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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면허증 사진은 안 됩니다."
"규격이 달라서 안 됩니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경찰서를 두 번이나 갔지만 헛걸음질 했다. 그동안 면허증을 신분증처럼 사용해 왔는데, 올해 그 면허가 만료된다니 '운전도 안 하는데 굳이 갱신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2만 원이나 하는 사진 비용 때문이다.

▲11월 중순 도로교통공단에서 운전면허를 갱신하라는 3번째 알림을 받았다. ⓒ nihthu on Unsplash
한번 갱신할 때마다 '새로운 사진'을 요구하니 앞으로 10년마다 2만 원씩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갱신 수수료 1만 원까지 합하면 3만 원이다. 면허증 사진 외에는 쓸 일이 없으니 불필요한 지출처럼 느껴졌다. 11월 중순 도로교통공단에서 운전면허를 갱신하라는 3번째 알림을 받자 슬슬 반납까지 고민하게 됐다.
'그래, 어차피 운전은 안 할 거고 신분증은 주민등록증으로 하자. 주민등록증이 오래되긴 했어도 사용엔 문제없을 거고, 새로 발급받는다 해도 운전면허증 발급 비용보다는 저렴할 테니 그렇게 하자'라고 맘먹고 있던 어느 날,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코너에서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운전면허증 갱신 사진, 집에서 셀카로 찍어 온라인 접수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쉬운 방법을 두고 경찰서를 두 번이나 가다니... 그것도 30분 거리를 걸어서. 역시 정보가 중요하다.
기사에 나온 대로 그대로 따라 했다. 가능한 흰 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무늬가 조금 보여 배경만 흰색으로 보정했다. 그리고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갱신 메뉴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일단 로그인부터 했다. 그제야 갱신 메뉴가 나타났다.
순서에 따라 갱신 절차를 진행하는데 사진 단계에서 계속 문제가 발생했다. 사진을 업로드할 때마다 '사진 규격이 맞지 않습니다'라는 오류 메시지가 떴다. 여러 번 다시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배경 보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원인은 사진 크기였다. 기사에는 사진을 3.5 * 4.5 픽셀로 조정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그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 몆 시간째 사진과 씨름하다 보니 사진비 2만 원이 뭐라고 이 고생을 하나 싶었고, 차라리 사진관에 가서 그냥 찍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결국 용기를 내어 기사를 쓴 전명원 기자에게 사진 픽셀 조정 방법을 묻는 쪽지를 보냈다. 놀랍게도 빠르고 친절한 답장이 도착했다.
<전명원 기자의 답장>
1. 사진 찍기
2. pc로 다운받기
3. 다운받은 사진을 열면 상단에 '편집' -삭제 - 인쇄' 등등의 문구 혹은 이모티콘이 보입니다.
4. 그중 제일 오른쪽에 있는 '점 세개짜리' 메뉴를 눌러요
5. 한 번만 클릭하면 여러 메뉴가 뜹니다.
6. 그중 '이미지 크기조정'을 누릅니다.
7. 거기에서 '픽셀'을 선택한 후 숫자를 넣습니다.
8. 면허증은 가로세로 각 350과 450이었어요. 가로만 350 맞추면 세로는 그에 따라 비율대로 숫자가 바뀌는 데 450이 좀 넘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대로 진행하셔도 됩니다.
9. 저장하신 후 신청 화면에서 넣어보세요.
이 정도면 기사 뒷부록으로 실어도 될 만큼 상세한 설명이었다. 혹시 나처럼 휴대폰에서 PC로 사진 옮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덧붙이자면, 나는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은 뒤 '나에게 카톡'을 보내고 PC 카카오톡에서 사진을 내려받았다. 그렇게 다시 시도했다. 혹시 몰라 사진도 새로 찍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어깨선은 수평을 맞추고, 얼굴이 충분히 나오도록 했다.
하지만 '사진 메뉴'에서는 전명원 기자의 설명대로 350 * 450 규격이 정확히 맞지 않았다. 한쪽만 맞아도 사진 업로드는 가능했지만, 갱신 안내문에는 온라인 사진 업로드 시 규격이 맞지 않으면 추후 반려될 수 있으며 접수비 1만 원은 환불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 좀 더 신중한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증명사진 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앱에서는 3.5 * 4.5 규격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고, 사진관처럼 2매 이상 출력도 가능했다. 프린터만 있다면 직접 인화도 할 수 있는 앱이다. 나는 셀카로 찍은 사진 한 장을 증명사진 앱을 통해 픽셀 기준으로 정확히 350 * 450으로 조정해 사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온라인 접수 페이지를 열었다. 잠시 로딩이 이어졌고, 곧 화면에 '사진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아, 그 순간의 기쁨이란... 마지막 단계에서 '면허 갱신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는데 괜히 혼자 웃음이 났다. 사진값 2만 원아끼겠다고 처음 갱신 안내를 받았던 4월부터 11월까지 버티며 고군분투한 셈이다.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참 별일이다. 아니, 어쩌면 별일 아닌 일에 애를 쓴 것 같기도 하다. 운전도 하지 않으면서 면허증을 갱신하고, 사진값이 아까워 반납을 고민하고, 급기야 시민기자에게 쪽지까지 보내며 해결한 과정이라니. 이 작은 소동을 겪으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삶에서 '나를 증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고와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을.
아마도 살아가며 겪는 크고 작은 번거로움의 상당수가, 결국은 '나를 증명하는 절차'를 통과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은 아닐까. 신분을 확인하고, 자격을 증명하고,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때로는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심지어 감정까지 소모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겪고 나면 늘 비슷한 깨달음이 따라온다. 생각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었고, 막상 해내고 나면 별거 없이 간단했다는 사실. 그래도 그런 과정을 통과한 뒤 느끼는 후련함은 결국 스스로를 향한 조용한 인정의 표시인지 모른다.
그 여운을 안고 운전면허 수령 예정일인 12월 17일만 기다리고 있는데 예정보다 훨씬 빠른 날짜인 11일에 '운전면허증 수령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늘 그렇듯 삶은 예상 밖의 순간을 슬쩍 끼워 넣는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는 평소보다 민원인이 조금 많았다. 그중에는 갱신을 미루다 과태료 안내를 받는 듯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지난 몇 달간 나 역시 미루기의 달인처럼 버티고 버텼던 시간이 떠올라 쓴웃음이 났다.
나는 기존 면허증을 반납하고, 마침내 새로운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면허증에는 셀카로 담은 지금의 내가 있다. 사진 속에는 현재의 나를 기록하겠다는 작은 의지가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1996년 처음 면허를 따고 2025년의 갱신을 또 해냈다. 오랜 시간 흘러도 여전히 이어지는 이 절차를 통과하며 또 한 번 삶의 한 페이지를 넘겼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갱신'의 순간을 맞이한다. 면허증 갱신, 서류 제출, 건강검진, 통장 정리, 오래된 물건 버리기... 사소하고 귀찮은 일들이지만 그 모든 과정이 결국은 '지금의 나'를 확인하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한 일종의 점검일지 모른다.
이번 면허 갱신은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나에게는 아주 작은 '업데이트'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그안에서 조금은 더 성실하게 나를 챙기게 되었다는 기분도 얻었다. 그리고 삶은 결국 이런 작은 순간들의 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반짝이는 새 면허증을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앞으로도 운전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면허증을 갖고 있는 건 어쩌면 일종의 '가능성'처럼 느껴진다. 필요 없을 것 같던 자격증이 어느 순간 불현듯 쓰일 때가 있듯 운전면허도 언젠가 내 삶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평소의 나는 미루는 걸 싫어하지만 사람은 가끔 이상할 때가 있다. 몇 분이면 끝나는 일도 '하기 싫다'는 마음 하나로 몇 달을 미룬다. 그러다 어떤 사소한 계기로 갑자기 실행력을 발휘한다. 그런 걸 타이밍이라고 하는 걸까.
이번 면허증 갱신은 그런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지금 지갑 속에는 말끔하게 갱신된 면허증이 자리 잡고 있다. 운전대를 잡을 일은 없겠지만 신분증을 꺼낼 때마다 '집에서 찍은 셀카'의 은근한 자부심이 따라올 것 같다. 무엇보다 2만 원을 아꼈다.
아마 다음 갱신 시기가 다시 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덜 미루고 조금은 더 여유 있게 이 과정을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작은 소동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