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민공동회 민족기록화, 만민공동회는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다. 고종에게 헌의 6조의 실천과 의회설치 약속을 받아내지만 고종과 근왕파 등 수구세력의 탄압으로 해산되고 만다.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참으로 분통한 사건과 접하게 된다. 근대에 이르러 그때 조금만 달랐으면 우리도 세계사의 조류에 당당한 민족국가로서 합류하게 될 것이었는데 그렇지 못하여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구나 하는 개탄이 절로 나온다.
헌정연구회의 활동과 만민공동회의 의회설립운동의 좌절은 뼈아프다. 헌정연구회는 1898년 윤효정·이준·양한묵 등이 주도하여 설립되었다. <설립 취지서>를 통해 "천하의 대세는 무엇인가 물어본다면 이는 바로 입헌(入憲)이다. 왜 그러한가. 군민입약(君民立約)한 원법을 입헌이라 하니 이는 소위 문명의 결실이라. 나라는 백성으로 이루어지고, 임금은 백성이 있어 세워진 것이니, 임금의 치국은 백성과 더불어 입약한 헌법이 없으면 안 될 것이요, 오로지 강제해서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입헌의 정치를 하는 나라치고 흥하지 않는 나라가 없고, 전제정치를 하는 나라치고 쇠하지 아니하는 나라가 없음은 일본·영국·청국·러시아를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선언했다.
헌정연구회의 입헌군주제 주창은 우리나라 입헌군주제의 고고성이었다. 이에 따라 만민공동회가 구성되고 공론화가 시작되었다. 독립협회가 주도한 만민공동회는 역사상 최초의 시민운동으로 처음에는 관민공동회에서 출발했다.
천민 출신인 백정이 첫 연사로 나선 연설회의 내용을 독립신문은 1898년 3월 15일자에 실었다.
만민공동회의 연설문
우리 대한이 자주독립하는 것은 세계 만국이 다 한가지로 아는 바다. 훈련사관과 재정고문을 외국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대한자주독립 권리에 대단히 관계가 있다. 이것은 곧 대한 이천만 동포형제의 한가지로 부끄럽고 분하게 여기는 바다... 지금 있는 러시아 사관과 러시아 고문관이 대한에 긴치 아니한 것과 대한이 자주하는 권리를 스스로 행하는 것이 가한 것은 러시아가 모두 스스로 아는 바이니, 대한의 권리를 지키고 러시아의 정론을 쫓아 러시아 사관과 러시아 고문관을 모두 곧 돌려 보내는 것으로 결정하여 러시아공사에게 통고하자, 이것은 당연한 일로 우리 대한 이천만 동포의 한가지로 원하는 바이오, 세계 각국도 한가지로 아는 바이다. 오늘날 대한국 국민들의 이같이 긴급한 행세를 정부에 말하여 전국 인민이 원하는 대로 통고하도록 하자.
독립협회는 외세로부터 국권침탈을 막고 자주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주 1인에 의한 정치보다 다수가 국정에 참여하는 공화제를 내세웠다.
독립협회는 이 정부를 지지함과 아울러 중추원을 개편하여 의회를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그 안을 정부에 제출하였다.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11월 5일 개원하기로 하고 의회 설립법을 공포하였다. 이것이 한국 역사상 최초의 의회 설립운동의 성공에 의하여 결실을 본 의회 설립안으로서, 당시의 정치로서는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이었다.(이광린, 신용하, <한국문화사, 근대 편>)
한국 최초의 의회 설립법 (중추원 신관제)
제1조. 중추원은 다음의 사항을 심사하고 의정하는 처소로 할 것.
① 법률·칙령의 제정, 폐지 혹은 개정에 관한 사항.
② 의정부에서 경의 상루하는 일체의 사항.
③ 칙령을 인하여 의정부에서 자문하는 사항.
④ 의정부에서 임시 건의에 대하여 자순하는 사항.
⑤ 중추원에서 임시 건의하는 사항.
⑥ 인민의 헌의하는 사항.
제2조. 중추원은 다음의 직원으로서 구성할 것.
의장 1인. 부의장 1인. 의관(원) 50인. 참서관 2인, 주사 4인.
제3조. 의장은 대황제폐하께서 성간으로 칙수하시고, 부의장은 중추원 공천에 의하여 칙수하시고, 의관 반수는 정부에서 국가에 공로가 있는 자로 회의 추천하고, 반수는 인민협회에서 27세 이상 인이 정치·법률·학식에 통달한 자로 투표 선거할 것.
제4조. 의장은 칙임 1등이오, 부의장은 칙임 2등이오, 의관은 칙임이니, 서당은 없고, 임기는 각기 12개월로 정할 것. 단, 의관 만기 한 달 전에 후임 의관을 예선할 것.
제5조. 참서관은 주임이오, 주사는 판임이니, 서등은 일반관리와 동일할 것.
제6조. 부의장은 중추원 통첩을 기다려 정부에서 상주하여 조칙으로 임명하심을 공준하고, 의관은 정부에 상주 서임하고, 참서관은 중추원 천첩을 기다려 정부에서 주임하고, 주사는 의장이 경의 진행할 것.
제7조. 의장은 중추원의 대소 사무를 총괄하고 일체 공문에 서명할 것.
제8조. 부의장은 의장의 직무를 보좌하고, 의장의 유고시는 그 직무를 대변할 것.
제9조. 참서관은 의장 및 부의장의 지휘를 받들어 서무를 관장할 것.
제10조. 주사는 상관의 지휘를 받들어 서무에 종사할 것.
제11조. 중추원에서 각 항 안건에 대하여 의결하는 권한만 있고, 상주 발령을 직행하지 못할 것.
제12조. 의정부와 중추원에서 의견이 불합하는 때는 의정부와 중추원이 합석 협의하여 타당 가결한 후에 시행하고 의정부에서 직행하지 못할 것.
제13조. 국무대신이 의관을 명하여 그 주임하는 사항으로 의정부의 위원이라 하여 중추원에 와서 의안의 이취를 판명할 것.
제14조. 국무대신 및 각부 협판은 중추원에 내회하여 의관되어 열석할 수 있으나, 단 그 주임 사항으로는 의결하는 원수에 들어가지 못할 것.
제15조. 개국 505년 칙령 제40호 중추원 관제는 본 관제 반포일로 폐지할 것.
제16조. 본 관제 제3조 중 인민권리는 현금만에는 독립협회로서 행사할 것.
제17조. 본령은 반포일로부터 행사할 것.
광무 2년 11월 2일
정부와 독립협회가 추진한 의회설립은 개원 예정일 새벽에 붕괴되었다. 친러 수구파들이 고종에게 모략한 것이다. 저들은 박정양을 대통령, 윤치호를 부통령, 이상재를 내무대신으로 하는 신정부 수립을 음모한다고 모략하여 고종의 변심을 가져왔다.
고종은 경찰을 동원하여 독립협회 해산령을 내리고 간부 17명을 구속하는 폭압을 저질렀다. 이래서 모처럼 입헌군주제를 통한 국정개혁이 좌절되고 민족수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