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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5 10:48최종 업데이트 25.12.17 10:31

[주장] 닥터나우 방지법, 혁신의 족쇄 아닌 환자의 안전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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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개정안에는 비대면 진료 중개업자(플랫폼)를 의료광고 사전심의 의무화 대상에 포함하는 등 규제 조항도 포함되었다. 플랫폼 업체의 환자 유인·알선, 의료적 판단 개입, 의약품 오남용 조장 등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작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상 운영을 금지하는 약사법 개정안, 일명 '닥터나우 방지법'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일부 산업계와 의원들이 이 법안을 혁신을 가로막는 '제2의 타다 금지법'이자, 기득권 세력인 약사계가 주도하는 밥그릇 싸움이라는 프레임을 걸어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와 국회를 압박한 결과이다.

플랫폼 업체마다 자사 의약품 도매상을 하나씩 운영하는 상황을 잠깐만 상상해 봐도, 환자들이 입게 될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배달의민족이나 카카오택시 논란처럼 도매상을 겸업하는 플랫폼 업체는 경쟁 관계에 있는 약국들을 종속시킬 것이다. 그 피해는 결국 약국을 넘어 환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진정한 혁신은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라, 환자가 '안전하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플랫폼 업체의 도매상 운영과 의약품 유통 교란 행위를 막는 '닥터나우 방지법'은 '혁신의 족쇄'가 아니다. 이는 환자의 안전과 선택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벨트'다. 10년 넘는 논쟁 끝에 비대면 진료가 이제 막 법제화의 첫발을 뗀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물어야 한다. 이 혁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플랫폼의 '도매상 겸업', 무엇이 문제인가? 환자 유인과 선택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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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은 일반 택배 상품이나 음식 배달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공공재다. 만약 플랫폼 업체가 의약품 도매상까지 운영하게 된다면, 환자를 가장 가까운 약국이 아닌 '자사 도매상과 제휴된 특정 약국'으로 유인할 위험이 매우 크다. 결국 환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플랫폼의 이익 구조에 맞춰 설계된 경로를 따라 약을 구매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특정 플랫폼이 자사 도매상을 이용하는 약국에 사실상의 특혜를 제공한 행태가 드러났다. 환자들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만약 이 법안이 좌초된다면, 우후죽순 생겨날 플랫폼 기업들은 저마다 도매상을 차리고 의약품 유통 시장을 장악하려 들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차원을 넘어, 환자의 '의약품 선택권'과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지난 12월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닥터나우 방지법’으로 불리는 약사법 개정안의 본회의 처리를 촉구하는 국회의원들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함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지난 12월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닥터나우 방지법’으로 불리는 약사법 개정안의 본회의 처리를 촉구하는 국회의원들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함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김윤 국회의원 페이스북

'의료 영리화'와 '약물 오남용'의 위험한 질주

'닥터나우 방지법'의 통과가 시급한 또 다른 이유는 '의료 영리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플랫폼 업체는 태생적으로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의약품 도매상을 겸업하는 플랫폼은 약국이 자사 도매상에서 약을 더 많이 구입하게 해야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를 갖는다. 이는 필연적으로 과도한 마케팅과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길 위험을 안고 있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과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기간,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과정에서도 '약 쇼핑'과 같은 부작용이 속출했다. 여기에 플랫폼이 직접 약을 공급하는 유통구조까지 더해진다면, 환자의 건강은 철저히 상업적 이익의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비대면 진료 도입의 진정한 목적은 '산업 육성'이 아니라, '의료 사각지대 해소'와 '환자의 의료접근성 향상'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논의는 온통 '어떻게 하면 플랫폼 업체가 돈을 더 잘 벌 수 있을까'에만 매몰된 듯하다. 이 기형적인 구조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환자의 건강권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사회적 신뢰 없는 혁신은 없다

비대면 진료가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밑거름은 플랫폼의 '상업적 성공'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다. 플랫폼이 진료 중개부터 의약품 유통까지 독점하는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구조를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환자가 플랫폼을 믿고 자신의 건강을 맡길 수 없다면, 그 어떤 기술적 혁신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닥터나우 방지법'은 이미 소관 상임위와 법사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이다. 그럼에도 산업계의 반발과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본회의 상정이 지연되고 있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국회는 '혁신 저해'라는 산업계의 과도한 프레임 씌우기에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국회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환자 중심의 비대면 진료 환경 조성을 위해 결단해야 한다. 혁신은 결코 환자의 안전보다 앞설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본 시민기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입니다.


#닥터나우방지법#약사법개정안#비대면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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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한국백혈병혈액암환우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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