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 발표를 하는 한글학회 이강로 명예이사특별 발표를 하는 한글학회 이강로 명예이사 ⓒ 김영조
'글밭에서 주은 이삭' - 이 제목은 한글학자 하정 이강로님의 책에서 따온 것이다.(<한글과 한자의 만남>)
'글밭', 얼마나 좋은 밭인가. 심전(心田)이란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글밭이란 말은 이강로님의 책을 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글밭이라니, 글이 의사 전달과 기록의 부호라면, 그래서 정신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밭은 인간이 먹고사는 식량을 생산하는, 그래서 육체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정신의 세계와 육체의 세계가 어우러지는 '글밭'은 과장하면, 잃어버린 에덴이거나 찾고자 하는 유토피아의 상징이 아닐까.
사래 긴 보리밭은 초록색 자리를 펼쳐 놓은 듯 이랑마다 새파란 먹물을 튀겨 놓은 것 같이 생생하다. 벌써 한 두어 치 가량이나 뾰족뾰족하게 자라났다. 비만 한 번 흐뭇하게 내리면 우쩍 자랄 것 같다. 그 곱다란 보리밭을 아침 바람이 보드랍게 어루만진다. 그러면 보리싹은 강아지풀처럼 조그만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심훈, '영혼의 미소')
밭이란 이런 것이다. 어찌 보리밭 뿐일까. 뭇 식물이 자라는 밭은 생명의 근원이고 자연의 묘판이다. 거기에 글의 씨앗이 뿌려지고 문화(文化·文花·文華)가 피어난다. 글, 글이란 무엇인가.
글이란 도(道)를 밟는 문인이므로 법도 아닌 말은 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운을 고무시키고 말을 활발히 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혹 험괴(險怪)에 미치기도 한다. 하물며 시를 지음에는 비흥(比興)과 풍유(諷諭)를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반드시 기괴(奇怪)에 우탁(寓託)한 뒤에야 그 기운이 웅장하고 그 뜻이 깊으며 그 말이 분명해진다. 그리하여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깨치게 하고 미묘한 뜻을 나타내어 마침내 바른데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의 것을 모방하여 꾸미거나 아름다움을 자랑해 떠벌리는 것 같은 일은 원래 유자(儒者)의 할 일이 아니다.(최자(崔滋), <보한집>)
'변통 알고 새것 창안하는' 글쓰기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논자들은 말한다. "반드시 옛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이리하여 세상에는 흉내와 모방을 일삼으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왕망(王莽)의 주관(周官)이 마치 고대의 제도인 양, 행세하는 격이다. 양화(陽貨)의 모습이 마치 공자인양 행세하는 격이다. 과연 옛 것을 본받아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새것을 창안해 내는 것이 옳은가? 이리하여 세상에는 황탄하고 괴벽한 소리를 늘어놓고도 두려워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임기응변의 조치를 통상의 떳떳한 법전보다 더 훌륭한 양 여기고 일시 유행하는 가곡을 전래의 고전음악과 같이 대우하는 격이다. 과연 새것을 창안해 내야 할 것인가? 대체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그만 두어야 하는가. 옛 것을 본받는 사람들은 그 옛것에 얽매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그 병통이다. 참으로 옛 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창안해 내면서도 근거가 있다면 이 시대의 글은 옛 시대의 글과 마찬가지일 것이다.(박지원, <초정집서(楚亭集序)>)
<고문진보(古文眞寶)>는 중국에서 유명한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중국은 문화가 오랜만큼이나 좋은 글, 값진 글도 많다. 왕발(王勃)이 서문을 쓴 '등왕각서(騰王閣序)'도 명문의 하나이다. 다음은 왕발이 무명 소년기에 지은 시 구절이다. 때는 9월 9일 가을이 짙어가는 계절이었다.
虹鎖雨霞 彩徹雲
落霞與孤驚齎飛 秋水其長天一色
무지개는 비가 갬에 따라 사라졌고
영롱한 채색 빛깔은 운구에 서려 있다
떨어지는 안개는 외로운 따오기와 함께 날고
가을물은 수평선의 푸른 긴 하늘과 한 빛이로구나.
<북학의(北學議)>를 지은 서자 출신의 천재문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가 막역한 벗 청장(靑莊) 이덕무(李德懋)를 두고 지은 시가 있다.
靑莊饑死也何妨
縱處詩書骨亦香
寂寞繁華知一致
莫將榮猝間行藏
청장이 굶어 죽은들 무엇이 억울한가
가는 곳마다 시서가 남을 것이니 뼈조차 향기로울텐데
적막과 번화가 죽으면 결국 일치한다는 것을 알거든
영화나 불행을 가지고 죽은 뒤 남는 일일랑 묻지를 말라.
박제가의 친구로서 조선시대 누구보다 책을 좋아했던 이덕무는 "티끌세상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더라도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책 읽는 여유를 가진 사람은 군자."라고 하면서 "집안 살림이 살만해지면 한적한 물가에서 책을 지어 명산에 굴을 판 뒤 깊이 간직해 두겠다. 먼 훗날 그것을 찾아 낼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라고 썼다.
글쓰기가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아무리 머리가 좋고 글을 잘 지어도 출세길이 막혀 있던 서얼 출신들은 술 마시고 책 읽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어찌 보면 '한량(閑良)'같기도 하지만, 그들의 아픈 심사(心事)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그런 속에서도 '두어자'들에게 두고두고 기억될 소망을 남겼다. 먼 훗날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명산에 굴을 파서 간직해 두겠다는 꿈이었다. 이육사는 천고(千古) 뒤에 백마 타고 나타날 존재를 기다렸는데, 이덕무는 먼 훗날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책을 짓고자 했다.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