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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4 11:44최종 업데이트 25.12.14 11:44

"천년의 역사 가진 와당은 조상의 숨결 담긴 중요한 유산"

[인터뷰] 와당이 가진 매력 세상에 알리고 싶은 김기현 시인

 김기현 시인은 와당박물관을 누구나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다.
김기현 시인은 와당박물관을 누구나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다. ⓒ 방관식

"별 쓸모없이 오래된 물건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년의 역사를 가진 와당은 우리 조상의 숨결이 담긴 중요한 유산입니다. 각박한 세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게 후세에 물려주고 싶은 것이 인생 노년의 욕심입니다."

와당 이야기가 나오자 80대 중반 노 시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징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5대손(방손)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김기현(86) 시인은 사는 곳도 특별하다.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서산경주김씨고택(정순황후생가)이 바로 그의 집이다.

 와당박물관과 수장고에는 고려시대를 비롯한 다양한 시기의 작품들이 있다.
와당박물관과 수장고에는 고려시대를 비롯한 다양한 시기의 작품들이 있다. ⓒ 방관식

60대였던 지난 2000년 고향으로 돌아온 김 시인은 지인의 소개로 지붕에 기와를 입혀 내려온 끝을 마감하는 건축재인 와당과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수장고에도 제법 많은 와당을 보유한 어엿한 수집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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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문화유산을 혼자 보는 게 아까웠던 김 시인은 지난 2010년 고택 한편에 전시실을 만들고, 박물관으로 조성하기 위해 관계기관에 신청했지만, 현실적인 제약에 막혀 아쉽게도 개인박물관으로 명맥을 유지 중이다.

이 무렵 고택 음악회 등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제법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은 김 시인의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활동력은 떨어졌고, 와당 같은 옛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세상의 세태도 아쉬웠다.

그렇다고 김 시인이 모든 꿈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시와 수필 등에서 꾸준히 고택과 와당을 등장시키며 자신의 역할이 필요한 때를 기다렸고, 결국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이 국내로 돌아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탁본 체험을 위해 준비한 와당.
탁본 체험을 위해 준비한 와당. ⓒ 방관식

"10년 전 조선 양반 생활상 연구를 위해 일본 대학교수 15명이 방문했습니다. 이때 과거 세한도 반환에 큰 역할을 했던 후지츠카 치카시 교수의 아들과 연락이 됐고, 이 인연으로 많은 김정희 선생의 자료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후손으로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람이 큰 일이었습니다"

고향인 서산에 박물관이나 문학관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김기현 시인은 와당 박물관의 문을 다시 활짝 열 심산이다. 이제는 정식박물관으로 만들겠다는 욕심도 버렸다. 거창한 이름 대신 어린아이부터 누구나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탓이다. 노 시인의 소박한 바람이자 끈기 있는 욕심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청뉴스라인에도 실립니다.


#와당박물관#김기현시인#서산경주김씨고택#추사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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