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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4 22:35최종 업데이트 25.12.14 22:35

글쓰기, 간결체 문장의 깊은 속내

[붓의 향연 26] 글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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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송(송나라)의 문인이자 개혁가였던 왕안석.
북송(송나라)의 문인이자 개혁가였던 왕안석. ⓒ wiki commons

문장론에 간결체가 있다. 쓰고자 하는 바를 되도록 짧은 어구(語句)로써 요약·압축해서 표현하는 문체를 말한다. '언어절약'의 삽화를 들어보자.

조선 중기의 시인 권필이 스승의 산소에 들러 지은 '과정송강묘유감(過鄭松江墓有感)'이라는 시가 있다. 정민 (한양대) 교수가 석사 논문을 쓸 때 이 시의 '공산목락우소소(公山木落雨蕭蕭)'란 구절을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로 번역해 스승께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넌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하며 퉁을 주신다. 손으로 '공(空)'을 짚으며 "이게 무슨 자냐?" 라 물으시니 당황하여 "네?" 했다가 금방 "빌 공잡니다"라 했다. 그랬더니 대뜸 "여기 어디 '텅'이 있어" 하시며 텅 자를 지웠다. "'나뭇잎'이나 '잎'이나 그놈 참 말 많네. '떨어지고'의 '떨어'도 떨어내!" 하셨다 한다. 그래서 완성된 문구가 "빈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이다. 정교수는 이 교훈을 늘 가슴에 안고 박사논문을 완성한 뒤에도 초고 1400매를 쥐어짜 1200매로 만들었다. "말은 죽었는데, 생각은 더 많아졌다."(강성민, '문화코드를 역류시키는 '힘센' 한문학자', <인물과사상>, 2007.4.)

글을 쓰다보면 낡은 형식과 필요 없는 부사·토씨·형용사 등을 남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먹을 것 없는 밥상에 반찬 가지수만 많은 격이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조각하고 나서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대리석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냈더니 다비드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글쓰기의 요체도 이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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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문체)은 곧 사람이다(Le style, c'est l'homme)"라 말한 이는 프랑스의 뷔퐁(1707~1788)이다. "대체로 작가의 문체론, 그 내심에 있는 그대로의 표현이다. 그러니까 명확한 문체로 쓰려면, 먼저 자기 마음을 바로 가져야 한다." 고 강조한 이는 괴테이다. "고상한 문체는 높은 인격의 산물이다." (롱지누스), "문체란 작가 자신이 사물을 보는 방법이다."(플로베르), "좋은 문체는 지적·정적 요소와 해조(諧調)·우미(愚迷)·매력과 같은 미적 요소를 지녀야 한다." (허드슨)

글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세상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글(문체)은 쉽게 쓰이지 않는다. 청자를 빚는 도공의 숙련과 예술혼처럼 글쓰기도 그러하다. 책읽기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책도 책 나름이지만 책다운 책, 저자가 피로 쓴 책(니체), 수명이 긴 생명이 있는 책을 읽는 데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독서에는 요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덕경>은 '유무(有無)' 두 자가 요점이고, <능엄경(愣嚴經)>은 '심안(心眼)' 두 자가 요점이고, <심경(心經)>은 '관조(觀照)' 두 자가 요점이다."(<암서유사>)

송나라의 문인 장횡거(張橫渠)는 말한다.

책은 이 마음을 지켜준다. 잠시라도 그것을 놓으면 그만큼 덕성이 풀어진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항상 있고, 책을 읽지 않으면 의리를 보아도 끝내 보이지 않는다. (<장자전서(張子全書)>)

독서인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있다. 다음은 송나라 황정견(黃貞見)의 견해이다.

책을 뜯어 옹기를 덮거나 사적(史籍)을 찢어 문을 바르는 것은 누구나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선비가 운명이 궁박하여 원통하게 모함을 당하면
이를 듣는 자도 가련하게 여기지 않고
본 자도 그를 생각해 주지 않으며
모두 그의 생사에는 무관심해 버린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해 볼 때
앞의 경우는 뱃속에 글이 많이 들어있는 선비를
마치 원수로 여기는 것이니, 슬픈 일이다.
독서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것으로 지침을 삼을 것이다.

읽고 쓰는 것, 이것은 지식인의 근원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읽고 쓰는 행위가 단순히 정신적, 육체적인 노동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기에는 인류사적인 존재의 근원, 영원을 추구하는 원형질이 포함된다. 다음은 '읽기 행위'의 진단이다.

읽기 (독서가 아니다), 혹은 읽는다는 말만큼 많은 행위가 연관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최초의 인류는 생존을 위해 하늘과 바다와 날씨와 사냥감의 동태를 읽어야만 했다. 정확히 읽는 사람일수록 생존의 가능성은 높아졌을 것이다. 그 정확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이 곧 지식과 문명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그 과정에서 점성술과 종교와 과학과 예술이 생겨났고, 기호와 문자들이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인류 역시 사정은 최초의 인류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더 많은 것을 더 정확히 읽는 자가 대체로 더 많이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신문과 책을 읽고 애인의 몸짓을 읽고 내일의 운세를 읽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무언가를 읽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한스 요하힘 그립)

왕안석(王安石)은 당송 8대가에 속하는 저명한 문인이다. 그의 많은 글 중에 특히 '권학문 (勸學文)'은 시대를 넘어 읽히는 글이다.

貧者因書富
富者因書貴
愚者得書賢
賢者因書利

가난한 사람은 책 때문에 부유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책 때문에 귀해지고
어리석은 사람은 책으로 인해 어질어지고
어진 사람은 책으로 인해 부귀를 얻는다.

<역사의 연구>라는 저서로 20세기의 세계적인 역사학자로 명성을 날린 아놀드 토인비는 대단히 성실한 학자라는 평을 듣는다. 그가 '학문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을 위해' 쓴 글은 비록 '학문생활'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서가들에게는 한번쯤 귀담아 들을 만하다.

첫째, 덤비지 말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문제나 과제를 전체적으로 보라.

둘째, 행동할 시기가 성숙되었다고 느끼면 즉시 행동하라. 너무 오래 기다리다가 서두르는 것보다 더 일을 망치기 쉽다.

셋째, 날을 기다리지 말고 매일처럼 적당한 때를 잡아 정기적으로 글을 써라. 기분이 안 난다고 미루지 말라.

넷째, 일각의 시간이라도 낭비하지 말라. 오늘 일이 끝났다고 더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뤄서는 안된다.

다섯째, 언제나 앞을 보라. 자동차 경주 선수들이 목표점이 있는 지평선을 망원경으로 보듯 멀리 앞을 내다보라.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붓의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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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붓의 향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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