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갑작스럽게 세종보 천막 농성장 주변 생물들이 술렁였다. 강변에 내려앉아 있던 작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수면 위에서 휴식하던 기러기 무리가 동시에 방향을 틀었다. 평소라면 느긋했을 개체들이 집단적으로 경계 태세에 들어 간 것이다.
야생에서 이런 반응을 자주 잡했다. 집단적인 경계 행동은 대개 하늘에서 시작된다. 포식자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먹이사슬의 아래에 있는 생물들은 가장 먼저 몸으로 반응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유다.
역시 상공에는 흰꼬리수리 성조 두 마리가 비행을 하고 있었다. 흰꼬리수리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겨울철 한반도를 찾는 대표적인 대형 맹금류다. 주로 11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 도래하며, 큰 강과 하구, 호수, 철새 도래지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몸길이 약 80~90cm, 날개를 펼치면 2m를 훌쩍 넘는다. 어류를 주요 먹이로 삼지만, 물새와 사체까지 폭넓게 이용하는 위협적인 포식자이기도 하다.
두 마리의 흰꼬리수리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특정 구역을 반복적으로 선회했다. 마치 에어쇼를 하는 듯한 선회 비행은 시선을 끌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단순 이동 비행이 아닌 것처럽 보였다. 고도를 낮췄다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며 수면과 갈대숲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맹금류가 먹이를 탐색할 때 보이는 행동이다. 흰꼬리수리는 단독으로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지만 협동으로 사냥을 하는 모습이었다.

▲세종보 농성장에서 비행하는 흰꼬리수리 ⓒ 임도훈
잠시 뒤 두 개체가 갈대숲 인근으로 급강하해 올라오지 않았다. 정확한 포획 장면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착지 이후 다시 이륙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흰꼬리수리가 먹이를 확보했거나 최소한 먹잇감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실제로 이 종은 먹이를 잡은 뒤 물가나 갈대 인접 지역에서 짧은 시간 동안 섭식한 후 이동하는 행동이 자주 관찰된다. 까치나 까마귀, 또다른 맹금류 등의 방해를 받는 일이 많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농성장을 지키던 활동가들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이 장면을 지켜봤다.

▲흰꼬리수리의 비행 모습 ⓒ 흰꼬리수리
세종보를 둘러싼 논쟁의 한복판, 천막과 현수막 위로 멸종위기 맹금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날고 사냥하고, 이를 피하는 비행이 있다. 인간의 정책과 갈등, 주장과 반박이 교차하는 공간 위에 전혀 다른 자연의 시간의 층위가 겹쳐진 순간이다.
세종보와 금강에서 흰꼬리수리는 매년 겨울철 월동한다. 겨울철 세종보 인근에서 흰꼬리수리와 참수리, 큰말똥가리 등 상위 포식자의 출현이 간헐적으로 확인돼 왔다. 특히 수문 개방 이후에는 모래톱과 얕은 수역이 드러나면서 어류와 수서곤충, 수변 조류의 이용이 늘고 있고, 흰꼬리수리에게 안적정인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상위포식자인 맹금류의 출현은 해당 지역의 먹이그물의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어류가 있어야 수조류가 머물고, 수조류와 어류가 있어야 맹금류가 이용한다. 하나라도 끊기면 최상위 포식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세종보 수문이 닫혀 있던 시기, 이 일대는 유속이 느리고 수위가 고정된 인공 수역에 가까웠다. 흐름이 사라지면 모래톱은 줄어들고, 산란처와 은신처가 함께 사라진다. 이는 곧 어류의 종수와 개체수 감소로 이어지고, 먹이그물과 피라미드는 단순해진다. 상위 포식자가 머물 공간 역시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수문 개방 이후 강은 다시 복잡한 표정을 되찾았다. 계절에 따라 수위가 변하고, 모래톱과 얕은 여울이 드러났다 사라진다. 이런 변화는 어류와 저서생물, 수변 조류에게 다양한 서식 조건을 제공한다. 흰꼬리수리의 출현은 이러한 변화가 최상위 포식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세종보 천막농성장은 단순한 항의의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강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모니터링 거점이 되고 있다. 하루에도 때에 따라 새들의 위치와 행동이 변하고, 활동가들은 이런 변화를 몸으로 기억한다.
흰꼬리수리의 체류는 오래가지 않았다. 짧은 섭식 이후 두 마리는 다시 고도를 높여 하늘로 사라졌다. 잠시 흩어졌던 기러기 무리는 다시 수면 위로 내려앉았고, 강변은 다시 일상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방금 전의 장면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흰꼬리수리는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날아와 머물고, 먹이를 찾고, 다시 떠났다. 하지만 행동으로 보 개방을 요구하지도, 복원을 해야하는 몸짓과 날갯짓으로 느껴져고, 그 몸짓을 이행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단순한 행동이 세종보를 둘러싼 논쟁 한가운데에서 가장 분명한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흰꼬리수리는 사람이 만든 어떤 비행보다 조용했고 아름답고 우아했다. 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흰꼬리수리는 이렇게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강은 흘러야 하고, 흐를 때 가장 많은 생명이 돌아온다. 나도 그 생명 중에 하나라고.
▲비행하는 흰꼬리수리의 모습
두마리의 선회비행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