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군에는 사람 냄새 나는 정겨운 마을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안내면 율티리, 군북면, 감로리, 청성면 거포리 세 곳의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아래의 글은 하얀 배꽃이 가득했던 마을 풍경으로 유명한 감로리의 이야기입니다. 이외에 더 많은 기사들은 <월간 옥이네> 101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충북 옥천군 감로리 주민 염광자씨의 손 ⓒ 월간 옥이네
마을 초입, 기다란 의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까이서 보니 장판이 나무 의자를 덮고 있다. 모두가 편하게 앉길 바라는 만든 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색이 하얗게 바랜 만큼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왔을 의자다. 그 뒤 편으로 활짝 열린 슈퍼에는 김영복(87)·염광자(84)씨 부부가 간식으로 대추를 먹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감로리에 정착한 지 50여 년, 슈퍼 안팎으로 지나간 변화가 많다며 기억을 하나씩 꺼내놨다. 두 사람의 기억을 따라 감로리를 산책했다.
우리 마을의 자랑 '감로배'
별다른 이름 없이 붉은 글씨의 '담배'가 간판을 대신하고 있는 슈퍼는 1974년에 문을 열었다. 김영복씨가 군 제대 후 고향인 감로리로 돌아오면서 집과 함께 가게를 지어 운영한 것이다. 지금은 라면, 통조림 캔, 음료 정도만 있지만, 한때 없는 물건이 없던 가게는 항상 사람으로 붐볐다. 마을 초입에 자리한 덕분에 동네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지금은) 드물게 담배 찾는 외지인 말고는 손님이 없어요. 버스가 다니니까 옥천읍으로 장 보러 가죠. 예전엔 물건 사러 여기로 다 왔어요. 장사도 잘됐지만 쉬러 오는 주민들도 많았죠. 가게에 탁자를 둔 것도 편하게 쉬라고 마련한 거예요. 농사 하다가 더우면 음료 마시고 아이스께끼도 먹고, 퇴근길에 들려 잠깐 이야기도 나누고 여럿이 모이는 날이 많았어요."
'배' 하면 '감로배'를 말할 만큼 찾는 이가 많아 주민 대부분이 배 농사를 하던 시기. 주민들이 모이면 농사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영복씨도 배 농사를 했던 터라 가게에서 농사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감, 밤이 잘 되는 마을이었어요. 특히 감 맛이 좋기로 유명했는데, 병이 유행하면서 감이 시들해졌고 배가 잘 됐죠. 다들 배 농사는 처음이라 공부하면서 농사를 지었어요. 그러니 모이면 배 얘기뿐이었죠."

▲충북 옥천군 감로리 주민 김영복·염광자씨 ⓒ 월간 옥이네
주민들의 열정은 감로배영농조합 활동으로 이어졌다. 배 농가가 많을 때는 마을 50여 가구 중 35가구에 달했다. 농사·판매 방법을 함께 논의해 마을 소득을 높이자는 마음이 모여 1997년 감로배영농조합이 만들졌다. 감로배영농조합의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옥천에서 배 최대 생산지인 감로리를 중심으로 군북, 안내, 안남, 청성 등으로 조합원이 늘어갔다.
"마을 주민 50여 명과 만든 조합인데 다른 면 지역에서도 가입하고 싶다고 왔어요. 너무 많이 와서 잘라낼 정도였죠. 한참 조합원이 많을 땐 120명이 넘었어요. 조합을 만들고 나라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배 봉지, 상자는 기본이었고 트랙터, 콤바인 같은 과수 농사짓는 데 필요한 농기계를 80% 보조해 줬어요. 마을길이 좁고 가팔라서 농사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특히 수확한 배를 옮기는 방법이 늘 고민이었는데 지원받아 마련한 농기계로 수월하게 옮길 수 있었죠."
농사 경험을 나누는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찾았다. 옥천 안팎으로 감로배를 알리길 10여 년. 시간이 지날수록 배 값은 그대로였지만 농사에 드는 자재비, 인건비는 꾸준히 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로배 수요도 점점 줄었다.
"조합을 운영하면서 전국에서 장사꾼이 많이 찾아왔어요. 처음엔 배를 사줘서 고마웠는데, 상자갈이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죠. 감로배 상표 붙은 상자에 다른 배를 넣어 판매한 거예요. 대전 공판장에 감로배 맛없다는 소문이 나면서 신용을 잃었어요. 물가는 오르고 배 찾는 사람은 줄고 고령화로 마을에 사람도 줄면서 자연스레 조합도 문을 닫게 됐죠."
주민들의 땀으로 만든 감로리의 풍경

▲충북 옥천군 감로리 ⓒ 월간 옥이네
감로배영농조합은 그렇게 2011년 문을 닫았지만 김영복씨의 마을 일은 멈추지 않았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를 주민들이 마을 이장과 노인회장으로 추천한 것이다.
"조합을 운영한 모습을 잘 봐주신 것 같아요. 주민들의 추천으로 이장과 노인회장으로 마을일을 오래 할 수 있었어요. 마을에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중 하나가 마을길 확장이었죠. 달구지 하나 다닐 정도로 마을길이 좁았는데 하천을 덮어서 도로를 넓혔어요. 그 작업을 주민들이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등짐으로 돌을 다 날랐으니까요. 예전부터 마을일이라면 불평하지 않고 모두가 참여할 만큼 단결이 잘 된 덕분에 즐겁게,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농사지으랴, 마을일 하랴, 공부 없이 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슈퍼 운영까지 해야 했던 그의 가게는 늦은 밤까지 불 꺼질 줄 몰랐다. 밤낮없는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건 조금씩 살기 좋아지는 마을 모습이었다. 마을의 변화에 힘입어 지속해온 일들이 지금의 감로리가 됐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뿌듯하죠.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편리해진 것들이 있으니까요. 다만 아쉬운 것은 마을을 대표할 것이 없다는 거예요. 배밭이 없어지고 상추나 아욱, 쑥갓 같은 채소를 재배해요. 그마저도 이어갈 사람이 없어 마을에 비어 있는 하우스가 많아요. 땀 흘리는 사람들로 넘쳐나던 마을이었는데, 이제는 보기 힘든 풍경이 돼서 아쉬워요."
김영복씨가 아내 염광자씨와 바깥바람을 쐴 겸 가게 앞 의자에 앉았다. 마을을 둘러보며 지나간 풍경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감로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있어요. 골짜기마다 있는 배나무로 봄이 되면 하얀 꽃이 마을을 뒤덮었어요. 꼭 눈 내린 것 같았다니까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요. 이제는 볼 수 없는 것이라 더 보고픈 모습이에요." (김영복씨)
염광자씨가 "아름다운 풍경 속 질끈 눈 감게 하는 고생이 숨어있지만 그 덕분에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잔가지를 골라내고 열매에 봉지 씌우고, 밭에서 돌아오면 가게와 집안살림 하고... 살아내느라 바쁜 날들이었어요. 주민들과 땀 흘려 만들어낸 풍경이 한숨 돌리게 해줬는데, 그때의 시간이 기억으로만 남았네요.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언제 시간이 지나가나 생각했는데, 주름진 손을 보면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어요. 가게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겠지요. 이제는 아픈 곳이 많아 예전만큼 일할 순 없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가게를 운영하고 싶어요."

▲충북 옥천군 감로리 주민 김영복·염광자씨가 운영하는 슈퍼 내부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감로리 주민 김영복·염광자씨가 운영하는 슈퍼 ⓒ 월간 옥이네
월간옥이네 통권 101호(2025년 11월호)
글·사진 김혜리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 (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