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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2일은 고국회 세 친구 만남의 날이다. 애초에는 11월 11일 원주에서 만나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락 책인 이창묵 친구가 건강 문제로 만남 일자를 무기한 연기하여 그날을 건너뛰었다. 이제는 두 발로 다시 만나기도 힘든 나이 됐나 보다고 아쉬움 속에 지내던 차, 12월 12일 서울-원주 중간 지대인 신길순 친구가 사는 양평에서 만나잔다. 그 기별이 어찌나 반가운지 나는 연락 받는 즉시 열차 표를 예매한 뒤 그날을 학수고대하며 지냈다.
만날 때마다 친구들은 내가 좋아하는 망개 떡을 한 상자 선물한다든지(이창묵). 당뇨에 좋다는 손수 가꾼 한약재나 재래 시장에서 산 '여주차'나 '돼지 감자차'를 헤어질 때 내 가방에 담아줬다(신길순). 늘그막의 아내 잔소리는 "이제는 빚지지 말라"다. 자칫 갚을 날이 없을 거라고.
이번 만남에 나는 뭘 선물할까 고민하다가 이 가을에 펴낸 나의 신간 <그 고양이는 왜 산으로 갔을까>를 전하기 했다. 그리하여 일찌감치 교보문고에 주문하여 봉투에 담아두고 만날 날을 어린이들이 설날이나 추석 날 기다리듯 동그라미를 쳐 놓은 달력의 날짜를 보며 지냈다.
마침내 12월 12일이 다가왔다. 예매한 열차는 원주 역 발 11: 47분 'ITX 마음' 열차다. 시내 통행은 가능한 택시를 타고 다니라는 가족의 권유도 뿌리친 채, 집 앞 정류장에서 10 : 20분 발 시내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가자 내가 타려는 13번 버스는 막 출발, 꽁무니만 보였다.
다음 차는 10: 40분 8번 버스로 그 버스를 타도 환승 연결만 순조로우면 사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주머니를 뒤지자 버스승차 카드를 집에 두고 왔다. 그래서 내심 잘 됐다는 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서 카드를 챙기고 정류장에 가자 잠시 후 막 버스가 도착, 평소 안면 있는 동네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를 타면 원주 남부 시장 정류장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막 도착한 정류장에서 하차 하려는데 버스 기사가 버스를 정류장 승강장에 바싹 붙이지 않고 차도에 정차하는 바람에 버스 승강대와 정류장 하차 턱과는 1미터 정도 거리가 떴다. 그 순간 나는 차도에 내려 그곳으로 오르려 하지 않고 마치 젊은 날 현역 시절처럼 승강대에서 펄쩍 뛰었다.
그 순간 버스는 훌쩍 떠나고 나는 버스 정류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러자 머리통도 아프고 엉덩이도 조금 아팠다. 하지만 몹시 창피한 나머지 얼른 일어섰다. 한 승객이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묻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면서 "괜찮습니다" 답례를 하고서는 곧장 길 건너편 정류장으로 도망치듯 바삐 갔다.
그곳 정류장에 가서 도착버스 안내판을 보자 원주 역행 34-1 버스는 14분 후에 있었다. 그제야 크게 숨을 내쉬는데 머리통의 통증이 전파됐다. 모자를 벗고 머리통을 쓰다듬자 선혈이 손가락을 적셨다. 스스로 깜짝 놀라 마침 바로 곁의 약국으로 가서 약사에게 응급 처방을 부탁하자 곧장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약방을 나온 뒤 거기서 가장 가까운 한 내과 의원을 찾아갔다. 접수를 보던 간호사는 외상은 거기서 500미터 쯤 떨어진 성형외과로 가라고 했다. 그 순간 시계를 보자 11 : 20분으로 그곳에 가면 11 : 47분 열차를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그날 모임이 취소되거나 아니면 친구들에게 큰 걱정을 끼칠 것 같아 그대로 강행키로 하고, 그대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곧 원주 역에 도착했고, 열차도 정시에 원주 역에 도착하여 지정 좌석에 앉아 양평으로 갔다. '늙으면 어린이가 된다'고 하더니 두 친구도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가듯이 중간 중간 카톡 문자를 보냈다.
이 : 지금 덕소 역 도착. 12: 10 양평 역 도착, 잠시 후 만나요.
신 : 지금 양평 역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음. 모두 모두 웰컴!!!
나 : 양평 역전 외과병원 일아 봐 주시게. 머리를 조금 다쳤네.
신 : 아니 넘어졌나?
나 : 응, 애들처럼 넘어졌네.
이 : 머리를 다쳤다고? 조금 후 보세.
나 : OK.
이런 저런 문자가 오가는 새, 열차는 양평 역에 도착했다. 우리 셋은 반가운 포옹을 나눈 뒤 곧 택시를 타고 양평 병원 응급실로 가서 진료를 받았다. X-ray, MRI CT 촬영 후 판독 결과, 다행히 심한 골절은 아니라면서 5 바늘을 꿰맸단다. 우리는 곧 가까운 밥집으로 가서 즐거운 점심 식사를 했다. 내가 준비해간 책을 꺼내 부인 앞으로 서명을 해 주자 책을 여러 권 펴낸 바 있는 이창묵 동기가 곧장 지갑을 꺼내 책값을 치렀다.
"자네는 이 작품 최종 교정까지 봐 줬는데도 나는 발간 후 가장 먼저 답례로 책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내가 뒤늦은 부끄러운 인사를 하자 그러자 그는 식 웃었다. 친한 문우일수록 책은 꼭 사서 읽어야 한다는 문사들의 기본 예의를 지키려는 신사도였다. 몇 차례 그 돈이 오가다가 결국 그날 점심 값으로 셈해버렸다.
"나도 자네가 좋아하는 망개 떡을 사서 가지고 오다가 양평 역에 도착하자 그만 깜빡하고 자리에 둔 채 후딱 내렸다네."
그러면서 우리 셋은 "흐르는 세월(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양평 병원 응급실 의사가 절대 안정을 하라는 말을 상기 시켰다. 그러자 우리 셋은 다른 때보다 일찍 양평 역에서 세 갈래로 헤어졌다. 곧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날을 학의 목처럼 길게 뽑은 채 기다리면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친구여!

▲세 친구이번 모임에서는 나의 교통사고로 경황이 없어 사진 촬영을 못했다. 위 사진은 2024. 4. 18. 모교 방문 중 은사 조지훈 선생의 <승무> 시비 앞에서 기념 촬영하다. (왼쪽부터 이창묵, 박도, 신길순) ⓒ 박도
그리운 친구여 !
옛 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 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 그리운 친구여!
- 조용필 <친구여>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박도 페북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