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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 365'는 한국·독일을 오가며 아동권을 연구·기고해 온 필자가 일상과 사회 속에서 발견한 아동인권의 문제를 기록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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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profwicks on Unsplash

'아동에게 권리가 있다'는 말에 반감을 가지던 시기를 지났지만, 미성년기 잘못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모 배우의 은퇴 논란은 이 공백을 드러낸다. 30년 전 미성년 시절의 범죄가 재소환되고, 이미 처벌이 종료된 사안을 성인기의 생존권 문제로까지 연결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 사안은 연예계 이슈로만 끝내서는 안된다. 이번 논란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아동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며, 미성년기의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를 생각케 한다.

이 논란은 아동권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왜 한국에서는 미성년기의 잘못이 이렇게까지 영구화 되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올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국 드라마 시리즈 <소년의 시간>에 대한 여러 나라의 반응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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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독일에서 한인들과 글쓰기 모임을 하다가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드라마는 13세 소년 제이미가 같은 학교 여학생을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을 다루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터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건 드라마 자체보다, 한국·영국·독일의 반응이었다. 한국과 영국에서는 청소년 범죄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반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같은 드라마가 이렇게 다른 반응을 낳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풀면 곧바로 이번 논란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 나라의 반응 차이는 "미성년의 잘못을 어떻게 다루는가", " 아동. 청소년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는가"를 보여주고 나아가 사회적 합의 수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국가별 반응 차이를 가르는 핵심 변수: 아동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

영국은 청소년 범죄는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다. 청소년 범죄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서 여긴다. 청소년 범죄와 교정 제도를 사회적 논의의 핵심 영역으로 다뤄왔다. 영국 청소년사법위원회(Youth Justice Board)는 청소년 처우의 원칙을 "재활·교육·사회복귀(Rehabilitation, Education, Reintegration)"로 명시한다.

이것은 아동·청소년을 '미성숙하지만 권리를 가진 시민이며 변화·회복이 가능한 존재'로 이해하는 것과 관련 있다. 그렇기에 <소년의 시간> 같은 작품은 "가해자를 미화한다"는 논쟁보다는 "제도는 적절한가?", "사회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같은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그로 인해 사회적 논쟁은 뜨겁더라도 관심의 초점은 제도 개혁에 있다.

즉 미성년기의 잘못을 '영구적 결함'이 아니라 '사회가 개입해 교정할 영역'으로 본다. 이 점은 30년 전 미성년자 사건을 다시 호출해 성인기 생존권 문제로까지 비화시키는 한국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반면 <소년의 시간>을 둘러싼 독일 반응은 조용했고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는 드라마의 완성도나 소재의 흥미가 아니라, 청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독일의 구조적 인식과 관련이 있다. 독일 청소년사법제는 UN 아동권리협약(UN CRC)의 원칙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재활 중심 제도(Educational Measures)와 형벌보다 책임감 형성을 목표로 하는 교정 구조이다.(Jugendgerichtsgesetz, JGG).

그러니까 독일은 청소년 범죄를 도덕적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사회 전체가 구조적 위기라고 느끼지도 않는다(나는 이미 다른 매체에 기고한 것처럼 '독일 청소년이 무섭지 않은 이유'를 체감한다. 그러니까 한국에서처럼 '중2병'이라거나 '청소년이 가장 무섭다'와 같은 유머조차 회자되지 않는다).

<소년의 시간>과 같은 드라마로 사회적 논쟁이 일어나지도 않고, 청소년 범죄를 둘러싼 감정적 반응도 거의 없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소년의 시간>은 "이미 독일 사회가 알고 있고 합의한 가치"를 반복하는 데 불과하다. 이 '합의'란 무엇인가. 미성년기의 잘못을 성인기까지 끌고 가지 않으며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합의 말이다.

한국: 구조적 결핍을 감정 윤리가 대신하는 사회

이제 다시 이번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에서는 제도에 대한 불신을 감정윤리가 대체한다. 청소년 문제를 다룬 드라마에 뜨거운 반응이 일어나는 것도, 30년 전 미성년 범죄가 오늘날 은퇴 논란으로 이어지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다.

청소년 범죄에 대해 한국 반응은 훨씬 강렬하며 감정 중심적이다. 그것은 학교폭력·집단폭력 문제가 반복되면서 사회적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는 대중적 분노를 증폭시킨다. 우리는 학교폭력을 다루는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속 연진(임지연 분)에게 당한 동은(송혜교 분)에게 감정이입한다.

대중이 느끼는 분노는 드라마를 보며 나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이 사회와 제도가 나를, 내 자녀를 보호하지 못했고 현재도 마찬가지라는 집단적 경험에 기반한다. 그래서 각 개인은 '미성년 가해자'에게 강한 도덕적 단죄를 요구한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논란의 본질은 사과나 은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① 피해자가 충분한 보호·보상·상담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은 "가해자가 고통받아야 피해자가 회복된다"는 생각에 의존하고 ② "소년법은 약하다"는 인식과 청소년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은 곧 대중의 사적 제재, 처벌 욕구로 이어진다. ③ '미성년의 죄는 영구적'이라는 잘못된 사회적 기준으로 이어진다. 가해자가 공인일 때 이 구조는 더욱 강화된다.

해법 역시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비난이 아니라 더 정확한 기준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기준에 의하면 첫째, 아동은 순진무구하고 절대적 선한 존재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 기대가 무너졌을 때, 잘못은 '교정 가능성 있는 실수'가 아닌 '본질적 결함'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둘째, 아동기 시절의 처벌은 '과거의 시간'으로 정리하고, 성인은 성인의 책임으로 평가한다. 셋째, 피해자 회복 중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중이 제도를 신뢰하지 않으면 감정 윤리가 사법을 대신한다.

한국은 1991년에 협약을 비준했으므로 이 원칙을 사회적 합의로 끌어올려야 한다. 결국 아동권의 기준없이 개인에게 분노를 집중시키는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미성년의 잘못을 성인기의 영구적 낙인이 아니라 교정 가능한 과거로 다루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번 논란은 그 전환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홈페이지와 서정은 시민기자의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아동권리#소년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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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 365-아동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서정은 (argon24) 내방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대표, 숭실사이버대학교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 아동인권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등 해외 체류 경험을 아동권과 연결하였다. 아동권리 교육, 연수와 강연, 정책 토론 61348b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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