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태안군 가세로 군수가 지난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태안군의회의 예산 삭감의 부당성을 군민 앞에 호소하고 있다. ⓒ 태안군
충남 태안군의회가 2026년도 태안군 본예산 심의 과정에서 19개 사업, 12억 원이 넘는 예산을 삭감한 가운데, 주요 삭감 항목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태안소식지 발행 예산의 '3개월 부분 승인', 설날장사씨름대회 개최 지원 예산 전액 삭감, 신년음악회·기획공연·군립합창단 운영비 전액 삭감 등은 군정의 정상적 운영과 군민의 알 권리·문화 향유권을 동시에 훼손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가세로 태안군수는 지난 12일 군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예산 삭감은 재정 건전성이나 타당성에 근거한 심의가 아니라, 감정적 대립과 정치적 셈법에 따른 '군정 발목잡기'"라며 태안군의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태안군의회는 2026년도 본예산 심의에서 태안소식지 발행 예산을 1년치 중 3개월분만 승인했다. 겉으로는 "시범 운영 후 추가 반영 가능"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는 사실상 전액 삭감과 다름없는 결정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제는 태안군의회가 스스로 통과시킨 '태안군 소식지 발행 조례'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졸속 심의를 했다는 점이다. 해당 조례에 따르면 태안소식지는 편집자문위원회의 심의·자문을 거쳐 발행하도록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안군의회는 편집자문위원 회의 참석 수당 960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여기에 더해 군민 참여 확대를 위한 외부 기고글 보상금 360만 원 역시 전액 삭감했다.
결과적으로 "3개월간 잘 발행해 보라"는 태안군의회 논리는 편집위원회도 열 수 없고, 군민 기고도 받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자가당착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행정적으로는 조례 위반 상태에서 발행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으로, 공무원들에게 위법을 강요하는 것이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가 군수는 이에 대해 "34년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발행돼 온 태안소식지를 아무런 명확한 사유 없이 3개월만 허용하겠다는 것은 군민의 알 권리를 사실상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라며 "칼자루를 쥔 쪽은 집행부가 아니라 피해를 보는 군민들"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문화적 볼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태안군의회가 2026년도 태안군 예산안 가운데 삭감한 항목별 예산 ⓒ 태안군
논란의 중심에는 2026년 설날장사씨름대회 개최 지원 예산 4억 7050만 원 전액 삭감이 있다. 이 대회는 태안군청씨름단의 성과를 바탕으로 2024년부터 연속 유치에 성공한 전국 최고 수준의 명절 스포츠 이벤트로, KBS를 통한 5~6일간의 전국 생중계와 함께 막대한 홍보 효과와 지역경제 파급 효과를 가져온 행사다.
그럼에도 태안군의회는 "연속 개최에 따른 피로도", "효과성 저하", "사전 보고 절차 미흡" 등을 이유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이에 대해 가 군수는 "사전 보고는 충분히 이뤄졌고, 예산 심의 과정에서 수차례 당위성을 설명했다"며 "이미 타 지자체 예산도 확정된 상황에서 개최지 변경이 불가능한 대회를 두 달 앞두고 무산시키는 결정은 태안군의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회 취소 시 대한씨름협회와 KBS와의 계약 문제, 위약금 발생 가능성, 공영방송 편성 차질 등 후폭풍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가 군수는 "씨름협회 회장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와서 걱정하고 있다"며 "군의회는 모든 사정을 알면서도 삭감을 강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안으로 군의회가 원포인트 회의를 열어 예산을 복원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태안군의회는 이와 함께 신년음악회, 상반기 기획공연 3건, 군립합창단 운영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공연의 형식이나 운영 방식에 대한 개선 요구가 아닌, 대안 없는 전면 삭감이라는 점에서 "정상적인 예산 심의라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가 군수는 "군립합창단의 존재 목적은 흥행이 아니라 군민 정서 함양과 지역 문화예술 진흥"이라며 "예산 전액 삭감은 사실상 합창단 해체를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문화예술 인프라가 열악한 농어촌 지역에서 공공 문화예술마저 사라질 경우 태안은 '문화적 볼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 포인트 심의로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다"
기자 질의응답에서 가 군수는 태안군의회의 '소통 부재'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직원들이 수차례 찾아가 설명했고, 군수로서 직접 전화하고 만나 설득까지 했다"며 "소통 플러스 알파까지 했는데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소통이 없었다는 식의 주장은 책임 회피"라고 일축했다.
또한 "씨름대회, 음악회, 소식지처럼 군민과 직접 만나는 사업만 집중적으로 잘려 나간 점은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표적 예산 삭감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가 군수는 "기자회견은 싸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군민께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아직 기회는 있다. 원포인트 심의로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예산 삭감 논란을 넘어, 지방의회의 예산 심의권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군민의 알 권리와 문화 향유권을 침해할 수 있는지, 정치적 판단이 행정 안정성을 흔들어도 되는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은 이제 태안군의회로 넘어갔다. 군민의 삶과 직결된 예산을 정치적 셈법이 아닌 상식과 책임의 기준으로 다시 판단할 것인지, 아니면 갈등과 혼란을 방치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