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 산안마을은 양계농장으로 40년 째 닭을 키워서 달걀을 판매한다. ⓒ 화성시민신문
한국의 겨울은 매년 그렇듯 수년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이하 조류독감)의 위험과 함께 찾아옵니다. 5년 전인 2020년 12월에도 주변 농장이 조류독감에 감염됐습니다. 우리 농장은 닭들이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정부로부터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항의했고, 거부했으며, 몇 달 동안 꿋꿋이 버텼습니다. 시민단체, 수의사, 우리 달걀을 드셨던 많은 시민의 지지에 힘입어 정부에 법 개정을 촉구했고, 오랜 논의 끝에 마침내 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방적 살처분 구역은 3km에서 500m로 축소됐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 농장의 닭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희생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희생당했습니다. 닭들 전부는 무엇을 위해 죽었을까요.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닭들과 사업, 고객을 잃었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악몽으로부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시 일어섰습니다. 우리는 사업을 재건했고, 더 강하고 훌륭하게 키워 나갔습니다. 2년 반 동안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모든 것이 멈췄던 그 시점에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더욱 좋아지기만 했습니다.
다시 찾아온 겨울, 다시 커진 불안

▲필자는 산안마을에서 닭을 키우는 농부로 스위스에서 살다 결혼 후 한국에서 살고 있다. ⓒ 화성시민신문
몇 달 전, 한국에 겨울이 찾아오면서 조류독감의 위험도 함께 다가왔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농장의 닭들은 감염되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매년 겨울 우리는 닭들의 감염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예방 조치를 취합니다.
신발과 옷, 장갑과 마스크를 갈아입고, 바닥과 도구 등 모든 것을 매일 소독했습니다. 우리의 이런 노력과는 별개로 날이 갈수록 위협은 커져만 갔습니다. 주변 농장에서 감염돼 가축을 살처분해야 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몇 주가 흘렀지만 위험이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듯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그 순간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주변 농장들이 조류독감에 거의 모두 감염됐고, 우리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모두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머릿속은 온통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다모클레스의 검'이 우리 농장 위에 매달려 있었고, 우리는 그 검이 마침내 떨어져 우리를 무너뜨릴까 두려워했습니다. 며칠이고 우리는 오직 이 걱정에만 사로잡혀 다른 것은 신경 쓸 수 없었습니다. 아프거나 죽은 닭을 발견할 때마다 종말의 시작일까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한 주 내내 사랑하는 닭들을 돌보느라 힘들게 일하고 걱정하느라 지친 저는 하루 쉬기로 하고 도시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기분 전환도 되고 하루쯤은 마음도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피곤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 드디어 내 삶에 만족감을 느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닭들을 돌보는 일, 우프 자원봉사자들, 농장 소셜미디어를 관리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시골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이 모든 것이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알았더라면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농장 동료의 부름에 남편과 저는 잠에서 깼습니다. 닭장 하나에서 죽거나 병든 닭들을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모클레스의 검이 드디어 떨어졌습니다. 남편은 서둘러 일어나 농장의 다른 직원들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했습니다. 농장에 없었던 사람들은 모두 출입이 금지됐고, 저는 집에 남아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조류독감 감염이 의심될 경우 의심 신고부터 실제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까지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양성 판정이었습니다. 정말 조류독감이었습니다. 이제 끝이었습니다. 그 후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닭 네 마리만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었지만 이 바이러스는 워낙 강력해 닭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 곧 모두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법은 닭들 중 한 마리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아프든 아니든 모두 살처분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닭들을 지켜줄 수도 없었고,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할 수도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멈추지 않는 시간, 무너진 마음

▲산안마을 농장에서 키우는 닭들 ⓒ 화성시민신문
하루 종일, 그리고 다음 날까지 살처분 전담팀이 와서 닭들을 도살했고 남편은 그들을 돕기 위해 현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저는 공포와 불신, 혐오, 고통, 충격, 무력감 등 온갖 감정에 휩싸여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악몽일 것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깨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추악한 현실, 이 역겨운 세상에 눈을 뜨고 싶지 않았습니다. 꿈속에서는 이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꿈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행복했고 닭들은 모두 살아 있고 건강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부서진 마음조차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무자비한 태양마저도 싫었습니다. 심장이 멎었던 날부터 흘러간 시간도 싫었습니다. 농장 동료들과 긴급 회의가 열려 참석했지만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 몸은 마치 움직이는 기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농장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는 더 이상 내일이 없는 것 같았고 끝나지 않을 악몽에 갇힌 기분이었습니다.
이후로 시간은 흐릿하게 흘러갑니다. 저는 무감각해졌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무기력에 빠져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바라더라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 일, 이 장소, 이 나라, 어쩌면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제 소중한 사랑들을 죽인 이 인간 사회에 깊은 혐오와 상처를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싫었습니다. 새가 되어 날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제게 남은 유일한 버팀목은 남편뿐이었습니다.
닭들은 나의 전부였다
동물들은 제 전부였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순수한 영혼을 받을 자격이 없고 언제나 그들을 실망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기와 달걀이라는 소비재로만 여기는 이 닭들에게 저는 이름을 붙여주고 사랑과 애정으로 돌봤습니다. 그들은 아침의 기쁨이었고, 일할 동기였으며, 이 농장에서 일하는 이유이자 지켜야 할 보물이었습니다. 어린 닭이든 늙은 닭이든, 암탉이든 수탉이든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소중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이제 제 마음의 절반은 텅 비고 죽은 것 같습니다. 제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서 고통받지 않는 것입니다. 부디 죽음이 그들에게 삶보다 더 자비롭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처받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더라도 책임감은 우리에게 답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 고객, 파트너, 가족, 친구들에게 이 나쁜 소식을 알렸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계획해야 했습니다. 회의가 이어졌고 더 많은 생각과 토론, 계획이 계속됐습니다.
마음은 무겁고 가슴은 아팠습니다. 곧 여러 팀이 구성됐습니다. 한 팀은 농장을 다시 시작할 준비를 했습니다. 내년에 새로운 병아리를 맞이하기 위해 청소하고 소독하고 재정비했습니다. 또 다른 팀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농장 개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또 다른 팀은 새로운 사료 공급 시스템 등 농장에 도입하고 싶었던 개선 작업을 맡았습니다. 닭장 안팎으로의 이동을 최소화하고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팀은 지역 및 국가 차원의 조류독감 관리 문제를 규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매년 수많은 가금류 농가가 조류독감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사업을 재개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가들은 감염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비난을 받습니다.
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산안마을 양계장 풍경 ⓒ 화성시민신문
바람, 열악한 소독센터 관리, 전문 인력 이동으로 인한 교차 감염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가축 손실과 사업 실패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농가들은 필요 이상으로 가혹한 비난을 받고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백신이나 새로운 관리 방법을 연구하는 동안 한국은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 세계의 연구 자료를 수집하고 성공적인 방제 방법과 더 나은 시스템에 대한 근거를 모으고 있습니다. 살처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농장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국내에서 어려움을 겪는 다른 농장들의 사례를 모아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법을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양계 농가들의 현실과 노력을 사회와 정부에 알리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청소하고 계획하고 짓고 수리하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분석하며 땀 흘리고 울기도 합니다. 이 모든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매년 수백만 마리씩 조류독감으로 죽어가는 동물들과 우리 닭들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그들의 죽음이 의미 없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모든 고통과 상실이 더 나은 미래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닭들의 기억을 기리고 그들의 이름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제 마음은 산산조각 났고 치유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들의 부당한 죽음과 잘못된 시스템을 규탄함으로써 저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되돌릴 수 없기에 저는 변화를 요구합니다.
세레나 산안마을 농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