고르는지 눈이 먼저 바빠진다.
생선 가게 앞에 동태가 잔뜩 쌓여 있었다. 동태 앞에서 '내가 저걸 끓일 수 있을까' 하며 잠시 망설이는 사이 주인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가와 묻는다. " 한 마리 드릴까요?" "혹시 손질도 해주시나요?" 주인은 " 그럼요"라고 답한다. "한 마리 얼마예요?"라고 묻자 4천 원, 5천 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보기엔 비슷한데 크기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평소 동태 가격이 얼마였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4천 원이면 정말 저렴한 거 같아 한 마리를 샀다. 묵직했다. 동태를 샀다는 사실에 조금 들떴다. 왠지 장 보는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홍합도 한 바구니 샀다. 시장을 걸으며 눈에 띄는 밤도 샀고 과일도 몇 개 골랐다. 양손이 점점 무거워졌다. 필요한 것만 산 게 아니라 정말 '장을 본' 느낌이었다.
시장을 훑으며 쭈욱 걸어 나오는데 한 가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그 틈을 비집고 보니 그곳에는 동태 위에 세워둔 박스에 매직으로 '러시아산 2천5백 원'이라고 쓰여있었다. 크기도 내 것보다 더 크고 싱싱해 보였다.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 기사 내용처럼 두 마리 오천 원이 맞았다. 이번에도 장보기 실패인가. 아님, 내가 산건 국산일까. 역시 시장은 조금 많이 둘러봐야 재미가 있다.
집에 돌아와 늘 그렇듯 엄마와 오늘의 통화를 했다. "엄마, 요즘 동태가 싸. 내가 동태 한 마리를 샀는데 4천 원이야. 그런데 조금 더 가니까 거긴 2500원 하는 거 있지. 크기도 더 크고 싱싱한 거 같은데" 엄마는 잠시 웃더니 "응 네가 산 게 더 맛있는 걸 거야. 생선은 비싼 게 더 맛있어" 늘 그렇듯 단순하지만 단단한 말씀을 하셨다.
장보기 실패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는데 엄마 말씀에 그냥 위로가 되었다. 엄마는 생선이나 과일처럼 신선한 건 비싼 만큼 맛있다고 했다. 비슷해 보여도 맛은 다를 거라고 했다. 싸게 사는 것보다 제대로 고르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엄마는 동태찌개에 고추장을 풀고 끓이면 맛있다고 했다. 나는 요즘 매운 걸 잘 못 먹는다. 그래서 된장을 풀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그래, 된장도 맛있지. 옅게 풀어"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요리를 어떻게 하느냐보다 내 상태를 먼저 생각해 주는 것만 같았다.

▲동태째개된장,무,파 3가지만 넣고 끓인 동태찌개. 구수하고 시원하다. ⓒ 전미경
생선가게 주인이 토막 내준 동태를 손질하면서 이제 나는 누군가가 해주는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 밥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나도 이젠 두 토막이면 충분할 거 같아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냄비에 된장을 조금 풀고, 무를 넣고, 동태를 올렸다. 마무리로 대파대신 산 쪽파를 손으로 뚝뚝 잘라 넣었다. 이 정도면 있는 재료는 다 들어갔다. 국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들으며 꽤 괜찮은 저녁 한 끼가 될 것 같았다.
문득 식당에서 먹는 동태찌개가 떠올랐다. 식당은 2인분 이상이 돼야 주문이 가능하다. 양도, 간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대신 가격만 올라간다. 가끔 동태찌개가 생각날 때도 혼자서는 늘 물러서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내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재료도 소박하게 4천 원짜리 동태찌개를 끓였다. 구수한 냄새는 저녁 준비하는 손을 더 바쁘게 만들었다.
찌개는 엄마가 끓여준 것만큼 맛있지 않았다. 그래도 먹을 만했다. 무엇보다 내가 끓였다는 사실이 컸다. 한 숟갈 떠먹으니 속이 풀리는 맛이었다. 동태 살은 뽀얗고 부드럽고 국물은 시원했다. 엄마 말씀대로 된장을 옅게 풀은 게 핵심이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시장에서 본 2500원짜리 동태 생각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이미 나는 이 4천 원짜리 동태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쉽게 허락되지 않는 ' 혼자 한 그릇'을 당당하게 누리고 있으니까.
밥을 먹고 나니 엄마 생각이 다시 났다. 엄마는 저녁으로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궁금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이웃집이 가져온 칼국수를 먹었다고 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오늘 내가 끓인 동태찌개는 밥을 짓는 역할이, 삶의 무게가, 조금씩 옮겨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엄마에게 동태찌개를 끓여 줄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엄마가 끓여주는 동태를 맛보려고 할지 모른다. 여전히 양심도 없이.
사는 게 늘 완벽한 일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시장에서 조금 더 비싸게 주고산 동태 한 마리 4천 원. 그 안에는 시장의 풍경도, 물가의 감각도, 엄마의 말씀도, 지금의 나도 들어 있다. 나는 오늘도 완벽하지 않은 찌개를 끓여 먹으며 내 밥과 내 삶을 스스로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