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모르고 떠난 마곡사 여행(13일). 눈만 내리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설렘을 가득 싣고 공주 마곡사를 향해 한참을 달리고 나니, 산사(山寺) 일주문이 보인다. 뜻밖에 공사가 한창이다. 일주문 크기가 웅장하다. 세상으로 퍼져나간 마곡사에 깃든 전설의 기세를 보는 듯하다. 필자 역시 마곡사 전설에 홀린 것이 아닌가.

▲마곡사 전경. ⓒ 김병모
마곡사는 충남 공주시 마곡면 태화산 자락에 자리한 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세계문화유산 산지 선원이다. 마곡사는 640년(백제 무왕 41년)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가 중건하고 도선국사가 중수하여 보수해 오면서 오늘에 이른다.
마곡사에 들어서자 중년의 한 신사가 '사랑으로 분노를 이기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라는 법구경 돌탑 위에 돌 하나 더 올려놓고 홀연히 사라진다.
해탈문(解脫門)을 들어서자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 보현보살 동자상이 잔잔한 미소 띤 얼굴로 맞이한다. 한 걸음 더 절간으로 들어서니, 오층석탑(2025년 국보 지정)과 대광보전(大光寶殿)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고려 말 원나라 라마교 영향을 받은 듯, 오층석탑 상층 부문 풍마동(風磨銅) 장식이 이채롭다.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탑이다. 비가 슬금슬금 내리는 데도, 한 아낙네가 아랑곳하지 않고 오층석탑 주변으로 맴돈다.
필자 역시 탑돌이를 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서둘러 대광보전(충청남도 유형문화제 제185호)으로 향했다. 꽃 창살 무늬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예상과 달리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있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잠시 머뭇거리는데 목탁 소리가 멈추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대광보전 '삿자리 짠 앉은뱅이' 전설을 듣고 싶어서 마곡사에 온 것이 아닌가. 조선 후기 거동이 불편한 어느 앉은뱅이가 비로자나 부처님께 100일 기도로 삿자리를 짰다고 한다. 어느 날 100일 기도를 끝낸 앉은뱅이가 법당을 나서는데, 자신도 모르게 걸어 나갔다고 한다.
지금도 그 삿자리가 깔려있는지 궁금해하자, 대광보전을 관리하는 사람이 하얀 카펫을 걷어 올린다. 세월을 가름할 수 없는 낡은 삿자리가 바닥에 깔려있지 않은가. 이 삿자리가 바로 그 삿자리란 말인가. 그 전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을 뿐,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공양(供養) 간에 들러 "꼭" 점심 먹고 가라는 대광보전 관리자분을 뒤로하고, 법당을 나섰다.
생뚱맞은 말이지만, 누구나 한없는 생이 이어지길 바란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다하게 되면, 극락이나 천국으로 혹은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여긴다. 그때가 되면, 극락 혹은 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불교에선, 염라대왕이 사자(死者)에게 묻기를 "그대는 마곡사 대웅보전에 있는 싸리나무 기둥을 보았느냐, 보았으면 그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는고"라고 묻는다고 한다. 싸리나무 기둥을 많이 돌면 돌수록 더욱더 오래 살고, 죽어서 극락으로 가는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이다.
필자 역시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둥' 전설을 익히 들었던 터라, 서둘러 대웅보전으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한 아낙네가 벌써 싸리나무 기둥을 붙잡고 돌고 있지 않은가. 차례를 기다려야 하나, 주저하면서 싸리나무 기둥을 슬쩍 훑어본다.
손때가 묻은 싸리나무 기둥이 반지르르하다. 누구든, 죽기 전에 마곡사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둥을 돌아야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전설이다. 요즘 들어, 마곡사의 전설의 힘에 이끌리어 마곡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주석 김구(1876~1949) 선생 역시 마곡사와 인연을 맺지 않았을까. 1896년 일본 낭인들에 의해 명성왕후가 살해되자, 충격을 받은 김구 선생은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는 인천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탈옥하여 마곡사로 은신해 들어온다. 그 무렵, 김구 선생은 백범당(白凡堂)에 머물면서 조선 독립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휴정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를 즐겨 읊었다고 한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김구 선생도 기왕에 은신처를 찾을 바에야 마곡사 대웅보전 싸리나무 전설을 생각했을까. 광복 후, 그는 상해 임시정부 인사들과 함께 마곡사를 다시 찾았다고 한다. 그는 대광보전의 주련,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를 보고, 더욱 감개무량해 향나무로 기념식수 한다. 세상을 다시 돌아와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다는 말이다. 백범당엔 세월의 흔적에 묻혀 인걸(人傑)은 없고, 향나무에서 묻어 나온 향기만 마곡사를 뒤덮었다.
마곡사의 전설을 찾아 다녀간 인걸이 어디 백범뿐이더냐. 매월당 김시습(1435~1493)도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꼴 보기 싫어,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마곡사로 흘러들어온다. 당대 선비들로부터 신임을 받던 매월당 김시습이 마곡사에 칩거한다는 소식을 접한 세조는 서둘러 마곡사로 향한다. 그 소식을 접한 매월당 김시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매월당은 세조와 마주치기가 싫었던 듯하다.
매월당이 마곡사를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세조는 크게 실망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마곡사 '영산전(靈山殿)' 편액을 써 흔적을 남긴다. 인간의 삶이 햇볕에 노출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노출되면 전설이 된다고 하던가. 세조가 한양 궁으로 돌아갈 땐 어가인 연(輦)을 마곡사에 놓고, 소를 타고 떠났다는 이야기도 전설로 흐른다.
대광보전 앞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우물에 가득하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전란도 비켜 간 충남 공주 태화산 극락정토, 마곡사를 찬찬히 둘러보면 선(禪)의 향기를 느낀다. 절을 끼고 흐르는 물소리도 정겹다. 마곡사의 전설이 계곡으로 흘러갈 때마다 산사(山寺)를 찾는 중생의 발걸음 소리가 야단법석이다. 불국토 마곡사가 겨울 빗물에 시원하게 젖어 들고, 절간 처마로 떨어진 빗물 소리가 목탁 소리로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