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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귤을 따고 오일장에 가는 길이었다. 겨울 햇살이 차창을 통과해 귤 냄새처럼 은근히 스며들던 그 순간, 우회전을 기다리며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앞에는 흰색 트럭 한 대가 같은 방향으로 우회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제주 도로의 어느 정오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평범한 장면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비범한 사건으로 변했다.
앞 차가 갑자기, 아무런 신호도 없이 후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차가 후진을 한 게 아니다. 앞 차가 뒤로 왔다. 순간 놀라서 클랙슨을 꽉 눌렀다.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앞 차는 두 번째 후진을 시도했고, 그와 동시에 '쿵' 하고 앞 범퍼에서 둔탁한 진동이 올라왔다.
앞 차의 후진이 당황스러웠지만, 더 황당했던 건 그 다음이었다. 그 차는 마치 '뭐가 있었나?' 싶은 태도로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가버릴 기세였다. 황당함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찰나, 건널목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행인 한 분이 손을 번쩍 들어 그 트럭을 막아 세웠다.
덕분에 드라마는 일단 1부가 끝났다. 하지만 2부는 더 놀라운 방식으로 시작됐다.

▲갑작스런 접촉사고가 일어난 그 순간(왼쪽). 오일장에서 만난 일상의 온기(오른쪽). ⓒ 이현숙
적반하장 그리고 뜻밖의 결말
앞 차 주인이 내렸다. 보통은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할 만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예상 밖이었다.
"앞에 너무 나와서 제가 후진한 건데, 왜 바로 뒤에 있었어요?"
말문이 막혔다. 안전거리도 충분히 두고 있었고, 후진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앞 차가 했다. 내가 뒤에서 앞으로 가는 차를 들이받은 게 아니라, 앞차가 뒤로 오며 우리 차를 박은 상황이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여러 선택지가 번쩍였다.
A. 지금 당장 화르르 폭발하기
B. 어른답게 대화를 시도하기
C. 겉으로는 차분한 척하지만 속으론 난리법석
다행히 곁에 있던 가족과 지나가던 행인이 장면을 차분하게 짚어주며 설명해줬다. 그제야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스스로 합의금으로 10만 원을 제안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장면이 바로 그다음에 펼쳐졌다.
"받지 않겠습니다. 그냥 가세요. "
운전자였던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정당한 보상일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받지 않는 걸까. 그러자 아버지는 담담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그 돈을 받고 무언가 사면 그 물건을 볼 때마다 오늘 사고, 상황이 계속 떠오를 거야. 나는 그렇게 오래 기억하고 싶지 않구나."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 말은 단순한 배려나 관대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어쩌면 손에 잡히는 10만 원보다, 금방 흩어질 분노보다, 마음속에 남을 감정의 무게가 더 컸던 것이다. 결국 그는 사과만 남기고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오일장에서 또 다른 버전의 어른의 마음을 듣게 되었다.
오일장의 아주머니가 알려준 또 다른 정의감
늘 장을 보는 하원 집 아주머니 가게에서 천천히 사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머니는 잠시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가 잘못해서 난 사고는 아니잖아. 그거 하나만 해도 다행이지."
그러고는 들고 있던 배추를 내려놓으며 훨씬 진지하고 단호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런 사람은 그냥 보내면 안 돼! 어디 가서 또 그렇게 할 게 뻔한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되지!"
나는 그 말에 잠시 웃음이 났다. 아주머니가 나보다 더 크게 화를 내주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사고 이후 남아 있던 묵직한 감정이 아주머니의 한 마디로 조금은 풀어지는 듯 했다.
사람마다 사고를 해석하는 방식은 정말 다르구나. 아버지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용서를 택했고, 아주머니는 '다시 같은 일이 생기지 않게'라는 마음에서 분노를 표현했다. 둘 다 틀리지 않다. 둘 다 저마다의 선명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모두 어른의 마음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아침에 수확한 귤나무의 산뜻한 풍경(왼쪽). 하루의 소동이 끝난 뒤 마음을 달래준 따끈한 순대국 한 그릇(오른쪽). ⓒ 이현숙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까의 장면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만약 내가 당사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정말 불같이 화를 냈을까? 아니면 상대를 내 마음에서 툭 떼어내듯 선을 그었을까? 혹은,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하루 종일 속앓이를 했을까?
사실, 어떤 방식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확실히 알게 된 것이 딱 하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위치를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 말이다.
누군가는 분노의 선 앞에 서고, 누군가는 체념의 선에 서고, 누군가는 위로의 자리에 서서 우리를 맞아준다. 그 모든 방식이 다 어른의 방식일 수 있다. 상황은 같아도,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날의 감정도, 기억도, 삶도 달라진다.
오늘도 귤을 따고, 오일장에 들르는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른의 마음을 조금씩 배워가는 하루였다. 이 겨울의 귤처럼, 나도 조금씩 익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